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연구개발(R&D)은 지난 3년 동안 생태계가 훼손된 영역으로 꼽힌다. 대한민국 초유의 대폭 R&D 예산 삭감 사태로 연구기관, 이공계 학생, 기업이 피해를 봤다.
반면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R&D 예산 확대와 더불어 도전·창의·장기적 연구수행 환경, 연구자 목소리 대폭 반영, 이공계 핵심 인재 양성 지원 등을 약속하며 '과학기술 강국화' 비전을 제시했다. 과기 R&D가 새정부 출범 이후 바닥을 치고 반등할지 기대가 커진다.
각계 요청도 쇄도한다. 연구 현장에서는 쪼그라든 예산 회복 및 거버넌스 개편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미래 대계를 위한 인재 확보, 현장 처우 개선도 요구된다.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한 R&D 기업은 세제 지원 등을, 성장이 둔화된 전국의 지역기업은 R&D 기반 성장 동력 마련 시급성을 말한다.
◇R&D 예산, 회복 넘어 정상화 필요
새 정부 출범과 함께 과기계가 가장 주목한 것은 R&D 예산 '정상화'다. 지난 정부 대규모 R&D 예산 삭감 사태가 연구현장 마비 수준으로 이어진 만큼 회복을 넘어 과감한 투자 확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다.
지난 정부는 비효율적 R&D 구조조정을 명분으로 예산을 대거 삭감했다.
지난 5년간 정부 R&D 예산 추이를 보면 예산 지난해 정부 R&D 예산 규모는 26조5000억원으로 전년 31조1000억원 대비 약 14.6% 감소했다. 2021년 27조4000억원, 2022년 29조8000억원으로 점차 증가 추세를 보이던 R&D 예산이 대폭 삭감된 것이다. 정부 총지출대비 비율 또한 2021년 4.5%, 2022년 4.4%, 2023년 4.9%에서 지난해 4% 수준으로 떨어졌다.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등 연구현장에서는 연구 중단 사태 등을 이유로 곧바로 반발했고, 이를 의식한 지난 정부는 올해 R&D 예산을 29조6000억원으로 다시 늘렸다. 그럼에도 여파가 계속된다는 게 과학기술계의 한결 같은 지적이다.
과기계는 R&D 예산 비중을 총지출대비 5% 이상 규모로 즉각 확대함과 동시에 R&D 예산 편성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태식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 회장은 “5년간 꾸준한 투자로 연구현장이 장기적이고 예측가능한 환경에서 R&D를 수행해야 한다”며 “기초과학 예산, 창의적 인재 육성 예산 또한 반드시 늘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정성·전문성 확보 거버넌스 필요
국가 생존전략으로서 과학기술 역할이 강조됨에 따라 새정부도 과학기술을 국정 운영 중심축으로 삼고, 이를 위해 거버넌스 강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R&D 예산 삭감 후유증 해소 역할은 물론 기존 부처별 분산된 R&D 기능을 집중 체제로 전환, 과기 국정 운영 안정성·전문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 '과학기술부총리제' 도입 등 거버넌스 공약을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았다. 취임 후에도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힌 거버넌스 개편 대신 연구현장 목소리를 R&D 시스템에 반영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다만 과기계는 이런 연구현장 소통 역할로 과기부총리 등 핵심 컨트롤타워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와 함께 지난 정부 과학기술수석 대신 신설된 'AI미래기획수석'의 범부처 과기 정책 조율 역할 필요성도 함께 강조된다. 미국 백악관의 '과학기술정책실(OSTP)'처럼 대통령의 과기 정책을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함과 동시에 부처 과기 정책 컨트롤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찬수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부원장은 “과기부총리와 같이 부처별 흩어진 R&D 투자 기능을 전체적으로 총괄 조정할 수 있는 거버넌스에 대한 지속적인 고민이 필요하다”며 “AI수석 또한 미래지향적인 총괄 거버넌스 형태로 발전 가능성에 기대를 거는 만큼 과학기술 공약의 실질적 이행 역할을 수행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인재 유입·양성 전력 기울여야
국가 전반 인구 문제가 가시화된 가운데 이공계 기피 및 의대 선호, 우수 인재 해외 유출 등으로 과기 인재 확보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이에 새정부에서 획기적인 과기 인재 유입·양성 정책 기틀을 마련하고, 제도적 장치를 기획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된다.
과기 인재에 대한 '경제·사회적 인센티브' 강화가 먼저 거론된다. 장학금을 확대해 이공계 학생에 대한 매력도를 높이고, 산·학·연·정이 폭넓게 협력해 우수 대학원생 및 신진 연구자에게 최고 수준 처우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해외 인재 유치 필요성도 제기된다. 미국의 'O-1 비자'를 본딴 '코리아 O-1 비자' 제도를 마련, 탁월한 해외 연구자들이 장기 계약으로 국내에서 연구를 수행하도록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와 더불어 정규직 및 리더급 진출 비중이 낮은 여성 과기 인재의 '유리천장 깨기'에 나서고, 석학 정년 연장제도 등 고경력자 활용 제도도 마련해야 한다고 과기계는 말한다.
정진호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은 “새정부 과기 정책은 담대한 인재 유입·양성 정책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담은 메시지로부터 시작돼야 한다“며 “새정부에서 과기 인재를 중요시하는 정책을 궁리하고, 설계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년 확대, PBS 개선으로 사기 높여야
연구현장 구성원에 대한 처우 개선 또한 화두다. 지난 예산 삭감 사태와 '카르텔' 논란으로 현장의 사기가 바닥에 떨어졌고 처우 악화가 지속됐다.
출연연 연구자 정년을 65세로 환원하고 장기적으로는 늘리는 한편 임금피크제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연구자가 인건비 확보를 위한 과제 수주에 몰두하게 하는 '연구과제중심제도(PBS)' 문제 역시 새정부에서 정책 테이블에 올려야 할 과제로 꼽힌다.
이들 과제는 이전 정권에서도 개선을 모색했으나 이루지 못했던 것으로, 새정부에서 관철에 기대를 거는 이들이 많다.
김진수 출연연과학기술인협의회총연합회(연총) 회장은 “연구 현장이 활기를 띨 수 있도록 지원해 떨어진 사기를 높여야 한다”며 “이 대통령의 과기 R&D 현장에 대한 개선 의지가 실천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영준 기자 kyj85@etnews.com, 이인희 기자 leeih@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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