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광년 떨어진 외계 항성계 잔해 원반서 고체 상태 물 포착
태양에서 약 155광년 떨어진 젊은 별 HD 181327을 둘러싼 잔해 원반. 미국항공우주국 제공
지구의 물은 어디에서 왔을까. 가장 유력한 가설 중 하나는 약 40억 년 전 이른바 후기 대폭격기(Late Heavy Bombardment) 시절에 혜성과 소행성들이 외부 우주의 물을 지구로 운반해 왔다는 것이다. 최근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JWST)이 태양계 바깥 젊은 항성계에서 고체 상태의 물, 즉 얼음을 직접 검출함으로써 이 가설이 외계 행성계에서도 성립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번 성과는 별 주변에서 물이 어떻게 분포하고 이동하는지를 보여줄 뿐 아니라, 지구의 물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를 밝히는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6월 초 미국 존스홉킨스대 물리학 및 천문학 연구진은 JWST의 근적외선 분광기(NIRSpec)를 사용해 지구로부터 약 155광년 떨어진 태양 유사 별 HD 181327 주변에서 결정질 물 얼음을 검출했다고 밝혔다. 이는 외계 항성계의 잔해 원반(disk)에서 고체 상태 물을 직접 포착한 첫 사례로, 관련 연구 논문은 '네이처(Nature)'에 게재됐다.
이번에 물이 검출된 HD 181327은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시민 과학자들과 함께 수천 개 후보 천체를 분류하는 원반 구조 천체 탐색 프로젝트인 '원반 탐정(Disk Detective)'을 통해 발굴됐다. 태양보다 질량이 약간 더 무거운 F6형 항성(태양보다 조금 더 뜨겁고 밝은 중간 질량의 별)이며, 나이는 2300만 년 정도로 매우 젊다. 행성계를 형성 중인 별 주변에 얼음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물이 행성계 진화에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HD 181327의 잔해 원반은 태양계 외곽 카이퍼 벨트를 떠올리게 하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별에서 멀리 떨어진 외곽에는 얼음과 미세먼지가 섞인, 이른바 '더러운 눈덩이(dirty snowball)' 형태의 물질이 대량으로 분포해 있다. 이 물질의 총량은 향후 형성될 전체 행성 질량의 20% 이상에 달할 정도로 방대하다.
흥미로운 점은 물질의 분포가 거리에 따라 뚜렷하게 달라진다는 것이다. 원반 중심부에 가까워질수록 얼음은 거의 관측되지 않는다. 이러한 분포 양상은 외계 행성계에도 태양계처럼 '눈선(snow line)'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눈선은 물이 얼음 상태로 안정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경계선으로, 그 바깥에서는 얼음이 유지되지만 안쪽에서는 별빛에 의해 쉽게 기화된다. 이 바깥쪽 얼음은 충돌이나 중력 상호작용을 통해 별에 가까운 안쪽 영역으로 옮겨지며, 지구처럼 물이 존재하는 행성이 형성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이러한 물 이동 메커니즘은 새로운 '물 전달 이론(water delivery theory)'을 뒷받침하는 관측 근거가 된다. 특히 기화된 물이 안쪽으로 확산된다는 '점성 확산(viscous diffusion)' 이론이 실제 외계 항성계에서도 작동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관측 결과다.
또한 물이 얼음 상태로 존재한다는 것은 수억 년에 걸쳐 형성되는 지구형 행성에 물이 전달될 수 있음을 의미하며, 이는 생명 친화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핵심 조건이 된다. 논문 주저자인 천 시에 박사는 "이번에 발견된 얼음은 행성 형성에 도움을 줄 뿐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지구처럼 물을 가진 행성의 표면에 물을 공급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HD 181327의 잔해 원반에서는 현재도 충돌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다양한 크기의 먼지 입자가 존재하며 물질이 재분포되고 있다는 점은 이 항성계가 과거 태양계 초기 단계와 유사한 조건에서 실제로 행성계로 진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관측 결과는 지구에 물이 전달된 과정이 다른 행성계에서도 일어날 수 있음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로 해석된다.
이번 HD 181327 관측은 아직 행성계가 완전히 형성되기 전 시점을 포착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눈선 바깥쪽의 얼음 축적, 행성 내부의 성분 분화, 거대 가스 행성과 지구형 행성의 경계 설정 등 지금까지 이론으로만 제시된 요소들을 실측 데이터를 통해 검증할 수 있는 '우주 실험실'이 열린 것이다.
이번 관측을 계기로 JWST는 다양한 나이와 조성 환경을 가진 항성계를 대상으로 외계 물 탐색을 본격화하고 있다. 연구진은 HD 181327 외에도 PDS 70, 베타 픽토리스(β Pictoris), AU 마이크로스코피(Microscopii) 등 잔해 원반을 지닌 젊은 별들을 집중적으로 관측 중이다. 이들 항성계에서는 물뿐 아니라 이산화탄소(CO₂), 메탄(CH₄), 암모니아(NH₃) 같은 휘발성 유기분자의 분광 신호도 포착됐다. 이러한 물질의 존재는 외계 행성계에도 생명의 전구물질이 널리 분포하고 있을 개연성을 보여준다.
향후 NASA는 JWST에 더해 2027년 발사 예정인 로마 우주망원경(Roman Space Telescope)을 통해 외계 물 순환의 '지도'를 본격적으로 그려나갈 계획이다. 미국 외에도 유럽우주국(ESA)은 외계 행성 대기의 분광 분석을 목표로 하는 아리엘(ARIEL·2029년 예정)과 지구형 행성을 탐색하는 플라토(PLATO·2026년 예정)를 추진하고 있다.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는 적외선 우주망원경 스피카(SPICA)로 원시 행성계 원반 속 얼음과 유기물의 분포를 연구 중이다. 중국은 어스(Earth) 2.0 프로젝트를 통해 외계 잔해 원반을 추적하면서 우리 태양계의 형성과 생명 조건에 대한 새로운 단서를 찾고자 한다.
미국 애리조나대 천문학자인 새라 모런은 대학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행성 전체가 바다로 덮여 있거나 내부에 막대한 물을 지닌 '물의 세계(water world)'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이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유형의 행성을 입증할 수 있다"며 "그 물이 어떻게 축적됐고, 태양계 행성들과 어떤 다른 진화 경로를 밟았는지 탐구하는 새로운 장이 열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종림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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