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4일, 대한민국 21대 대통령이 확정되었다. 대한민국 역사상 다시는 발생되지 않기를희망했던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이라는 암울한 시간을 또 다시 거치며 국민들은 찬반양론으로 나뉘었다.
투표장을 찾은 국민들이 새 대통령에게 바라는 마음은 한결같았을 것이다. 이에 응답하듯 21대 정부는 그 명칭을 ‘국민주권정부’로 고려하고 있다. 국민이 주인인 나라. 국민이 공감하고, 국민이 지지한 정책을 통해 국민의 삶의 질이 향상되는 나라. 그것이 국민주권정부일 것이다. 이 목표를 실현하는데 핵심 수단 중 하나는 국민의 삶에 필요한 연구분야를 우선적으로 지원하는 과학기술정책일 것이다.
2023년 9월 정부는 차년도 국가 R&D예산이 전년보다 5조원이상 삭감될 예정이라고 발표하였다. 그 해 6월 28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2023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국가 R&D예산 전면 재검토를 지시한 후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를 거쳐 의결된 것이다. 연구계의 카르텔을 없애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정부의 예측과 전혀 달랐다. 연구현장에서 일반 연구자들이 겪는 고통은 상상 이상이었다. 성실하게 협업하는 연구자들이 카르텔로 매도되었다. 그 뿐인가. 하루 아침에 삭감된 연구비로 인해 재료비와 학생 인건비를 충당할 수 없었던 일부 교수들은 수 년간 안정적으로 이어오던 연구를 중단하는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패션에 유행이 있듯 연구에도 유행이 있다. 2001년 정부는 나노강국을 꿈꾸며 제 1기 나노기술종합발전계획을 발표, ‘나노’는 모든 연구과제의 핵심 키워드로 자리잡았다. 2024년 9월, 윤석열 전 대통령은 국가인공지능위원회를 출범시키고, AI 3대강국으로의 도약을 위한 총력전을 선포했다.
이재명 대통령 또한 대선 기간부터 대통령실 직속 AI정책수석을 신설하고 국가 AI위원회를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벌써부터 연구현장에서는 AI를 활용하지 않는 기초연구분야는 정부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워진 것 아니냐는 우려가 크다.
전 세계가 AI열풍이니 OECD가입국으로서 국제 기류에 합류하는 것은 당연하다. 보건 의료, 환경, 산업을 포함한 전 분야에서 AI의 활용 가능성이 크다는 것 또한 진실이며,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학습능력을 소유할 수 있는 존재가 AI이기에 논리적으로도 합당하다.
AI강국이 되기 위해 간과하면 안되는 것들이 있다. AI학습에 필요한 자료가 그 하나다. 바른 교육을 받은 어린이가 합리적인 가치관을 지닌 어른으로 성장하듯 양질의 데이터로 학습된 AI만이 신뢰할 수 있는 결과물을 생산할 수 있다.
그러나 AI에게 학습할 수 있는 양질의 데이터가 확보된 연구분야는 극히 드물다. 다양한 분야에서 양질의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 과학기술, 특히 기초과학 분야에 대한 꾸준하고 폭넓은 지원이 필수적인 것이다.
둘째는, AI는 인간의 힘으로 해결하지 못한 과학 난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인간이 개발한 기술적 도구 중 하나에 불과하기에, 다양한 한계로 인해 활용도가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또 다른 기술이 확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책은 실패할 수 있다. 그러나 실패한 이유에 대한 냉철한 해석과 반성을 통해 수립되지 않은 정책은 또 다시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급변하는 세계 정세 속에서 출범한 새 정부가 AI 3대 강국이라는 원대한 도전에 나서려면, 황폐화된 연구 환경을 개선하고 국민에게 다가갈 수 있는 과학기술정책을 수립하고, 실천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박은정 경희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매주 일요일 밤 0시에 랭킹을 초기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