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실리콘밸리에 ‘네이버 벤처스’ 설립
‘은둔의 경영자’ 이 의장, 9년 만에 공식 석상
지난 5일 미국 실리콘밸리 팔로알토에서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가 네이버 벤처스 네트워킹 행사 '넥스트 챕터'에 참석해 기조 연설을 하고 있다./네이버
“스타벅스는 세계 곳곳에서 똑 같은 품질의 음료를 제공하는 좋은 기업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세계에 커피 파는 곳이 스타벅스만 있다고 생각하면 좀 슬프지요.”
지난 5일 미국 캘리포니아 팔로알토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네이버의 투자 행사 ‘넥스트 챕터’에 나선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은 “각 나라에는 그 나라에 맞는 찻집들이 있어야하는 것 처럼, 네이버는 검색에 이어 인공지능(AI) 분야에서도 다양성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글로벌 AI패권이 미국 실리콘밸리 빅테크 기업들에 쏠리는 가운데, 한국만의 특성을 갖춘 AI로 승부를 보겠다는 것이다.
네이버는 실리콘밸리에 신설 투자법인 ‘네이버 벤처스’를 설립하기 앞서 이날 네트워킹 행사를 열고 현지 200여명의 투자자·스타트업 관계자와 만남을 가졌다. 이 의장이 공개 석상에 모습을 나타낸 것은 지난 2016년 라인 상장 이후 9년만이다. 지난 3월 이사회 의장 복귀 후 약 3개월 만에 해외 일정에 나선 것에 대해, 이날 행사 참가자들 사이에선 “급변하는 AI시대의 위협들을 정면으로 뚫고 나가겠다는 의지가 보인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날 무대에 오른 이 의장은 25년 전 한국의 검색 엔진을 만들기 시작한 당시를 회상하며 “당시 한글로 된 정보는 언어적 문제로 (미국 검색 엔진에)잘 검색이 되지 않았다. 좋은 정보를 빨리 찾지 못하면 기본적인 국가 경쟁력이 떨어지게 되고, 이런 문제를 좀 해결해보자는 마음에서 검색 엔진을 만들었다”며 “하나의 검색 엔진이 제시하는 검색 결과를 세계 사람들이 모두 수용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한국이 다른 나라와 다른 점은 검색에 있어 구글·네이버 등을 검색하보고 결과를 비교해볼 수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외국산 첨단 기술에 일방적으로 의존하지 않는 것은 국가의 경쟁력과 정체성에 직결된 문제라는 것이다.
이 의장은 AI시대에 있어서도 이 같은 ‘다양성’이 보존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큰 회사가 만든 AI와 각 세부 분야에서 나오는 AI가 함께 존재해야 세상이 좀 더 좋아지지 않을까라고 항상 생각한다”며 “지금까진 AI모델을 누가 잘 만드느냐를 갖고 싸웠지만, 앞으로 갈수록 지역별·주제별로 AI가 발전해가며 결국은 데이터 싸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과거 네이버가 국내 이용자들이 만들어내는 사용자 생성 콘텐츠(UGC)를 기반으로 구글과 검색 결과에서 차별화를 했던 것이 생존의 이유였다”며 “AI시대(의 성공 방식)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네이버는 미국에 의존하지 않고, 국가별로 독자적으로 운영하는 이른바 ‘소버린 AI’를 강조해왔다. 이 의장은 “앞으로 국가, 회사, 기관들은 어느 하나의 회사나 클라우드에 데이터를 맡기는 것이 아닌, 자기가 직접 통제할 수 있는 데이터를 구축하는 쪽에 투자하게 될 것”이라며 “그런 방향으로 네이버가 좋은파트너 역할을 할 수 있길 바라고 있다”고 했다.
이 의장은 “네이버를 설립한 후 지난 25년간 매년 새로운 위기를 겪었고, 이겨내왔다”며 “앞으로 네이버는 또 있는 힘을 다해 살아남기 위해 (AI관련)투자를 할 것”이라고 했다. 그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있고 승부하고 싶은 부분은 결국 데이터 싸움”이라고 했다. 특히 투자를 통해 해외 상거래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 사업 방향이라고 언급했다. 네이버는 일본에서 라인과 야후를 통해 상거래 데이터를 쌓고 있고, 미국에서는 중고 거래 사이트 포시마크를 인수했으며, 스페인에서는 개인간 거래 사이트인 왈라팝에 투자했다. 그러면서 “AI는 네이버 혼자만 잘 해서 해낼수 있는 일이 아닌 만큼, 해외 인재들에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투자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네이버는 이달 중으로 네이버 벤처스의 설립 절차를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네이버는 이날 김남선 네이버 전략투자부문 대표가 네이버 벤처스를 이끌게 될 계획이며, 2021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설립된 영상 AI 스타트업 ‘트웰브랩스’를 첫 투자처로 확정했다고 밝혔다. 트웰브랩스는 복잡한 자연어로 검색을 하면 영상에서 이용자가 묘사한 장면을 정확하게 찾아내는 기술을 보유한 기업으로. 엔비디아·인텔·삼성스트 등으로부터 투자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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