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웹툰 종주국 '20년'] ① 웹툰작가 1세대, 조석 '마음의 소리' 작가 인터뷰
[편집자주] 한국의 원조 콘텐츠 '웹툰' 산업이 올해 20주년을 맞았다. 웹툰은 웹+카툰을 더한말로 해외에선 웹코믹스라 불린다. 웹툰의 인기는 드라마, 게임, 영화 등 다양한 K콘텐츠의 핵심 IP로 떠올랐다. 한류 바탕이 된 웹툰 생태계를 돌아본다.
조석 작가 인터뷰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예전엔 웹툰 그려서 돈 벌 생각을 못했어요. 유명해지면 바이럴 광고를 하든지 책 내서 돈 벌어야겠다고 생각했죠. 고료 대신 5만원짜리 문화상품권 비슷한 쿠폰을 받은 적도 있어요. 이제는 웹툰만 그려서 먹고 살수 있다는게 대단한 것 같아요."
지난 26일 한국 1세대 웹툰 작가인 조석 '마음의 소리' 작가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2006년 9월 '마음의 소리' 연재를 네이버에서 시작한 후 벌써 19년째 네이버웹툰과 동고동락하는 사이다. 웹툰이 한국 고유의 디지털 만화를 일컫는 용어가 된지 20년, 그는 초기 '웹툰'이라는 단어조차 낯설던 시절부터 웹툰 산업에 몸 담았다.
네이버 블로그를 통해 연재하던 만화가 입소문을 탄 것이 계기가 돼 정식 웹툰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웹툰 1세대, 웹툰 대중화를 이끈 주역으로 네이버웹툰을 그가 키웠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마음의 소리'에서 언급한 단어가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고, '차도남' 등의 유행어가 탄생할 정도의 파급력을 지녔다. 최장수, 최고 인기 만화 타이틀을 동시에 보유했다.
현재 국내 웹툰 시장은 연매출 2조원 규모의 어엿한 산업으로 성장했다. 플랫폼에만 웹툰을 연재해도 평균 연봉 6000만원을 넘게 받는 시대다. 그러나 초창기엔 작가 월급 20만원 수준에, 때론 현금 대신 대용품을 받을 정도로 열악했다. 그가 맡았던 네이버 화요 웹툰은 작가가 2명이었는데, 다른 사람이 연재 도중 잠적해 한달 간 혼자 연재하기도 했다. 이제는 요일별 각기 다른 100여명의 작가가 웹툰을 연재한다.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힘들었지만 '판을 키운다'는 사명감과 즐거움으로 버텼던 시절이라고 그는 회상했다. 조 작가는 "초반에 작가들끼리 의기투합해서 여행가고 여행 웹툰을 그리기도 했다"면서 "고료가 따로 나오지 않았지만, 반응이 좋아 그것만으로 신이 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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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작가, 부와 명예를 얻는 선망의 직업…중국에서 영화화돼 수천억원대 매출 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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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 작가 인터뷰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네이버웹툰이 웹툰을 한국식 디지털 만화를 일컫는 용어로 공식화하며 시장을 공격적으로 확장한 지 20년, 웹툰은 K콘텐츠의 핵심 축이 됐다. 흥행한 웹툰은 드라마, 게임, 영화로 변신해 전 세계를 누빈다. 웹툰 작가는 부와 명예를 얻는 선망의 직업이 됐다.
"20년 전만해도 웹툰은 만화학과에 그림 제일 못그리는 애들이 했고 잘 하는 애들은 게임회사 일러스트레이터로 갔거든요. 요새는 제일 잘하는 친구들이 웹툰 작가가 되고 싶어해요. 그때 인기를 실감해요."
조석 작가 역시 그의 웹툰 '문유'가 중국에서 영화화돼 수천억원대 매출을 올리는 경험을 했다. 대표작 '마음의 소리'도 만화책과 애니메이션으로 형태를 바꿔가며 새 생명을 얻는다. "웹툰이 명예와 수익을 가져다주는 시대가 됐어요. 이제는 만화 자체로 가치가 생기고, 웹툰만 잘 그려도 충분히 먹고 살죠."
다작을 했지만 초기작인 '마음의 소리'는 지금도 그의 곁을 지킨다. 2020년 시즌1 마무리 후 3년을 쉬었다. 그리고 시즌2를 시작한지 다시 2년이 흘렀다. 십수년을 연재하다보니 창작의 고통은 필연적이다.
"50화 넘어서면서부터 헛구역질까지 할 정도로 괴로웠고 (시즌1 마무리할 때) '평생 개그만화는 안 그리겠다'고 다짐할 정도였어요. 그런데 막상 쉬어보니 복을 걷어 찼구나 싶더라고요." 한결같은 독자들에게도 감사함을 전했다. "마음의 소리는 '조석 뭐하고 사나' 싶어서 정으로 봐주는 독자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빼어나진 않아도 오래 연재하고 싶어요."
의외로 '마음의 소리'는 최애 작품이 아니다. 조 작가는 "'마음의 소리'는 제 잘난 부분만 모은, 행운과도 같은 존재에요. 힘들 때 '도와줘!' 요청하기도 하고, 때론 다른 만화가 잘 안되면 얘가 옆에서 비웃는 느낌도 들어요."라고 말했다. 오히려 흥행하지 못한 웹툰에 더 마음이 쓰인다고. "예전에 모 선배가 꿈에서 실패한 만화 캐릭터들을 만나 일일이 사과했다고 하던데 이해가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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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 웹툰 작가 대체 우려 보단 웹툰 퀄리티 향상에 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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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 작가 인터뷰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화제를 바꿔 챗GPT 이야길 꺼냈다. AI(인공지능)가 웹툰 작가를 대체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그는 '기우'라면서 "흐름이라면 받아들여야 한다"고 의외의 답변을 내놨다. "웹툰도 '종이 아니면 만화가 망한다'는 식의 거센 저항을 겪으며 받아들여지기까지 20년이 걸렸어요. AI가 오타 수정, 이야기 개선 등 웹툰 퀄리티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작권 문제 같은 것이 생길 수 있지만, 아예 사용을 금지하기보단 웹툰산업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끌고 가면 돼요. 파도가 오는데 몸으로 막을 순 없죠."
웹툰 플랫폼이 네이버·카카오로 고착화되면서 장르가 획일화했다는 지적에 대해선 "맞기도 틀리기도 하다"고 답했다. "'마음의 소리'가 '일상툰', '개그툰' 장르를 개척했다고 생각하시는데 흥행 정도의 차이일 뿐 그때 유행이었다"며 "시대에 따라 인기 장르가 달라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웹툰 작가 데뷔를 희망하는 후배들에겐 "겁내지 말고, 흔들리지 마라"는 묵직한 조언을 남겼다. 물론 올해 웹툰 작가 19년째인 그도 여전히 댓글 수나 내용에 일희일비한다. "내 만화가 중국에서 영화화될 때보다 독자 반응에 더 두근거려요 . 그런데 독자들은 그냥 하는 말일 수 있거든요. 남들 말에 휘둘리거나 겁먹는 순간 내 가능성, 특별한 면들이 하나씩 없어질 수 있어요."
무엇보다 웹툰 산업 발전을 위한 시각 개선을 당부했다. "한국 만화는 돌이켜보면 항상 힘들었어요. 게임이랑 만화는 무슨 일만 있으면 문제아 취급을 당합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한국 만화를 보게 한다는 건 엄청난 일이거든요. 한 걸음씩 가도록 응원해주는 게 중요합니다."
김소연 기자 nicks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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