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도 부실채권 매입 가능
이재명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성남시장 시절 주도한 민간 채무탕감 기관 ‘주빌리은행’이 부활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새 정부 출범 후 금융당국이 시민단체 등 비영리법인도 부실채권을 매입할 수 있도록 자격 요건을 완화하고 나서면서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지난 5일 ‘개인금융 채권의 관리 및 개인금융 채무자의 보호에 관한 감독규정’ 변경을 예고했다. 개인금융 채권을 양수할 수 있는 자격을 비영리법인으로 확대하는 내용이다. 기존에는 은행이나 2금융, 등록 대부업체 등 금융회사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등 공공기관으로 자격을 제한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상환 능력이 없는 채무자의 재기 지원을 목적으로 설립된 비영리법인도 매입이 가능하게 해 장기 연체자를 비롯한 개인 채무자 보호를 강화하기 위한 취지”라고 설명했다.
2015년 8월 출범한 주빌리은행은 금융회사의 장기 연체 채권을 매입해 소각하는 방식으로 개인 채무 탕감에 나선 비영리법인이다.
원금 7%만 갚으면 채무 탕감…李 성남시장 시절 '배드뱅크'
허가 받은 비영리법인에만 자격…李 공약 위해 제도적 기반 마련
이재명 대통령이 성남시장(2014~2018년) 시절 공동은행장을 맡은 주빌리은행은 채무 탕감을 위해 금융회사의 장기 연체 채권을 원금의 3~5% 가격에 사들였다. 연체된 채무자가 원금의 7%를 갚으면 나머지를 전부 소각해 줬다. 당시 재원은 금융사에서 부실채권을 기부받거나 기업 후원금 등으로 충당했다. 이후 다른 지방자치단체와 업무협약을 맺으며 사업을 확대했다. 지금까지 약 5만1500명의 부실채권 8100여억원(원리금 기준)을 소각했다.
다만 지난해부터 개인채무자보호법 시행으로 개인금융채권을 인수하는 기관이 금융사와 공공기관 등으로 제한되면서 시민단체 등의 부실채권 매입이 막혔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불법사금융 업체 등이 개인금융채권을 매입해 불법 추심에 나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매입 자격을 제한해 왔다”며 “채무자 재기 지원을 목적으로 설립해 당국 허가를 받은 비영리법인에만 채권 매입 자격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금융당국이 규제를 완화한 것은 이 대통령 공약인 배드뱅크 설립에 필요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움직임이란 분석이 나온다. 배드뱅크는 소상공인 및 취약계층의 장기 소액연체 채권을 인수·소각하는 부실채권 전담 은행이다. 최근 배드뱅크 설립 검토에 들어간 금융위는 배드뱅크의 형태를 공공기관 혹은 주식회사, 대부업체, 비영리법인 등 다양한 선택지 중에서 고려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제도 개선으로 주빌리은행과 같은 민간단체도 배드뱅크 역할을 할 수 있게 됐다.
사진=주빌리은행 홍보하는 유튜브 채널
이 대통령은 2017년 주빌리은행을 홍보하는 유튜브 채널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는 이 영상에서 “금융기관은 돈을 빌려줄 때 일정 규모 채무자가 빚을 안 갚을 걸 예상해서 이미 손실로 계산해 놨다”며 “부실채권을 싼값에 사들인 채권자는 채무자로부터 사실상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구조”라고 주장했다.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 우려에 대해선 “장기 연체 채무자는 돈을 갚고 싶어도 못 갚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며 “회수할 길이 없는 ‘좀비 채권’을 해결하는 건 정부 복지 지출을 줄이고 시장 노동력을 확보하는 차원에서도 이득”이라고 강조했다.
과거 주빌리은행에 관여한 인사도 새 정부 들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주빌리은행을 기획하고 상임이사를 지낸 제윤경 전 국회의원은 금융감독원장 후보 중 한 명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 대통령과 공동은행장을 맡은 유종일 전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장도 대표적인 경제 책사로 꼽힌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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