지난 5월 27일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5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와 LG 트윈스의 경기, 7회말 한화 김경문 감독이 LG 이영빈의 체크스윙 관련해 심판에게 어필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최근 KBO리그에서 체크스윙 판정을 두고 감독들의 항의가 유독 잦아진 느낌을 받았다면 착각이 아니다. 지난 5월 27일 김경문 한화 감독이 3루심의 체크스윙 판정에 항의해 더그아웃을 박차고 나온 것을 시작으로, 30일 홍원기 키움 감독의 평소답지 않은 거친 항의와 퇴장, 6월 1일 이숭용 SSG 감독의 항의, 5일 조성환 두산 감독대행의 볼멘소리까지. 불과 보름 사이에 체크스윙 판정을 둘러싼 논란성 장면이 네 차례나 나왔다.
그렇다고 유독 최근 들어 심판들의 체크스윙 판정 능력에 집단적으로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다. 사실 체크스윙을 둘러싼 선수·감독들의 불만과 항의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프로야구가 생긴 이래로 언제나 있어왔던 문제다. 특히 포스트시즌처럼 큰 경기에서는 중요한 순간에 타자의 배트가 돌았는지 아닌지 여부가 승패를 바꾸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2009년 한국시리즈에서는 KIA 이종범(현 KT 코치)의 '신의 손' 논란이 벌어졌다. 이종범이 바깥쪽으로 빠지는 공에서 배트를 거두는 과정에서 홈플레이트를 지난 스윙이라는 지적이 나왔고, SK 벤치가 즉시 항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23년 한국시리즈에서도 중계화면상으로는 노스윙처럼 보이는 김준태의 체크스윙에 3루심이 스윙을 선언해, 이강철 KT 감독이 거칠게 항의하다 퇴장당하는 불상사를 빚었다. 한국시리즈 역대 세 번째 감독 퇴장이었다. 공교롭게도 2009년 한국시리즈는 KIA가, 2023년 한국시리즈는 LG가 우승했다.
과거에는 체크스윙 판정에 불만이 있어도 인상을 쓰거나 배트를 던지거나 감독이 나와서 '배치기'를 하며 항의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야구장에 첨단장비가 등장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우선 비디오판독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세이프와 아웃 판정의 최종 권한이 인간에서 기계로 넘어갔다. 또한 자동볼판정시스템(ABS) 도입으로 스트라이크와 볼 판정도 기계의 영역으로 넘어갔다. 그러면서 현장에서는 이렇게 된 이상 체크스윙도 비디오판독을 못할 것 없다는 목소리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체크스윙 관련 항의가 유독 잦아진 건, 다른 판정은 다 기계의 영역이 됐는데 체크스윙만 여전히 인간 심판이 판정하고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체크스윙 비디오판독은 2013년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서 비디오판독 시스템을 도입할 때도 포함하려고 검토했었다. 당시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구단주 회의를 통해 "내년부터 비디오판독을 스트라이크·볼 판정을 제외한 모든 부분으로 확대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막상 실제 시행된 비디오판독에서는 체크스윙이 제외됐다.
이는 체크스윙 관련 명확한 기준이 없었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도 한국야구도 마찬가지였다. 야구 규칙상 스윙에 해당하는 조항은 '타자가 쳤으나(번트 포함) 투구에 배트가 닿지 않은 것'인데, 여기에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체크스윙이라는 기준이 나와 있지 않다. 미국에서 현역 심판으로 활동 중인 이금강 칼럼니스트는 '야구공작소' 칼럼에서 "최초의 야구 규칙책부터 현재까지 프로야구 단계에서는 스윙 혹은 체크스윙에 대한 정의가 내려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결국 체크스윙인지 아닌지는 인간 심판의 판단과 재량에 의존해야 했다.
체크스윙 기준을 놓고도 심판마다 설명이 조금씩 달랐다. 2011년 조종규 당시 심판위원장은 한 인터뷰에서 "배트 끝이 좌타자의 경우 3루 파울 라인, 우타자는 1루 파울 라인을 넘어설 경우 스윙" "몸이 앞으로 끌려나와도 배트 끝이 돌지 않았다면 체크스윙이 아니다"라는 기준을 제시했다.
반면 2022년 허운 당시 심판위원장은 "심판이 타자가 스윙을 할 의도가 있다고 판단하면 하프스윙이라고 판정 내릴 수도 있다"면서 타자의 '치려는 의도'를 판단 기준으로 밝혔다. 사실 타자의 의도를 체크스윙 기준으로 삼는 것은 허운 위원장만의 생각이 아니라, 야구계에서 오랫동안 통용돼온 관습법이었다. 그러나 야구팬들 사이에서는 이런 기준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타자의 의도를 어떻게 심판이 판단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2023년 한국시리즈에서 김준태 체크스윙 논란 때도 KBO에서 '치려는 의도가 있었기 때문에 스윙'이라고 설명하자 야구팬들 사이에서 큰 반발이 일어났다.프로야구 경기 중 심판들이 비디오판독을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체크스윙 규정 애매
체크스윙 비디오판독 도입은 결국 체크스윙 기준 마련을 전제로 한다. 이는 ABS 도입으로 원래는 가상의 입체 공간이었고 심판마다 조금씩 달랐던 스트라이크존이 규격화된 것과 같은 이치다. ABS 도입 전 인간 심판은 경기 상황에 따라 존이 넓어지기도 좁아지기도 하고 볼카운트에 따라 판단이 달라지기도 했다. '타자가 칠 수 있는 공'을 스트라이크로 보는 판단 기준에 따라 완전한 모서리 공은 가급적 스트라이크를 주지 않았다. 또 베테랑 선수냐 신인이냐, 국내 선수냐 외국인 선수냐에 따라 인간적 편향이 작용하기도 했다.
과거에는 이런 인간적인 요소가 당연하게 여겨졌지만, 이제는 ABS가 존에 조금이라도 스치면 가차없이 스트라이크로 판정한다. 비디오판독을 도입하면 체크스윙도 마찬가지가 된다. 타자의 의도나 다른 요소는 배제되고, 배트가 일정한 기준을 조금이라도 넘으면 기계적으로 판정이 내려지게 될 것이다.
일단 한국도 메이저리그도 체크스윙 비디오판독 도입이라는 결론을 향해 진행 중인 것은 동일하다. 메이저리그는 작년 애리조나 가을리그부터 체크스윙 챌린지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도 올해 퓨처스리그에 체크스윙 비디오판독을 도입해 테스트하고 있다.
다만 두 리그의 체크스윙 기준에는 차이가 있다. 미국은 1, 3루 파울라인을 기준으로 45도를 넘으면 스윙으로 판정하는 상당히 관대한 기준을 택했다. 이를 두고 한 구단 단장은 "타자에게 굉장히 유리한 기준이다. 한국과 비교하면 거의 스윙으로 인정될 일이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한국은 홈플레이트 앞면과 평행을 이루는 지점을 기준으로 퓨처스리그에서 테스트하고 있다. KBO는 "배트의 각도가 홈플레이트 앞면과 평행을 이루는 지점보다 투수 방향으로 넘어갔을 때 스윙 스트라이크로 판정한다"는 기준을 마련했다. 이금강 심판은 칼럼에서 "(이 기준은) 야구를 하고 보는 사람들의 일반적 인식과 합치한다"며 "중계진과 시청자는 배트 끝이 홈플레이트를 넘어갔는지를 보고 돌았다, 돌지 않았다를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현재까지 퓨처스리그에서 체크스윙 비디오판독 테스트는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공필성 NC 퓨처스 감독은 "운영이 잘 되고 있는 것 같다"며 "지금까지는 벤치에서 생각한 것과 실제 판독 결과가 대부분 일치했다. 큰 불만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있다. 판독이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 2군 관계자는 "보통 10번 신청하면 3번 정도는 (체크스윙) 판정이 번복된다"고 했다. 박근찬 KBO 사무총장은 "기존 비디오판독 횟수와는 별도로 경기당 팀에 2번의 기회가 주어지고, 번복되면 추가 기회가 부여되는 방식이다. 판독하는 데는 12초 정도가 소요되는데, 경기 진행에 큰 지장을 주지 않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애초 목표였던 내년 시즌 1군 도입에는 큰 문제가 없는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현장의 평가다.
다만 1군 경기에서 체크스윙 논란 상황이 자주 나오고, 감독들의 성화가 계속되고 있어 도입 시기가 앞당겨질 가능성도 있다. 염경엽 LG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오해할 일이 없도록 빨리 비디오판독을 도입해야 한다"며 "방송 카메라로만 판독해도 충분히 공정한 판정을 할 수 있다"고 당장이라도 시행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구단 단장은 "최근 현장에서 조기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많아지긴 했다"며 "단장들 분위기도 시즌 초에 비해서 빨리하자는 의견이 많아졌다"고 했다. KBO 실행위원회(단장회의)에서는 올해 포스트시즌부터 도입하자는 의견과 올스타전이 끝난 뒤 후반기부터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체크스윙 비디오판독을 포스트시즌부터 도입할 경우 시행착오에 따른 리스크가 따른다. 충분한 테스트 없이 큰 경기, 중요한 경기에 도입했다가 기계적 오류나 문제가 발생하면 감당할 수 없는 후폭풍이 예상된다. 한 단장은 "테스트 없이 포스트시즌에 시행하는 건 위험하다. 그보다는 시즌 때 시행착오를 어느 정도 겪은 다음에 도입하는 게 안전하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후반기부터 바로 시행하기에는 의사 결정과 장비 설치, 준비까지 걸리는 시간이 촉박한 게 문제다.
KBO는 여전히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박근찬 사무총장은 "내년에는 무조건 (도입)하자는 생각"이라면서도 "후반기 시행 여부는 결정되지 않았다"고 했다. 장동철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사무총장은 "선수들은 다 찬성하는 분위기다. 다만 할 거면 준비를 철저히 한 뒤에 시행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빨리 하는 데 급급하면 문제가 생긴다"며 신중한 접근을 당부했다. 일단 올해 안에 전국 경기장에 비디오판독 장비를 설치하는 것까지는 확정된 상태다. KBO는 현장과 야구계의 목소리를 수렴하고, 예상되는 문제를 충분히 검토해서 도입 시기를 결정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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