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마켓톡톡
소상공인·자영업자 부채 탕감 추진
코로나 당시 재정지출 세계 최저
국가부채도 주요국 중 최저이지만
재정 여유 충분, 탕감 더 빨랐어야
부채탕감·파산에 엄격한 사회
안전망·재도전 기회로 인정해야
도덕적 해이부터 지적하기 전에
통계 뒤 차주들 상환 의지 읽어야
정부가 추진하는 배드뱅크 방식의 '코로나19 피해 소상공인 부채 탕감'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배드뱅크라는 방식이 부적절하고, 국가부채 증가로 재정 건전성이 악화하며, 차주借主들의 도덕적 해이가 걱정된다는 게 주된 이유다. 코로나19 피해조차 개인의 문제로 봐야 할까. 여러 논란과 현실을 더스쿠프가 자세히 알아봤다.
코로나19 당시 발생한 소상공인의 정책자금 대출 탕감을 놓고 논란이 많다. 서울 시내 한 재래시장 바닥에 대출 광고지가 뿌려져 있다. [사진 | 뉴시스]
쟁점별로 살펴보자. 먼저 국가 재정건전성 문제다. 현 상태로만 판단하면 기우杞憂다. 지금 거론되는 소상공인들 부채는 팬데믹 당시 발생했는데, 당시 우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사회복지 재정지출 증가분이 가장 적었다. 2019년 우리 정부의 사회복지 지출 증가분은 국내총생산(GDP)의 12.3%에 그쳤다. 프랑스는 30.7%, 일본은 22.8%, 호주와 미국은 각각 20.5%, 18.3%였다(OECD).
우리나라 재정건전성은 세계적으로 가장 건전한 수준이다. 2023년 기준 GDP 대비 정부 총부채와 순부채를 보면, 우리나라 총부채는 54.3%, 순부채는 23.8%였다. 서구권에서 가장 재정 건전성이 높은 독일의 총부채 65.9%, 46.5%보다도 훨씬 낮다(나라살림연구소). 매년 수십조원씩 무차별로 개인 빚을 탕감하겠다면 문제지만, 코로나19 정책자금 대출의 탕감은 오히려 너무 늦은 처방이다.
배드뱅크는 기업용이지 개인의 부채 탕감용이 아니라는 지적도 존재한다. 실제로 1980년대 미국에서 처음 시작한 이후 배드뱅크는 금융회사 자산을 좋은 것(굿)과 나쁜 것(배드)으로 나눠 도산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시행됐다.
우리나라도 1997년 외환위기, 2003년 카드 사태에서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산하에 일종의 배드뱅크를 두고 부실채권을 처리했다. 지금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을 처리하기 위한 배드뱅크 설립을 논의하고 있다.
원칙적으로 개인의 부채는 파산과 회생 절차를 통해서 탕감하는 게 맞다. 그런데 개인의 부채 탕감을 법원의 결정에만 맡길 수 없는 게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우리는 1962년 개인파산면책 제도를 도입했지만, 법원이 경제위기 때마다 오히려 면책심리審理를 좀 더 깐깐하게 하는 식으로 대처해 파산 신청 자체를 피하게 만들었다.
법관이 채권자인 은행의 이익을 챙겨주는 사이 파산 신청자는 2007년 15만4039명에서 2013년 5만6983명, 2023년 4만1239명으로 급감했다. 채권자인 금융회사가 일부라도 상환을 받을 수 있는 회생 신청자가 증가한 것과는 대비된다.
사회가 부채 탕감을 받은 개인의 도덕적 해이를 일단 의심부터 하고, 도덕적 단죄에 나서면서 차별을 조장하는 측면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파산과 회생 절차를 밟은 개인은 사실상 경제 시스템에서 투명인간으로 전락한다. 법원이 허락하지 않는 한 이들은 10년 후에야 복권되고, 이 기간 사회의 신용 시스템에서 배제되기 때문이다.
파산자의 직업 선택을 제한하는 등 공식적인 불이익도 많지만, 보이지 않는 배척도 많다. 은행들은 금융당국이 여러 차례 경고해도 보관해서는 안 되는 개인의 연체 사실 등을 최대한 보유하려 하고, 가산금리 산정 기준조차 밝히지 않으면서 연체 낙인을 영구적으로 가져가는 게 아니냐는 의심까지 산다.
우리나라가 파산한 개인을 사회 시스템에서 배제하는 데 초점을 둔다면, 미국 등 서구권은 개인이 파산으로 다시 도전할 수 있도록 만드는 데 집중한다. 경제학 교과서는 미국의 개인파산 면책제도가 1929년 대공황 때 요긴하게 쓰여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기술한다.
이를 정확하게 표현하면, 파산 제도가 수많은 미국인의 목숨을 살렸다는 얘기다. 미국과 서구권의 파산법은 도덕적 문제에서 가급적 거리를 두려고 노력하고, 파산의 결과로 개인이 직업 선택이나 금융거래에서 차별받지 않는 게 기본이기 때문이다.
배드뱅크 논란의 대부분은 부채 탕감을 "타인이 혜택을 본다, 그래서 나는 혜택을 못 받는다"는 개인적인 일로 받아들이는 데서 발생한다. 코로나19 당시 개인의 부채, 가계의 부채는 곧 사회의 문제다.
조세프 스푸너 런던정경대학 로스쿨 교수는 2021년 보고서에서 "(7월 현재) 영국에서 팬데믹으로 빚을 진 5명 중 1명꼴로 생활비가 부족하고, 10명 중 1명은 식료품 살 돈도 없다"며 "2018년 영국 국가감사원이 과도한 개인 부채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연간 9억 파운드라고 추정했는데, 팬데믹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스푸너 교수는 "징벌적 제도인 파산법을 개정해 광범위한 개인 부채 탕감을 받아들이고, 파산할 수 있는 권리를 사회 안전망을 유지하는 최후의 수단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파산과 부채 탕감이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개인과 가계를 국가의 성장 시스템에 머물게 함으로써 이들이 저축과 소비로 이바지할 수 있게 해주는 '최후의 안전장치'라는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부채 탕감의 도덕적 해이 논란은 우리가 이들을 숫자로만 인식해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여러 그래프와 통계에서 어떻게든 빚을 상환해 보려는 취약차주들의 의지를 어느 정도 읽을 수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6월 발표한 금융안전성 보고서를 보면, 자영업자 연체 지속률은 2019년 2분기 63.9%에서 2022년 2분기 72.0%, 2023년 2분기 71.6%, 2024년 1분기 74.6%로 상승하고 있다. 한번 연체에 빠지면 빠져나오기 힘들다는 얘기다.
그런데 자영업자들의 신규 연체를 뜻하는 연체 진입률은 2019년 2분기 1.28%였지만, 2021년 2분기에 0.52%, 2022년 2분기에도 0.61%로 꺾였고, 다시 2023년 2분기 1.23%, 2024년 1분기 1.52%로 상승했다.
서울시 서초구 서울회생법원 앞을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사진 | 뉴시스]
이 숫자들의 출렁임을 자영업 차주借主들이 어떻게든 연체에 빠지지 않으려 노력한 흔적으로 볼 수 있다. 정부의 원리금 상환 유예나 일부 금융회사의 지원도 작용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차주의 상환 의지는 특히 경제위기일수록 높아진다. 미국 개인 신용평가 회사 FICO(Fair Issac Corporation)는 2022년 11월 '부채 추심: 마지막 경제위기에서 무엇을 배웠나?'라는 보고서에서 채권 추심 업무를 하는 직원들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경기침체로 타격을 받은 차주의 평균 상환 기간은 9개월로 짧지만, 일반적인 연체 차주의 평균 상환 기간은 2년 6개월이다. 이를 분별하지 않고 추심하면, 연체가 더 길어지고, 빚의 연쇄효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경기침체로 타격을 받은 이들은 재정적 도덕성이 높고,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조처를 하는 경향이 있다." 부채 탕감의 도덕적 해이부터 비난하는 행위는 전문 채권 추심업자조차 고려하는 '상환 의지'를 무시한 일이 아닐까.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eongyeon.han@thescoop.co.kr
Copyright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매주 일요일 밤 0시에 랭킹을 초기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