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으로 헌법을 파괴한 윤석열 대통령이 파면됐다. 다시는 한국 현대사에서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그날의 진상을 역사에 낱낱이 기록하고 윤석열 전 대통령과 계엄 관련자들에게 제대로 된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할 때다. 12.3 비상계엄의 실체는 아직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다. 계엄에 동조한 세력 중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는 이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뉴스타파는 내란 수사기록 등 방대한 사건 기록을 통해 12.3 내란의 심층부 속, 아직 제대로 조명되지 못한 장면들을 포착했다. 뉴스타파가 새롭게 써내려가는 그날의 범죄 기록. [편집자주]
‘충암파’로 불리는 김용현 전 국방장관 등 내란 일당이 북한 오물풍선 원점 타격 계획에 이어 북한과의 교전을 가정한 ‘대응 지침’을 만든 정황이 뉴스타파 취재 결과 확인됐다. 방첩사 간부들에게 하달된 이 지침은 지난해 11월 29일 무렵 작성된 것으로 파악된다. 12·3 비상계엄을 불과 4일 앞두고 북한과의 무력 충돌을 대비한 정황이 새롭게 확인되면서 소위 ’북풍’을 유도해 계엄 명분을 만들려 했다는 외환 의혹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여인형, 비상계엄 앞두고 오물풍선 대응 지침 전파
뉴스타파가 입수한 내란 수사기록과 군 간부들의 검찰 진술을 종합하면, 방첩사는 북한의 33번째 오물풍선 부양 직후인 지난해 11월 29일 군 내부 메신저를 통해 ‘적 오물 쓰레기 풍선 관련 사령부 대응 지침’을 방첩사 간부들에게 전파했다. 지침은 북한 도발에 따른 군의 준비태세를 구분한 것으로 총 3단계로 구성됐다. 가장 낮은 1단계는 적 오물풍선 부양시, 2단계는 아군전방(수도)군단 경고사격시, 최종 3단계는 적 역대응에 따른 아군측 피해 발생시였다.
여인형 당시 방첩사령관의 지시로 작성된 이 지침은 방첩사 A 과장을 통해 공유됐다. A 과장은 “사령관 지침에 따라, 사령부 대응 지침을 오늘(11.29)부터 적용 예정으로, 센터에서는 상황 발생 즉시 안보폰으로 전파하겠다”고 통보했다.
여인형이 내린 지침은 북한과의 교전 상황을 방첩사 스스로 대비하거나 예견했다는 것을 뜻한다. △ 북한에서 오물풍선이 날아오면(1단계) △ 방공부대 등이 위협사격을 가하고(2단계) △ 이에 대한 보복으로 북한이 ‘역대응’을 할 것(3단계)까지 계산해 지침이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대응으로 우리 측이 입을 피해를 상정한 것은 ‘오물풍선 원점 타격 계획’과 관련이 있다. 우리 군은 지난해 7월 “북한 오물풍선 부양으로 인적 피해 발생시 도발 원점을 직접 타격해 응징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특히 김용현 전 장관은 12·3 비상계엄을 약 보름 앞둔 11월 17일 ‘적 오물풍선이 군사분계선을 넘을시 원칙적으로 경고사격을 하고, 북한이 화기 도발을 하면 지체 없이 원점을 타격하도록 하라’는 대응 계획을 우리 군에 하달했다.
이를 방첩사 지침에 대입하면, 우리 측 경고사격은 2단계, 북한 화기 도발은 3단계 상황에 해당한다. 결국 북한의 보복으로 3단계 조건이 충족되면, 그때부턴 국지전으로 상황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었다는 얘기다.
오물풍선 원점 타격 계획과 국지전 유도
뉴스타파가 확인한 이재학 방첩사 대령의 검찰 진술에 따르면, 당시 방첩사는 북한과의 교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상황을 준비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대령은 지난해 11월 28일 “상황이 위중하니 부대에 위치에 있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날은 남측의 대북 전단 살포에 반발해 북한이 33번째 오물풍선을 띄운 날이었다. 방첩사 간부는 전화로 “사령관(여인형)님께서 오물풍선이 국지전으로 확대될 수 있어 상황을 위중하게 보고 계신다”는 의중을 전했다.
지난 4월 30일 군사 재판에 출석한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의 증언도 북한과의 ‘국지전 시나리오’를 뒷받침한다. 그는 이날 오물풍선 대응이 계엄과 연결되는 상황을 대비하고 있었다는 취지로 말했다. 곽 전 사령관은 “전방에서 뭔가 군사적 상황이 생겨 경계태세가 격상이 되고, 경계태세가 격상되면 민과 관련된 피해가 확대돼 통합 방위사태가 선포되고, 여기에 시위나 이런 것이 더 격화하면 그것이 결국은 계엄령이 선포돼 군사적인 상황으로 개입되는 일련의 절차를 가장 고민하며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2월 4일, 헌법재판소)
내란 일당이 북한 오물풍선에 대한 경고사격 등 대응 수위를 급격히 높인 시점은 지난해 11월 전후로 파악된다. 11월 9일 열린 국방부장관 공관 회동이 ‘분기점’이 됐을 가능성이 있다. 이 자리엔 김용현, 여인형, 곽종근은 물론 윤석열 당시 대통령과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이 참석했다. 당시 윤석열은 식사를 하던 도중 “특별한 방법이 아니고서는 해결할 방법이 없다”며 참석자들에게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이날 회동으로부터 약 1주일 뒤인 11월 17일 김용현은 ‘북한 오물풍선 원점 타격 계획’을 세웠고, 여인형은 그 다음날인 11월 18일 국방부, 합참, 작전사 소속 부대장을 선별해 비화폰 단체 대화방을 개설했다. 대화방에서 그는 “전방에서 오물풍선 부양 등 군사상황 발생시 실시간 상황을 공유하라”고 지시했다. 11월 18일은 북한이 32번째 오물풍선을 부양한 날이다.
최근 여인형은 자신의 군사 재판에서 북한 오물풍선 대응과 연결된 ‘국지전 시나리오’를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그는 지난달 13일 법원에 출석해 “그때 상황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리면, 12월 1~2일쯤 사령관되는 군인들이 가장 걱정한 건 북한 쓰레기 풍선이었다”며 “방첩사령관으로서 쓰레기 풍선에서 삐라 떨어지는데 그걸 수거해 분석하는 게 방첩사”라고 말했다. 또 “장군들은 북한 오물풍선 때문에 뭔일 터지는 거 아니냐 이런 걱정이 태반이었고, 걱정스러워서 (장군들과) 통화를 했다”고도 말했다.
합참의 비협조? 국지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내란 일당이 우려한 것처럼 북한과의 국지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당시 합참은 김용현이 내린 경고사격 지시에 소극적인 입장이었고, 오히려 다른 방식을 김용현에게 건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합참 내부의 이 같은 기류는 합참에 파견된 방첩사 박 모 대령을 통해 여인형에게 보고된 것으로 확인된다.
그럼에도 여인형은 북한 오물풍선 대응 지침을 전파하는 방식으로 방첩사 내부의 위기감을 고조시켰다. 12·3 비상계엄 당일에는 “적 오물풍선 도발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시기”라며 주요 간부들에게 준비태세 확립을 주문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직전까지 북한과의 교전 가능성은 열려 있던 셈이다.
지난 10일 이재명 대통령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내란 특별검사법을 재가했다. 수사 대상엔 내란과 군사 반란 행위 외에 외환 유치 행위가 추가됐다. 이달 내 출범할 내란 특검팀이 내란 일당의 오물풍선을 이용한 외환 유치 의혹을 수사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뉴스타파 강현석 khs@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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