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전 이스라엘 공군의 공습으로 파괴된 이란 수도 테헤란의 아파트에 출동한 소방대원이 동료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이날 이란의 핵 시설과 군사 시설을 겨냥한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이란의 군 고위 인사와 핵 개발 과학자 등 20여 명이 사망했다. 이스라엘이 은밀하게 진행하는 암살이나 파괴 공작이 아닌 대규모 공습으로 이란을 타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스라엘이 추가 공습을 공언하고 이란이 보복을 다짐하면서 국제사회는 확전을 우려하고 있다./AP 연합뉴스
이스라엘이 13일 새벽과 오후 두 차례에 걸쳐 이란 핵 시설과 군사 시설을 대대적으로 공습, 핵 개발 관련 시설 여러 곳이 파괴되고 참모총장을 비롯한 군 수뇌부 핵심 인사들과 핵 개발에 참여해 온 과학자 등 30여 명이 사망했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 개발을 안보의 최대 위협으로 간주하고, 종종 요인 암살이나 시설 파괴 같은 공작으로 타격을 입혀 왔다. 그러나 이번처럼 공개적으로 대규모 연쇄 공격을 퍼붓기는 처음이다.
이스라엘군은 공습 직후 성명에서 “오늘 새벽 이란 중부의 나탄즈 핵 농축 시설과 수도 테헤란 일대 혁명수비대 지휘부, 로레스탄의 미사일 기지 등 100여 곳을 공군이 정밀 타격했다”고 밝혔다. 이란도 공격 사실을 확인했다. 이란 관영 IRNA통신은 “새벽 3시 20분쯤부터 테헤란·나탄즈·타브리즈·케르만샤 등 여러 지역에서 폭발음이 연쇄적으로 울렸다”고 전했다. 이어서 이날 오후 “이스라엘이 나탄즈와 타브리즈를 추가 공격했다”고 했다. 이스라엘은 이번 대(對)이란 작전을 ‘일어서는 사자(Rising Lion)’로 명명하고, 필요에 따라 추가 공격을 하겠다고 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2022년 2월)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이슬람 무장 단체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2023년 10월)으로 발발한 ‘두 전쟁’의 지속 상황에서, 이번 사태까지 벌어지며 세계 정세는 격랑으로 빠져들었다. 이란의 대응 수위에 따라 이란과 이스라엘의 전면전 가능성도 우려되고 있다.
2월 12일 테헤란 남쪽에 있는 포르도 우라늄 농축 시설을 찍은 위성 사진./Maxar Technologies/ AFP 연합뉴스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 개발을 중단시키기 위한 미국과 이란의 핵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자 독자 공격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국무부는 이스라엘의 공습 직후 낸 성명에서 “미국은 이번 일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공격은 더욱 거세질 것”이라며 “이란은 아무것도 남지 않기 전에 (협상에 나서) 타협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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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이스라엘의 새벽 공습으로 이란군 고위 지휘관 20여 명과 핵과학자 최소 6명이 사망했다. 또 폭격당한 테헤란 시내에서도 민간인 사상자가 여럿 나왔다. CNN과 이스라엘·이란 언론들에 따르면 사망자 중에는 군 최고사령관인 모하마드 바게리 군 참모총장과 골람 알리 라시드 사령관, 이란 최정예군 이란혁명수비대에서 해외 작전을 총괄하는 호세인 살라미 사령관 등 군 수뇌부가 대거 포함됐다. 또 이란의 핵 개발을 총괄해 이스라엘의 제거 대상으로 꼽혀온 유명 핵과학자 모하마드 테헤란치와 페레이둔 압바시 등도 사망한 것으로 파악됐다.
13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모하마드 바게리 이란군 참모총장(오른쪽)과 호세인 살라미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최고사령관 소장(왼쪽). /EPA 연합뉴스
어둠을 틈타 진행된 이번 공격에는 이스라엘 공군의 F-35 스텔스기와 F-15I 전폭기, 무인기(드론), 조기 경보기 등 200여 대가 동원돼 300여 발의 미사일과 정밀 유도 폭탄을 퍼부었다. 또 이란의 방공망과 초기 대응을 완전히 마비시키기 위한 사이버 공격까지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란 영토 내에 미리 반입해 숨겨 놓은 무인기(드론) 편대가 군 주요 인사와 기지 공격에 활용됐다고 AP통신은 보도했다. 지난 1일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공군기지를 타격한 ‘거미줄 작전’과 유사한 형태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공습 후 발표한 성명에서 “이란은 이미 핵폭탄 9기를 만들 수 있는 고농축 우라늄을 확보했고, 이를 방치할 수는 없었다”며 자위적 차원에서 공습했음을 강조했다. 또 “이번 작전은 필요시 며칠이 걸리든 계속될 것”이라며 이란의 대응에 따라 또 공습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각료 회의 후 추가 성명에선 “공습은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했다.
이란은 즉각 보복을 다짐했다.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 지도자는 긴급 성명에서 “시온주의 정권(이스라엘)이 더럽고 피비린내 나는 손으로 우리 조국을 공격했다”며 “가혹한 응징이 따를 것”이라고 했다. 이란은 공습을 당한 뒤 드론 100여 대를 이스라엘을 향해 날렸지만 상당수가 요르단·이라크 상공에서 방공망에 격추돼 큰 타격은 입히지 못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즉각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영공 폐쇄 및 주민 대피령을 내리는 한편 예비역 수만 명을 추가 소집했다.
이스라엘은 핵심 동맹인 미국에는 이번 공습 계획을 미리 알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폭스뉴스에 “이스라엘의 공습 계획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일 중동 지역의 미 외교·군사 인력 중 필수 인력을 제외하고 철수한다는 방침을 밝혀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제기돼 왔다. 이스라엘은 독일 등 유럽 일부 국가에도 공격 계획을 미리 알렸다.
이번 공격은 미국과 이란의 핵 관련 협상이 난항을 겪는 상황에서 벌어졌다. 미국은 지난 4월부터 이란과 핵 농축 중단 및 이란의 핵 시설 사찰 재개, 이를 조건으로 한 대(對)이란 제재 해제 등을 놓고 오만의 중재로 다섯 차례 대면 협상을 벌여왔으나, 이란이 “평화적 핵 이용을 위해 핵 농축을 포기하지 못한다”고 밝혀 교착 상태에 빠져 있었다. 네타냐후 총리가 이를 벼르고 벼른 이란 핵 시설 공습 기회로 삼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9일 네타냐후와 통화할 때 이란 공습 계획을 듣고 “군사 행동을 하기 전에 외교적 해법을 모색하고 싶다”며 즉각적 공격을 말린 것으로 전해졌다. 뉴욕타임스(NYT) 역시 “트럼프가 네타냐후에게 외교적 해법을 앞세우라고 제안했으나, 이스라엘은 ‘전략적 필요성’을 강조하며 독자 작전에 돌입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번 공격이 여러 정황상 트럼프 대통령의 ‘방관’ 아래 이뤄졌다고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NYT는 “이란 핵무장의 임계점 도달을 경고한 이스라엘의 메시지를 트럼프가 사실상 용인했다”고 전했다. CNN도 “트럼프가 핵 협상 파기 책임을 이란에 지우는 전략을 쓰고 있다”고 했다. 네타냐후 총리도 성명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의 핵무기 보유를 결코 허용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해왔다”며 사실상 ‘재가’를 얻었음을 시사했다.
이스라엘은 이번 공격으로 10년 이상 노려온 이란의 핵심 군 시설 상당수를 타격하는 ‘숙원’을 이뤘다. 테헤란의 이란혁명수비대 본부와 로레스탄의 미사일 기지, 케르만샤의 통신 시설, 쿠르드 산악 지대의 드론 기지 등이다. 이스라엘 매체들은 “모사드(이스라엘의 해외 정보기관)가 공습 직전 이란의 방공망과 미사일 통신망을 대거 교란했다”고도 전했다.
현재 이란의 핵 시설과 군 시설이 어느 정도 타격을 입었는지는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공격으로 혁명수비대 사령부는 사실상 지휘 기능을 상실했고, 이란 전역의 군 통신망이 마비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란 군 지도부의 인명 손실 역시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 CNN은 “이란의 핵 프로그램에 큰 타격을 가할 만한 인적 손실”이라고 전했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하메네이 지시에 따라 1차로 이날 오전 장거리 자폭 공격 드론 100여 대를 이스라엘로 발사했고, 추가 보복을 준비 중이다. 이란 관영 IRNA통신은 “이란군은 복수 임무를 위한 대비를 완료했다”며 “역내 전방위적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로이터도 “공습에 상응하는 여러 보복이 준비되고 있다”며 “시점은 이란이 결정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란은 이스라엘의 자국 공격을 논의하기 위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 소집도 요구했다.
다만 이란의 보복 수단은 제한적이다. 이란과 이스라엘은 직선거리로 1000㎞ 이상 떨어져 있다. 과거엔 ‘저항의 축’이라는 친이란 이슬람 무장 단체 하마스와 헤즈볼라가 각각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와 레바논에서 이스라엘을 직접 공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2023년 10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래 큰 타격을 입은 데다, 지난해 4월과 10월 두 차례 폭격으로 이란 본토의 군사 인프라도 다수 파괴된 상태다.
앞으로 이란의 복수 수위와 시기, 이스라엘의 후속 조치, 미국의 개입 여부가 수일 내 긴장 정도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공격으로 15일로 예정된 미국과 이란의 6차 대면 협상은 무산될 전망이다. 트럼프는 “이란은 핵폭탄을 가질 수 없다”며 “우리는 협상 테이블로 돌아가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국제사회는 이번 사태가 대규모 중동 전쟁으로 번질 가능성에 긴장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모든 당사자는 절제된 대응을 하고, 외교적 경로로 복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성명을 내고 공격 중단을 요구했고, 사우디아라비아와 오만 등 이슬람권 국가들은 이스라엘 규탄 성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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