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으로 맞서는 발밑의 폭탄 싱크홀
싱크홀. 과학동아 제공
서울 강남 한복판 8차선 도로를 집어삼킨 커다란 구멍. 그 아래로 철근과 토사가 맥없이 드러나 있다. 마치 재난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이 모습은 인공지능(AI)으로 만든 가상의 이미지다.
그럼에도 최근 연이어 터지는 대규모 싱크홀(땅꺼짐) 소식을 접하다보면 영화 속 가상의 일이 현실로 닥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일상을 파고든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땅 밑의 폭탄, 싱크홀에 맞서는 과학의 현장을 다녀왔다.
"그때 이후로 마음이 안 놓여서 (사고 지역)근처로 잘 안 다녀요. 특히나 아이랑 있을 땐 빙 둘러서 가요."
4월 28일 서울 강동구 명일동 싱크홀(땅꺼짐) 사고 현장 인근에서 만난 주민 조모 씨는 아이 손을 잡은 채 불안감을 호소했다. 지난 3월 24일 오후 한순간에 꺼져버린 땅은 도로를 주행하던 오토바이 운전자를 집어삼켰다.
운전자는 그대로 지하에 매몰됐고 결국 사망했다. 공사 현장이나 통제 구역도 아닌 차가 멀쩡히 다니는 도심 도로 한복판에서 일어난 싱크홀 소식에 시민들은 놀랐다. 사고 이후 한 달, 도로는 이전의 모습을 되찾았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싱크홀 사고는 최근 전국적으로 연달아 터지고 있다. 명일동 싱크홀 사고 불과 2주 뒤인 4월 11일 경기 광명시 지하철도 신안산선 공사장 붕괴 사고로 현장 근로자 2명이 매몰돼 1명이 사망했다.
4월 16일 인천 부평구 부평역 앞 횡단보도에서는 지름 5m, 깊이 10cm 규모의 땅 꺼짐이 일어났으며 4월 21에는 부산 사상구 도시철도 공사 현장에서 깊이 약 5m의 싱크홀이 발생해 트럭 두대가 빠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2025년 4월 11일 경기 광명시 신안산선 공사 현장에서 깊이 30여m에 위치한 터널이 붕괴하며 대규모의 땅꺼짐이 발생했다. 이 사고로 공사 현장에서 일하던 근로자 2명이 도로 아래로 빠져 1명이 사망했다. 동아일보 DB
● 늙은 수로와 난개발에 '폭싹 가라앉았수다'
염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24년까지 전국에서 발생한 싱크홀 사고는 총 2188건에 달했다. 지난 11년간 매년 평균 200번가량 땅이 가라앉은 셈이다.
해당 기간(2025년 제외) 동안 3명이 사망하고 77명이 다치며 총 80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싱크홀은 석회암이 지하수에 녹으면서 빈 공간이 생기는 등 자연적으로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도심의 싱크홀은 보통 지하 시설물의 노후화와 지반 침하, 난개발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가장 두드러지는 싱크홀 원인은 하수관 손상이다. 오래된 하수관은 이음새가 어긋나 틈새가 생긴다. 그 틈새로 물이 흘러나와 주변 흙을 쓸어가 공간이 나타나 싱크홀을 만든다. 하수관 손상은 싱크홀 2188건 중 876건(42%)의 원인으로 1위를 기록했다.
실제로 서울에 매설된 하수관로의 약 30%가 50년을 넘긴 '초고령' 하수관이다. 4월 15일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울시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3년 12월 기준 서울 하수관로 총연장 1만866km 중 50년 이상 된 하수관로는 300km(30.4%)에 달했다.
한편 사람이 빠질 정도로 커다란 싱크홀은 도심 지하화와 지하철 확장 등 끊이지 않는 지하 공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지난 3월 국회에서 열린 '싱크홀 관련 전문가 간담회' 등에 발제자로 나섰던 박창근 가톨릭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보통 작은 싱크홀은 상하수도, 큰 싱크홀은 무분별한 지하 공사로지반이 약해져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 서울 강동구 명일동과 경기 광명시, 부산 사상구에 발생한 대형 싱크홀 사고는 모두 지하철 확장 공사로 지하를 개발하던 기간에 일어났다.
● '발밑 재난' 막으려 과학이 나섰다
도로 현장에선 발밑의 폭탄이 된 싱크홀을 탐지하기 위해 다양한 과학 기술이 쓰이고 있다. 군대 폭발물처리반이 지반에 매설된 지뢰를 탐측하듯 지반에 전자기파를 방출해 반사된 신호를 분석하는 지표투과레이더(GPR) 기술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어떻게 조사가 이뤄지는지 살펴보기 위해 4월 30일 서울시의 '땅꺼짐 탐사대'가 GPR 작업을 진행 중이던 서울 강서구의 한 도로로 찾아갔다.
2025년 4월 30일 서울 강서구 한 노면에서 작업 중인 '땅꺼짐 탐사대'의 GPR 차량. 서울시 재난안전실 도로관리과의 땅꺼짐 탐사대는 지하 공동을 찾기 위해 총 3대의 GPR 차량을 매일 운영한다. 과학동아 제공
땅꺼짐 탐사대는 서울시 재난안전실 도로관리과에서 운영하는 공동 탐사 팀이다. 토목공학이나 지질학 등을 전공한 전문가로 이뤄진 탐사대는 세 대의 GPR 차량을 몰고 하루도 빠짐없이 탐사에 나선다.
이날도 현장에는 노민재 서울시 재난안전실 도로관리과 주무관이 지반 탐사에 한창이었다. 그의 안내에 따라 땅꺼짐 탐사대의 GPR 탑재 차량에 탑승했다. 차량 내부는 범죄 영화에서 등장하는 도청 차량처럼 전파 장비와 모니터가 가득 실려 있었다.
GPR 탑재 차량은 시속 20~30km 정도로 느리게 이동하면서 차량 후면 아래에 부착된 전자기파 장비로 지하를 연속해서 훑었다. GPR은 매질에 따른 전파의 굴절과 변화를 통해 싱크홀의 잠재 원인이 될 수 있는 지하의 빈 공간(공동)을 발견한다.
흙을 통과하던 전파가 공동을 만나면 흙과 공동 속 공기의 매질 차이에 의해 전파의 강도와 극성 등이 변하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지하에서 반사된 전자기파가 차에 도달하면 모니터에 신호가 실시간 표시된다.다만 이것으로 지하 공동의 유무나 지반 이완 여부를 현장에서 곧바로 확인할 순 없다.
노 주무관은 "차량을 통해 수집한 미가공데이터(raw data)를 사무실에 가져가서 하나씩 분석해야 한다"며 "공동으로 의심되는신호를 맨눈으로 찾아내 위치를 잡아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동이 있다면 의심 신호가 나타나는데 여기에 주목하는 것이다. 그는 GPR 차량 탐사를 '1차 거름망'이라고 빗댔다. GPR 탐사는 총 세 단계로 진행된다.
1차에서 GPR 차량으로 넓은 범위 탐사를 끝내면 2차에선 수레처럼 생긴 핸디형 GPR 장비를 끌며 1차에서 의심이 든 부분을 좁은 범위로 정밀 탐측한다. 의심 신호는 토사층 내 매질의 차이가 있을 경우 통과하던 전자기파의 극성이 바뀌며 발생하는데 자갈이나 돌 때문에 생긴 공간에서도 비슷한 신호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2차까지 분석한 데이터에서도 공동이 있을 가능성이 있는 위치는 3차로 직접 땅을 뚫어 검사한다. 이를 천공 조사라고 한다. 천공 조사에서 공동이 확인되면 유동성채움재를 넣어 도로 하부 빈 곳을 채우며 싱크홀을 방지한다.
서울시 재난안전실 도로관리과의 노민재 주무관이 GPR 차량을 몰며 얻은 지하 탐측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있다. 과학동아 제공
● 3차원 좌표로 들여다본 땅 속 공간
"이렇게 땅속 지형의 옆 모습과 윗 모습이 나타납니다." GPR 차량을 몰던 노 주무관은 모니터를 가리키며 GPR 도로 탐사 과정을 수학에서 쓰이는 'xyz 3차원 좌표계'로 설명했다.
지하 공간은 지상과 마찬가지로 가로·세로·높이 축으로 이뤄진 3차원 공간이다.GPR 탐사는 지반을 xy(가로·세로) 평면 지형과 yz(세로·높이) 평면지형으로 나눠 동시에 측정한다. 도로 밑 공간을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과 옆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동시 분석해 땅속 빈 공간의 유무와 위치를 판단하는 것이다.
노 주무관은 "지하 공동은 탐측한 평면에 이상 신호가 있는 점"이라며 "공동 탐사는 도로라는 삼차원 공간에서 공동이라는 점을 찾는 과정"이라고 소개했다. 조사 가능한 최대 깊이에 관한 질문에는 "지표면에서 2m 아래까지 (탐측이) 가능하다"고 노 주무관은 답했다.
그는 "지금 보시는 GPR 탐사 차량의 안테나는 400MHz(메가헤르츠) 기반의 전자기파를 방출해 공동을 탐지한다"며 설명에 나섰다.
"주파수가 높을수록 더 높은 해상도를 가지나 유효 탐사깊이가 낮아지는 반면 주파수가 낮아지면 전자기파가 더 깊이 침투하지만 해상도가 떨어집니다.
또한 실제 도로에서 탐사를 수행할 땐 운전자나 보행자의 교통 안전 문제로 인해 안테나의 크기를 고려해야 하죠. 따라서 서울시는 여러 실험 끝에 400~500MHz의 주파수로 공동 조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서울시 땅꺼짐 탐사대는 GPR 장비가 도입된 2014년부터 2024년까지 서울 전역 2만 4000여km를 조사해 공동 6955개를 발견, 조치했다.
땅꺼짐 탐사대는 발견한 공동 개수를 '밀도'로 계산한다. 10km의 도로를 검사했을 때 공동이 5개 발견되면 0.5개/km인 것이다. 공동의 밀도를 줄여나가는 걸 목표하는 이들의 탐사는 비가 오지 않는 한 매일 이어진다. GPR 탐사는 전자기파로 땅속을 조사하기에 빗물에 전파가 감쇄된 전자기파의 투과력이 떨어지면 정확도가 낮아지기 때문이다.
노 주무관은 "2025년 서울시의 지반 검사 2회차에서는 공동 밀도가 0.4~0.5개/km였다"면서 "3회차인 지금은 0.2~0.3개/km로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더 낮추기 위해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GPR 차량의 지하 공간 '엿보기' -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땅꺼짐 탐사대'는 GPR 차량으로 싱크홀 1차 탐사를 진행한다. GPR 차량은 노면을 지나가면서 전자기파로 지하 공간을 훑으며 매질에 따른 전자기파 신호의 차이를 비교해 내부의 공동을 확인한다. 차량의 전자기파 장비는 xy 면과 xz 면을 동시에 탐측해 공동의 대략적 위치와 크기를 알아낸다. 정종훈, 서울시 재난안전실 제공
● 싱크홀 부르는 도로 균열, 미래엔 '혼자' 치유한다
영국 또한 한국 못지않게 싱크홀에 시달리고 있다. 2025년 2월에는 영국 런던에서 발생한 싱크홀로 약 30개 가구가 대피했다. 그렇다면 사람이 일일이 검사하지 않고도 싱크홀을 미리 방지할 수는 없을까. 최근 영국에서는 사람의 작업으로 발생한 싱크홀을 '자가복원' 방식으로 막으려는 기술 개발이 한창이다.
2022년 영국 스완지대와 킹스칼리지 런던 연구팀이 제작한 지름 1mm의 '자가 치유 아스팔트'에 들어가는 미세캡슐. 미세캡슐을 혼합한 아스팔트는 균열이 생기면 캡슐 안의 복원 물질이 방출돼 틈을 저절로 채운다.Applied Materials & Interfaces 제공
2025년 2월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은 싱크홀의 전조가 될 수 있는 아스팔트의 내부 균열을 자체적으로 메울 수 있는 '자가 치유 아스팔트' 개발에 한창이라고 밝혔다.
프란시스코 마틴-마르티네스 전 영국 스완지대 화학과 연구원(현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 화학과 연구원)과 호세 노람부에나-콘트레라스 스완지대 토목공학과 연구원이 이끄는 공동연구팀이 2022년부터 지속해오던 연구다.
자가 치유 아스팔트의 핵심은 분자 간 결합력이 큰 고분자를 아스팔트에 투입하는 일이다. 아스팔트 합성에는 석유 부산물인 끈적끈적한 검은색 물질 '비투멘(역청)'이 첨가되는데 시간이 지나 비투멘이 산화되면서 아스팔트에 균열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2022년 6월 연구팀은 식물성 기름으로 이뤄진 재생제를 일정 비율로 혼합해 지름 1mm의 다공성 '미세캡슐'을 만들었다. 미세캡슐을 혼합해 만든 아스팔트는 균열이 생겼을 때 캡슐이 터지면서 안에 있는 복원 물질이 방출된다. 생명체가 상처를 자가 치유하는 것처럼 도로의 갈라진 틈을 저절로 채우는 방식이다. (doi: 10.1021/acsami.2c07301)
2024년에는 연구팀은 미세캡슐의 복원 과정과 효과를 시험하기 위해 자체 제작한 인공지능(AI)을 통해 아스팔트 균열에 작용하는 물질을 분석했다. 실험 결과 아스팔트의 미세 균열이 저절로 복원되는 데는 약 1시간이 걸린 것으로 확인됐다. 복구 능력을 입증한 것이다. (doi: 10.1039/D3DD00245D)
실험을 이끈 호세 연구원은 서면으로 "자가 치유 소재는 아직 상용화 단계는 아니지만 향후 현실에서 쓰인다면 싱크홀 크기를 획기적으로 줄이면서도 도로 공사 없이 친환경적으로 균열을 메울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관련기사
과학동아 6월호, 과학으로 맞서는 발밑의 폭탄 싱크홀
[박동현 기자 parkdd@donga.com]
Copyright © 동아사이언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매주 일요일 밤 0시에 랭킹을 초기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