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어려웠던 유년 시절 고무신 잘라서 대국”
文 “바둑 통해 인생 배웠고 정치도 유사해”
中 시진핑, 국빈 방문한 文에게 바둑세트 선물
日 나오토 전 총리, 한일 의원 바둑 교류전 추진2017년 11월 당시 바둑TV의 한 토크쇼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이재명(오른쪽) 당시 성남시장이 바둑과 관련된 자신의 에피소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바둑TV 유튜브 캡처
“바둑에서 정말 많이 배웁니다.”
유년 시절부터 접했던 바둑에 대한 그의 애정은 남달랐다. ‘인생의 축소판’으로 일컬어진 반상(盤上)에서 터득한 삶의 교훈이 그에겐 자양분처럼 여겨진 듯했다. 치열하게 점철된 반상 속 메커니즘은 정치권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단 판단으로 읽히면서다. 2017년 성남시장 재직 시절 바둑TV의 한 토크쇼 프로그램에 출연해 전했던 이재명 대통령의 반상 예찬론이 그랬다. 이 대통령은 당시 이 방송에서 “(바둑은) 승부와 전략 측면에서 정치와 많이 맞닿아 있다”며 “욕심을 부리면 반드시 응징을 당한다”고 단언했다. ‘무엇이든 지나칠 경우엔 모자람만 못하다’는 의미의 과유불급을 빗댄 설명으로, 바둑과 정치에선 모두 현재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순리란 얘기였다.
새 정부 출범과 더불어 이 대통령의 관심사에도 이목이 쏠리고 있다. 향후 5년 동안 책임질 그의 국정운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측되면서다.
지난 4일 더불어민주당에서 대선 후보로 나선 이 대통령과 관련된 세부 프로필 공개 내용에 따르면 우선순위로 지목된 그의 취미엔 ‘바둑’이 자리했다. 실제 이 대통령은 평소 바둑 ‘애기가’(愛棋家)로 자처할 만큼, 반상에 대한 관심이 상당했다. 7년 전, 그가 직접 출연했던 바둑TV 방송까지 재소환된 배경이다. 그는 이 프로그램에서 “시장 내 환경미화원으로 일하셨던 부친이 바둑을 즐기시면서 (저도) 자연스럽게 바둑을 접하게 됐다”며 “바둑을 두다 보면 검은 돌은 많은데, 흰돌이 자주 없어졌고 그때는 형편이 어려웠던 시절이어서 고무신을 잘라서 바둑을 두곤 했다”고 떠올렸다.
이 대통령은 또 “생각이 깊은 수가 있을 뿐이지, 바둑에서도 정치에서도 묘수는 없다”며 “과거엔 스트레스받을 때 정말 바둑을 많이 뒀는데 정신적으로 맑아지는 것 같았고 바둑 실력은 복기할 때가 빠르게 늘더라”라고 말했다. 본인의 기력에 대해 “인터넷 바둑 아마추어 5단 정도 되는 ‘바둑광’이다”라고 공공연히 밝혔던 이 대통령은 한때 “‘고수’의 꿈을 이루겠다”며 상당한 분량의 바둑 서적을 탐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문재인(오른쪽) 전 대통령이 2016년 7월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 한국기원에서 당시 국내 프로 바둑 랭킹 1위였던 박정환 9단과 대국을 벌이고 있다. 한국기원 제공
바둑에 대한 애착은 문재인 전 대통령도 각별했다. 중학교 때부터 바둑에 흥미를 보였던 문 전 대통령은 평소 여유 시간엔 한국 바둑의 전설인 조훈현(72) 9단이나 서봉수(72) 9단의 대국까지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마 4단 수준인 문 전 대통령은 2016년 3월, 인간계 대표였던 이세돌(42·은퇴) 9단과 구글 바둑 인공지능(AI)이 7일 동안 벌였던 반상 전쟁의 뒷얘기를 소개한 도서 <신의 한수 인간의 한수 78>(2016년 4월 출판)에 추천사도 남겼다. 문 전 대통령은 이 추천사에서 “저는 바둑을 통해 인생을 배웠고 정치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언제나 크게 보고, 멀리 내다보고, 전체를 봐야 한다”고 적었다. 이어 “바둑에서 국지전의 승부에 집착하지 말고, 늘 반면 전체를 보면서 대세를 살펴야 하는 것과 같다”며 “꼼수가 정수에 이길 수 없는 이치도 같다”고 덧붙였다.
문 전 대통령의 반상 애정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도 드러냈다. 문 전 대통령은 2023년 8월 23일 세계 랭킹 1위인 신진서(25) 9단의 ‘제9회 응씨배 세계프로바둑선수권대회’(우승상금 40만 달러, 약 5억5,000만 원) 최종 우승 소식을 접하고 당일 SNS에 “신 9단의 ‘응씨배’ 우승을 축하한다”며 “(4년마다 개최되면서) ‘바둑 올림픽’으로 불리는 세계 최고의 바둑대회에서 우승함으로써 세계 바둑 1인자임을 다시 한번 증명하고 한국 바둑의 위상을 드높인 쾌거였다”고 평가했다. 신 9단은 3번기(3판2선승제)로 열렸던 ‘제9회 응씨배’에서 중국의 초일류 기사인 셰커(28) 9단에게 2전2승으로 승리, 한국에 14년 만에 응씨배 타이틀을 선물했다.시진핑(앞줄 맨 왼쪽) 중국 국가주석이 2017년 12월 베이징 국빈만찬장에서 중국을 국빈 방문했던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옥으로 제작된 바둑판과 바둑알을 선물했다. 청와대 제공
한반도 주변 국가 수장들의 바둑 사랑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바둑에선 치국(治國·나라를 다스림)의 도리를 배울 수 있다’는 신념을 평소 주변에 설파해온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반상애(盤上愛) 역시 유명하다. 시 주석과 바둑의 인연은 1970년대 후반, 사회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맺어졌다. 중국 내 명문인 칭화대 공정화학과를 졸업(1979년)한 시 주석은 당시 중앙군사위원회 사무국장이었던 겅뱌오 비서로 일하면서 반상에 입문했다. 주변 직원들에게 “바둑이 전반적인 정세를 바라보는 능력을 키워준다”고 강조했던 겅뱌오 국장의 권유에 의해서다.
이후, 시 주석은 절친한 사이인 녜웨이핑(73) 9단에게 별도 과외까지 요청했을 정도로 반상에 몰입했다. 녜웨이핑 9단은 1985년 시작된 ‘중일 슈퍼대항전’ 1~3회 대회에서 중국팀 마지막 주자로 등판, 세계 바둑계의 주류였던 당대 일본 최고수들에게 무려 11연승을 수확하면서 ‘철의 수문장’이란 별명까지 가져간 중국 바둑계 거성이다.
시 주석과 얽힌 한중 반상 일화도 눈에 띈다. 시 주석이 2014년 7월, 방한 당시 가졌던 청와대 영빈관 만찬에서 “오늘 오신 손님들은 모두 잘 모르겠는데, 내가 아주 잘 아는 분이 딱 한 사람이 있다”며 행사장 내 자리한 K바둑계 간판스타인 이창호(50) 9단에게 시선을 돌렸다. 시 주석은 이어 “중국 내 유수의 기사들도 이 9단을 이겨본 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며 이 9단과 직접 힘있게 악수를 나눴던 에피소드는 아직도 바둑계 안팎에서 회자되고 있다. 그랬던 시 주석은 2017년 12월엔 방중한 문 전 대통령과 정상회담 직후, 옥으로 만든 바둑판과 바둑알을 선물로 전하면서 바둑 애호가임을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 ‘2010 중국 광저우 아시안게임(AG)’과 ‘2022 항저우 AG’에서 바둑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것도 시 주석의 영향력하에 이뤄졌다는 게 정설이다.간 나오토 전 일본 총리(오른쪽)가 지난 2015년 7월 서울 여의도 국회 사랑채에서 열렸던 ‘한중 수교 50주년 기념 의원 친선 바둑교류전’에서 당시 원유철 국회 기우회 회장과 대국 직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기원 제공
일본 정치계에선 간 나오토 전 총리(2010년 6월~11년 9월)가 바둑에 진심인 수장으로 지목된다. 바둑을 단순한 취미 수단으로 활용하기보단 자국 내에서는 물론 다른 나라와 정치적 교류의 주요한 소통의 매개체로 이용하면서다. 나오토 전 총리는 일본 바둑문화진흥의원연맹 대표로 활동하면서 한일 양국 의원들의 친선 교류전 추진에 적극적이었던 주인공으로도 알려져 있다. 한일 바둑 친선 교류전은 1999년 일본에서 처음으로 개최, 2004년까지 양국을 오가면서 열렸지만 양국의 정치적인 상황 등으로 한동안 중단됐다. 그랬던 한일 반상 외교는 2015년부터 양국 수교 50주년을 기념한다는 취지하에 재개됐다. 이 과정에선 나오토 전 총리는 직접 일본 대표로 출전, 한국 측 의원들과 대국을 펼치기도 했다. 양국 간 친선 바둑 교류전이 두 나라 정치 협력의 디딤돌로 자리 잡기를 기대하면서다. 나오토 전 총리는 ‘한일 수교 50주년 기념 양국 친선 바둑 교류전’에 참가해 “일본은 오랜 역사 속에서 한국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워왔고 또 여러 문제가 있었음에도 오늘날 함께 아시아의 선진국으로 발전했다”며 “바둑판에서의 저희의 싸움이 서로 죽이는 싸움이 아니라 서로 인정하는 대국적 결론에 도달하기를 기원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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