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진 창업자, 실리콘밸리서 밝혀
“네이버 창업 후 25년 동안 매년 망할 것 같았다. 모바일·블록체인 등 새로운 것이 나올 때마다 네이버는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네이버는 언제나 골리앗을 잡는 다윗이었다. 이런 싸움에 익숙하다.”
지난 5일 미국 캘리포니아 팰로앨토 포시즌스호텔. 네이버의 신규 투자 법인 ‘네이버 벤처스’의 출범을 맞아 실리콘밸리를 찾은 이해진 창업자 겸 이사회 의장은 미국·중국의 첨단 인공지능(AI)에 맞서는 네이버를 ‘다윗’에 비유하며 자신감을 보였다. 이 의장은 특파원단과 만나 “한국의 AI 기술력은 미국·중국에 비해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며 “하지만 특화 AI로 맞서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오픈AI·구글처럼 전 영역을 아우르는 거대 AI 모델로 싸워 이기는 것은 힘들지만, 네이버가 잘하는 전자상거래·콘텐츠 중심의 ‘특화 AI’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의장이 해외에서 미디어와 만난 것은 2016년 라인 상장 후 9년 만이다. 그는 지난 3월 7년 만에 이사회 의장에 복귀하며 경영 일선으로 돌아왔다. 이 의장은 “네이버는 아주 초기부터 그래픽 처리 장치(GPU)에 대규모로 투자했고, 대규모 언어 모델(LLM)이나 클라우드 등 기본적인 기술을 착실하게 준비해왔다”며 “지금은 (골리앗을 이길) 돌멩이 하나를 잘 잡으려는 단계이며, 곧 새로운 파트너십과 전략들이 발표될 것”이라고 했다.
그래픽=김현국
◇승부처는 결국 ‘데이터’
이 의장은 이날 200여 명의 실리콘밸리 현지 투자자·창업가 앞에서 “한국의 좋은 점은 구글 외에 다양한 검색 결과를 비교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네이버가 구글에 대항해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한국 이용자 생성 콘텐츠(UGC) 덕분”이라고 했다. 특화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소버린(주권) AI를 구축하겠다는 경영 구상을 밝힌 것이다. 그는 “앞으로 AI는 지역별·주제별로 세분화되어 발전하게 될 것이고, 이는 결국 데이터 싸움”이라며 “이 같은 ‘특성화’ 단계에선 세계에서 가장 신기술에 빠르게 반응하는 한국 이용자들의 적응력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 의장은 미국 중고 거래 장터 포시마크, 스페인 개인 거래 플랫폼 왈라팝, 캐나다 웹소설 플랫폼 왓패드에 대한 네이버의 투자도 이 같은 ‘특화 AI’를 위한 기초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네이버가 난데없이 중고 시장에 투자했다고 생각하는 시각도 있지만, 상거래 데이터를 얻기 위함이었다”며 “왓패드에도 양질의 데이터가 쌓이고 있다”고 했다. 이 의장은 “계속해서 데이터의 힘을 믿고 승부를 볼 것”이라며 “AI는 네이버 혼자만 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만큼, 또 한번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AI에 투자하며 데이터를 확보할 것”이라고 했다.
네이버는 이달 미국에서 첫 해외 투자 법인인 네이버 벤처스의 설립 절차를 마무리하고, 샌프란시스코에 본사가 있는 한인 AI 스타트업 ‘트웰브랩스’에 투자한다.
◇네이버 AI 전략은 ‘사업’ 중심
미국 빅테크에 비해 기술력과 자본력이 밀리는 네이버는 사업 중심 AI 전략으로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네이버는 광고, 쇼핑, 콘텐츠 등 기존 서비스에 AI 기술을 적용하는 ‘온(On) 서비스 AI’를 올해 경영 전략으로 내세웠고, 관련 서비스를 잇달아 선보였다. 대표 서비스는 올해 3월 출시한 신규 AI 쇼핑 앱 ‘네이버플러스 스토어’다. 이 의장은 “(범용 AI가 아닌) 상거래나 의료 같은 특정한 분야에서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서비스를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네이버의 AI 경쟁력에 대해 “네이버는 아주 초기부터 그래픽 처리 장치(GPU)에 대규모 투자했고, 대규모 언어 모델(LLM)이나 클라우드 등 기본적인 기술을 착실하게 준비해왔다”며 “지금은 (골리앗을 이길) 돌멩이 하나를 잘 잡으려는 단계이며, 곧 새로운 파트너십과 전략들이 발표될 것”이라고 했다.
자체 개발 AI 모델을 해외에 수출하는 사업에도 집중하고 있다. 네이버는 작년 9월부터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와 손잡고 아랍어 기반 AI 모델을 개발 중이고, 지난달에는 태국 기업과 태국어 기반 AI 모델 및 관련 관광 서비스를 공동 개발하는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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