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이코노북
서민 자산 증식, 부동산 투자 집중
증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하면
경제 양적·질적 선순환 구조 구축
상법 개정은 사법개혁의 일환
지배주주에게만 충성하는 경영진
공정거래·금융감독권 강화해 처벌
외국인 기대감에 증시 연일 상승
이재명 정부가 세 개의 화살을 준비하고 있다. 상법 개정과 공정위·금감원 개편이라는 화살이다. 화살 세 개가 표적에 명중하면, 우리 경제의 양적·질적 성장은 가능해질까. 증시 반응은 우호적이다. 이재명 대통령 당선 전 2600포인트대였던 코스피 지수는 외국인 자금이 돌아오면서 9일 2900포인트에 가까워졌다. 더스쿠프가 이재명 정부의 '세 개의 화살'을 자세히 알아봤다.
이재명 대통령이 9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2차 비상경제점검 태스크포스(TF)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지금까지 우리나라 서민은 막대한 가계대출을 동반하는 부동산 투자를 통해서만 자산을 증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 그렇게 됐을까. 증시가 자산 증식 수단으로 부적합했기 때문이다. 기업들의 수익은 꾸준히 증가했는데, 그 결과가 주가에 반영되지 못했다.
상법 개정이 늦어지면서 기업의 지배구조는 총수 일가에만 유리하게 돌아갔고, 이는 우리나라 증시의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작용했다. 지배주주들의 각종 불공정 행위 여파는 이미 막대한 수익을 낸 후에야 뒤늦게 법 개정을 통해서 규제됐다. 이번에는 다를 수 있을까.
■ 화살➊ 상법 개정=상법 개정은 엄밀히 따지자면 사법 개혁의 한 형태다. 우리나라 법률 체계상 '회사의 이사가 충실해야 하는 대상'은 경영진과 최대주주만이 아니라 일반 주주까지 포함된다.
헌법이 모든 국민의 재산권을 보장했고, 민법 등 다양한 법률이 주식을 가진 여러 주주의 재산권을 보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 법원은 줄곧 이사의 충실 대상을 오직 회사로만 좁혀서 적용했다. 법을 개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쉽게 말해서 상식적인 세계에서 모든 사람이 '1+1'이란 수식을 보고 즉시 그 답을 '2'라고 하는데도, 우리나라 판사들은 "1+1이 십진법상 2이긴 하지만 이진법상으로는 10이다"라고 줄기차게 판결했다.
대법원이 지난 2009년 "(주주에게 피해를 줬지만) 이는 기존 주주의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일 뿐이지, 회사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으로 볼 수는 없다"는 논리를 개발한 후 일반 주주에게 피해를 준 재벌 총수 등 수많은 지배주주가 면죄부를 얻었다. 이번 상법 개정안은 '1+1을 2진법이 아닌 10진법으로 풀어라'고 명시한 것에 불과하다.
[자료 | 한국거래소]
그런데도 경영계와 이익단체들은 상법 개정으로 경영진이 위축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실과 거리가 먼 주장이다. 개정된 상법에서도 경영진은 지배주주의 사익 추구를 위법적으로 돕거나, 일반 주주에게 불리한 불법적 판단을 고의로 내리지 않는 한 충분히 경영 판단을 존중받는다.
■ 화살➋ 공정위 강화=상법 개정안이 무사히 통과돼 이사의 충실의무가 주주로까지 확대되고 감사 선임시 지배주주 의결권이 3%로 제한되면 무슨 일이 생길까. 법원은 더 이상 자신들 입맛대로 특정 지배주주에게 유리한 해석을 내놓지 못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오로지 총수에게만 충성하는 경영진의 시대를 끝낼 수 없다. 여전히 우리나라의 시장지배력과 경제지배력은 소수 기업집단, 정확히 말하면 특정 개인과 그 가족에게 집중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공정거래 관련법 개정의 역사는 승계를 앞둔 총수를 위해서 재벌 경영진이 새롭게 고안한 불법적 수단과의 싸움을 기록한 것과 마찬가지다.
국회는 1996년 공정거래법 제23조 1항을 신설해 '계열사를 통한 불공정 행위'를 막았다. 1998년에는 상법 401조의 2를 신설해 회사 사장에게 업무를 지시하는 자, 즉 재벌 총수를 '업무집행지시자'로 규정했다. 회사가 총수 일가 개인회사의 세금을 줄여주는 행위를 금지하고(법인세법 52조), 일감 몰아주기와 총수 개인회사 이익을 부풀리는 행위 등도 마찬가지로 법 개정을 통해서 이뤄졌다. 모두 기업 경영진이 총수를 위해서 개발한 편법이다.
그런데 이런 불공정 행위를 법으로 규제하면 늦어도 너무 늦다. 새로운 방식의 불공정 행위는 이미 막대한 부당 이익을 내고, 총수 일가는 이를 통해 승계에 성공한 뒤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6월 5일 첫 국무회의에서 지시한 인력 확충 등 공정거래위원회 기능 강화는 상법 개정의 선순환 구조 형성이라는 맥락에서 위법행위를 예방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 화살➌ 금융위 개편=상법 개정으로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고, 공정위 기능을 강화해 자원배분이 대기업집단에 쏠린 현상을 바로잡으면, 증시에서 국민 자산을 지켜주는 일이 기다리고 있다.
차규근(조국혁신당) 의원이 대표로 발의한 정부조직법 일부개정법률안, 금융위원회의 설치 등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법률안은 현재 금융위원회 조직을 금융정책과 금융감독으로 분리하고, 금융감독원의 감독집행 기능에 합쳐서 금융감독위원회라는 조직을 신설하는 내용이다. 금감원에 속해있는 금융소비자보호처를 금융소비자보호원으로 격상해 검사 권한을 부여하는 방안도 논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4월 29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상법 개정 논의 촉구 기자회견에서 강훈식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현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주민 의원, 강훈식 비서실장,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연합회 대표. [사진 | 뉴시스]
앞서 언급한 시장의 불공정 행위들 상당수는 금융 편법을 통해서 이뤄진다. 여러 차례 문제가 되면서 개인투자자들의 공분을 샀던 그룹 상장 계열사간 합병 가격 책정도 증권거래법,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등에서 규정하고 있다. 금융감독권을 제대로 강화하면, 증시에서 개인투자자들의 자산 증식을 방해하는 행위들을 제때 적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4월 대선 경선 과정에서 "주가지수 5000 시대"를 공약했다. 실제로 금융감독 기능을 강화해 "일반주주의 이익을 갉아먹는 일부 기업, 시세조정 세력에 엄정하게 대처해 시장 질서를 회복"한다면, 증시의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더욱 가까워질 수 있다. 현재 주가 상승은 이런 기대감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eongyeon.han@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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