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진 의장, 네트워킹 행사서 AI 전략 밝혀
"美·中 빅테크 맞서 데이터 기반 특화 AI로 차별화"
네이버, '네이버 벤처스' 설립 예정
"저희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계속해 왔고, 그 싸움에 익숙합니다. 결국은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려면 빨리 포커스를 해야 하고, 돌멩이 하나를 잘 던져야 합니다."
네이버 창업자인 이해진 의장이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은 네이버의 포부를 밝혔다. 기초 AI 모델 영역에서 이미 '골리앗'이 돼 버린 미국과 중국의 AI를 단기간 내 이기기는 어렵더라도, 커머스나 쇼핑처럼 특화 AI에서는 네이버가 충분히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취지다.
네트워킹 행사에서 발표하고 있다. 네이버 제공
이 의장은 지난 5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 포시즌 호텔에서 진행된 네트워킹 행사에서 "지금은 돌멩이를 잡는 과정이고 돌멩이를 잡기 전에 LLM(거대언어모델)이나 클라우드 등 기본적인 기술을 준비해야 한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이 의장은 네이버의 AI 기술이 미국이나 중국에 비해 뒤처져 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투자 규모나 인력 등에서 부족할 수밖에 없지만, 우리는 지금까지도 모든 것이 부족한 상태에서 싸워왔고 그 싸움에 익숙하다"고 했다. 현재 글로벌 시장에서 널리 쓰이는 범용 AI는 대부분 미국에서 개발됐고, 중국산 AI 역시 이와 대등한 성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다.
아울러 특정 분야에 집중된 AI 경쟁에서는 네이버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이 의장은 자신했다. 챗GPT나 딥시크와 같은 범용 AI에서는 미국과 중국의 양강 체제가 굳어져 있지만, 특정 분야에 특화된 AI 경쟁에서는 대등한 경쟁을 펼칠 수 있다는 취지다. 특화 AI에는 이미 확보된 데이터가 중요하게 작용한다.
이 의장은 "검색도 처음에 알고리즘 싸움이었지만 결국 다 비슷해지고 데이터를 갖고 차별화하는 것이 중요해졌다"며 "AI도 비슷한 일이 생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AI도 지금은 LLM 모델이나 알고리즘을 누가 더 잘 만드느냐에 경쟁이 벌어지겠지만, 결국 이 수준은 비슷해지고 데이터에서 차별화가 중요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2023년 미국의 중고거래 플랫폼 '포쉬마크'를 인수한 결정 역시 데이터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이 의장은 "네이버가 제일 첫 번째로 하고 싶은 (분야가) 상거래 쪽"이라며 "외부에서는 포쉬마크 투자를 두고 '왜 네이버가 중고 시장에 난데없이 투자했을까'라고 생각하겠지만, 우리는 상거래 데이터를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내에서는 스마트스토어(온라인 쇼핑몰 개설 지원 플랫폼), 일본에서는 라인과 야후, 스페인에는 왈라팝이라는 중고 거래사이트를 통해 많은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다"면서 "우리는 그쪽(상거래)이 우리의 중요한 사업 방향일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 의장은 IT 기술이 발달한 동시에 스마트 기기 등의 보급률이 높은 국내 시장의 특성을 네이버의 성공 배경으로 짚었다. 그는 "네이버 성공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한국 사용자"라며 "서비스를 만들면 써본 뒤 반응이 굉장히 빠르다. 한국 사용자들은 전 세계에서 제일 좋은 테스트베드"라고 치켜세웠다.
이 의장은 2017년 3월 네이버 이사회 의장 자리에서 물러나 글로벌투자책임자(GIO)로만 활동하다가 7년 만인 지난 3월 의장 자리에 복귀했다. 이 의장이 복귀를 결정한 배경 역시 AI 시대를 맞아 네이버의 경쟁력이 글로벌 빅테크 대비 뒤처진다는 판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의장은 다만 "내가 직접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경영진이 더 잘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네트워킹 행사에서 발표하고 있다. 네이버 제공
네이버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발굴·투자 등을 위한 투자 법인 '네이버 벤처스'를 설립할 예정이다. 네이버는 네이버 벤처스를 통해 새로운 기술, 인재, 파트너와의 시너지로 성장 모멘텀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네이버 벤처스는 김남선 네이버 전략투자부문 대표가 이끌 예정으로, 이달 중 설립 절차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한편, 이날 행사에는 이 의장 이외에도 최수연 대표와 김남선 전략투자부문 대표 등 네이버의 주요 임원들이 참석했다. 이들은 스타트업 생태계 구성원들과 네트워킹 행사를 열고 네이버 벤처스 설립과 관련해 다양한 논의를 나눴다.
최 대표는 "실리콘밸리는 기술과 혁신의 산실로 역량 있는 인재와 신기술이 모여드는 곳"이라며 "국제 정세의 불확실성 속에서도 이들이 안정적으로 투자를 받고, 기술 개발 및 사업을 운영해 나갈 수 있도록 역할을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명환 기자 lifehw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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