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광수 민정수석 낙마 논란
일러스트=김성규
이재명 대통령이 13일 차명 부동산·대출 의혹이 불거진 오광수 민정수석의 사의를 수용했다. 새 정부 첫 고위 공직자 낙마 사례로, 임명 닷새 만이다. 오 전 수석이 지난 8일 공식 임명되기 전 내정 사실이 알려졌을 때부터 더불어민주당 등 여권에서는 “특수부 검사 출신은 안 된다”는 공개적인 반대·우려 목소리가 터져 나왔었다. 대통령실은 “일 잘하는 사람”이라며 정면 돌파에 나서는 분위기였지만, 친여 성향 매체들을 중심으로 오 전 수석에 대한 의혹이 잇따라 제기되자 결국 ‘자진 사퇴’로 선회한 것이다. 대선 승리를 위해 뭉쳤던 여권이 새 정부 출범 뒤 다시 각자 목소리를 내며 갈등 국면이 생긴 게 ‘오광수 낙마’의 배경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대통령실은 이날 오 전 수석이 전날 사의를 표했다며 “이 대통령은 공직 기강 확립과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민정수석의 중요성을 두루 감안해 사의를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오 수석 본인이 당정(黨政)에 여러 가지 국정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했다. 오 전 수석 발탁을 두고 대통령실과 민주당 사이에 생긴 갈등과 불편한 기류가 사퇴 결심에 영향을 줬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오 전 수석이 지난 8일 공식 임명되기 전부터 여권에서는 “검찰 개혁을 맡아야 할 민정수석에 특수부 검사 출신은 안 된다”는 반대가 나왔다. 이 대통령의 사법시험·연수원 동기인 오 전 수석은 대검 중수부 과장과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장, 대구지검장 등을 지낸 특수통 검사 출신이다. 오 전 수석 임명 직후 나온 차명 부동산 보유 의혹과 사퇴 요구도 주로 친(親)여 성향으로 분류되는 매체에서 제기됐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8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청사에서 수석급 인선 발표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우상호 정무수석, 강훈식 비서실장, 오광수 민정수석, 이규연 홍보수석./뉴스1
대통령실은 처음엔 “검찰을 잘 아는, 일을 제대로 할 사람을 뽑은 것”이라며 오 전 수석에 대한 신임을 확고히 했다. 이 대통령이 지난 주말 여당 지도부를 관저로 불러 식사한 자리에서 직접 오 전 수석의 기용 필요성을 설득하기도 했다. 이에 당도 “정권 초 대통령의 인사 방침을 신뢰하자”는 주장에 힘이 실렸다. 하지만 오 전 수석의 검사 시절 차명 대출 의혹이 나오고 민주당 정성호 의원, 양부남 의원 등 친명(親明)계 핵심 인사들까지 부정적 의견을 내자 결국 오 전 수석 사퇴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오 전 수석의 낙마의 표면적 이유는 ‘부실 검증’이다. 대선 캠프 때부터 나름대로 검증 작업이 이뤄졌지만, 공직기강비서관실 같은 공식 조직을 거친 게 아니라서 한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좀 더 근원적인 이유는 여권의 ‘선명성·정체성 투쟁’에서 찾아야 한다는 분석이 정치권에서 나온다. 민주당의 한 인사는 “이 대통령은 본인이 가장 잘 알면서도 검증된 제도권 인사를 쓰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민주화 운동과 시민사회계에 뿌리를 둔 민주당과 진보 진영은 정체성이 검증되지 않은 인사를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의지를 갖고 밀어붙인 인사가 ‘1호 낙마자’가 됐는데 여당에서 “환영한다”(윤준병 의원)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갈등 양상은 외교 안보 라인 인선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국가안보실장에 정통 외교 관료 출신인 위성락 실장이 임명됐지만, 당장 오는 15일 시작되는 7국(G7) 정상회담을 앞둔 이날까지도 안보실 1·2·3차장은 공석이다. 한미 동맹을 중시하는 그룹인 ‘동맹파’에 속한 위 실장이 원하는 인사를, 북한과 화해·협력하기를 강조하는 ‘자주파’ 그룹이 막고 있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도 주변에서 빌렸다는 돈이 ‘정치자금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지만 민주당의 강한 엄호는 받지 못하고 있다. 이를 두고도 김 후보자가 민주당 주류인 정통 586그룹엔 속하지 못한 점, 과거 민주당을 탈당한 전력이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임명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소속 송기호 변호사/뉴스1
대통령실은 오 수석이 사퇴한 이날, 민변(민주 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에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를 국정상황실장에 임명했다. 국정상황실장은 경찰과 국가정보원 등 치안·정보 기관에서 올라오는 각종 정보를 취합해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자리다. 대통령에게 수시로 보고하기 때문에 요직 중의 요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정부는 국정상황실을 확대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송 실장이 뚜렷한 친명 인사로 분류되는 건 아니지만, 검찰 출신 오 전 수석은 나가고 민변 출신이 들어온 건 상징적”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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