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비, 정권 바뀔 때마다 민생대책 '단골 메뉴'
실용 표방 李 정부는 강제인하 '팔꺾기' 안할테지만
저가 요금제 중심으로 시장 재편할 가능성에 '촉각'
할인 광고가 붙은 서울 시내 한 휴대폰 판매점.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9일 라면값을 언급하며 생활물가 대책 수립을 참모들에게 지시하자 통신업계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 통신비야말로 서민 가계 지출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항목이니만큼 새 정부의 물가잡기 대상으로 언제든 떠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통신비 인하 정책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단골 메뉴로 등장했다. 다만 이번 정부는 '실용적 시장주의 정부'를 표방하는 만큼 인위적인 요금 규제보다는 실용적 절감 대책이 나올 것으로 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9일 통신 업계에 따르면 새 정부 통신 관련 정책 방향은 직접적인 통신비 인하보다는 자율적 절감을 유도하는 방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구체적으로 △통신비 세액 공제 신설 △단통법 폐지에 따른 알뜰폰·자급제폰 활성화 추진 △ 전 국민 데이터 안심요금제(QoS) 도입 △ 잔여 데이터 선물하기 또는 이월 선택 △ TV 유휴대역을 활용한 '슈퍼 와이파이'로 농산어촌 이용자 데이터 경감 △우체국 활용으로 사각지대 없는 공공서비스 전달체계 구축 등이 대표적이다.
업계는 강제적인 요금 인하 공약이 없어 안심하면서도 데이터 안심요금제 도입, 통신비 세액 공제 등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 중 새 정부에서 통신 정책 공약으로 내세운 데이터 안심요금제 도입은 기본 제공되는 데이터를 모두 소진해도 추가 요금 부담없이 특정속도(QoS)로 데이터를 계속 이용할 수 있는 요금제다. 휴대전화 인터넷 이용을 '국민생활의 필수 요소'로 보고 기본 데이터를 다 써도 공공서비스 접속 등을 보장하겠다는 취지다. 알뜰폰에서는 QoS를 지원하지 않거나 속도 제한이 400kbps 수준으로 낮아 데이터를 소진시 동영상 시청은 물론 기본적인 웹 서핑도 어려웠다. 1만원대 20GB 알뜰폰 요금제 또한 QoS가 지원되지 않아 선택을 망설이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통신 업계에서는 QoS 의무제공으로 알뜰폰 저가 요금제도 기본 제공 속도가 1Mbps 이상으로 오르면 기존의 요금제 차등 전략인 '업셀링(상위 요금제 유도)' 모델이 흔들릴 수 있어 긴장하고 있다. 저가 요금제에 수요가 몰리면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나 프리미엄 요금제에 의존하던 가입자당평균수익(ARPU)이 하락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통신 업계 한 관계자는 "데이터 안심요금제 도입시 소비자가 굳이 5만~7만 원대 요금제를 선택할 유인이 사라질 수 있다"며 "최저가 요금제 중심의 시장 재편이 현실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통신비 세액공제가 현실화하면 소비자 체감 혜택이 커질 전망이다. 연간 통신비 지출의 일정 비율을 세금에서 공제받게 되면 요금을 직접 낮추지 않으면서도 실질적인 가계 부담 완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세액공제는 근로자 본인과 자녀, 65세 이상 노부모가 지출한 통신비가 포함된다. 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관련법 개정안은 이동통신 요금 지출 금액의 6%에 해당하는 금액을 종합소득산출 세액에서 공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업계에서는 통신비 세액공제 취지를 긍정적으로 평하면서도 이동통신뿐 아니라 통계 분류상 '정보통신비'로 들어가는 단말기 할부금이나 초고속인터넷, 유료방송,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 전반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통신사 입장에서도 요금 인하 없이 소비자 혜택을 늘릴 수 있고 이용자 해지를 방어하는 '록인 효과'도 기대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세액공제는 통신사 입장에서 직접 수익은 없지만 결합 상품에 더 많이 가입하면 부가서비스 확대나 가입자 유지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간 국내 통신 정책이 가계통신비 인하에만 집중한 만큼 인공지능(AI) 시대에 새 성장 모멘텀을 확보할 수 있는 통신 산업 투자 유인 등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나인기자 silkni@dt.co.kr
Copyright © 디지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매주 일요일 밤 0시에 랭킹을 초기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