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돕는 ‘에이블테크’의 진화
청각장애인인 대학생 장모(21)씨는 지난해 대학에 입학한 뒤부터 매일 인공지능(AI) 자막 서비스 ‘소보로’를 사용하고 있다. 강의와 회의, 일상 대화 등 다양한 음성 정보를 스마트폰 화면에 실시간 자막으로 띄워준다. 장씨는 “과거에는 보청기를 착용하고도 주변 소음 때문에 중요한 내용을 자주 놓쳤다”며 “지금은 자막으로 내용을 곧장 이해할 수 있어서 질문을 바로 하고, 수업 참여도 훨씬 적극적으로 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그래픽=양인성
장애인이나 고령층 등 신체적·인지적 제약이 있는 이들의 일상을 돕는 기술 산업인 ‘에이블 테크(AbleTech)’가 인공지능(AI) 기술과 결합되며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보청기나 점자 키보드처럼 하드웨어 위주의 보조 기기가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AI 기반의 소프트웨어 기술이 취약 계층의 일상을 돕는다.
◇ 비용 장벽 낮춘 AI
스타트업 잼잼 테라퓨틱스가 개발한 ‘잼잼400’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나 소근육 재활이 필요한 아동을 위한 AI 재활 앱이다. 모션 인식 기술은 장갑이나 손가락 끝에 착용하는 인식 장치를 이용해야 하는데, 잼잼400은 AI가 사용자의 손 움직임을 인식해 게임 형태의 맞춤형 재활 훈련을 제공한다. 주먹을 쥐었다 펴는 수준의 동작만 인식할 수 있었던 AI 모델에 재활 운동 관련 동작을 학습시켰고, 이를 게임 콘텐츠에 적용시켰다. 병원에서 물리 치료를 받을 경우 월평균 150만원이 드는 반면, 잼잼400은 태블릿 PC만 있으면 월 5만원 수준의 구독료로 수백 회의 훈련이 가능하다.
보청기 등 기존 하드웨어 기반 보조 기기는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에 이르는 고가 장비가 대부분이었다. 뇌병변이나 발달장애인들이 받는 언어·재활 치료 역시 장기간 반복 치료가 필요해, 월 수십만 원에서 100만 원 이상 비용이 드는 경우도 많았다. 반면 AI 기반 서비스는 대부분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등 일상적인 기기만으로도 작동할 수 있고, 앱·클라우드 기반으로 사용료가 저렴하다. 고가 장비 없이도 반복 훈련과 치료가 가능한 것이다.
카이스트가 개발한 ‘엑세스톡’은 말을 거의 하지 않는 자폐 아동을 위한 AI 소통 도구다. 흔히 자폐 아동이 사용하는 의사소통 보조 도구는 아이가 그림 카드를 골라 보여주는 방식이라, 감성 등 다양한 의사를 표현하기 어렵다. ‘엑세스톡’은 아이의 상황과 흥미에 맞춰 추천 단어 카드를 AI가 실시간으로 골라주고, 보호자에게는 무엇을 물어보면 좋을지 대화 가이드를 함께 제공해 의사소통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보호자가 입력한 상황 정보와 아이의 과거 선택 데이터를 AI가 학습, 아동의 관심사와 맥락에 맞는 단어 카드를 추천한다.역시 별도의 장비 없이 태블릿 PC로 부모와 아이가 간편하게 일상적인 소통을 할 수 있게끔 했다.
◇ AI의 ‘맞춤형’ 돌봄
AI 기술은 에이블테크를 단순한 기능 보조를 넘어 ‘개인 맞춤형 지원’으로 진화시키고 있다. 사용자의 장애 유형뿐만 아니라 성향, 관심사, 생활 환경까지 반영한 세밀한 서비스 제공이 가능해진 것이다.
네이버가 개발한 ‘클로바 케어콜’은 AI가 전화로 장애인이나 독거노인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이상 징후가 감지되면 보호자나 지자체에 자동으로 알리는 서비스다. 건강 상태·식사 여부·수면 패턴 등을 분석해 정서적 대화를 나누며, ‘AI 사회복지사’ 역할을 수행한다. 네이버가 개발한 한국어 AI 언어 모델 ‘하이퍼클로바’가 적용돼 실제 사람과 대화하듯 다양한 주제로 상호작용이 가능하다. 지자체에서는 ‘콜 현황판’을 통해 통화 내용을 일일이 확인하지 않아도 일상생활에 이상이 있는 대상자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이미 서울·경기·부산 등 전국 130여 지자체에서 도입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멀티미디어 플랫폼 ‘이지플러스’는 AI를 통해 뉴스·유튜브·라디오 등 관심사 기반 콘텐츠를 추천해준다. 기존 모바일 플랫폼은 비장애인을 기준으로 설계돼 시각장애인이 접근하기 어려웠고, 갑자기 뜨는 광고성 팝업 때문에 아예 콘텐츠 이용이 불가능한 경우도 많았다. 이지플러스는 음성 안내를 기반으로 터치 등 간단한 제스처만으로 원하는 콘텐츠를 파악·선택할 수 있고, 불필요한 광고와 팝업을 걸러낸 후 사용자가 원하는 정보만 간결하게 요약해주는 등 플랫폼 이용에 있어서 장애인들의 심리적·물리적 장벽을 크게 낮췄다.
☞에이블테크(AbleTech)
‘Able(할 수 있는)’과 ‘Technology(기술)’의 합성어로, 장애인·노약자 등 신체와 인지 능력에 제약을 가진 사람들이 일상생활·교육·직무 등 다양한 영역에서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돕는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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