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관세 이후 국채·달러·주식 동반 약세
OECD, 관세가 경기 둔화 촉발 경고
외국계 연기금·자산운용사 "미국 집중 피한다"
[워싱턴=AP/뉴시스] 8일(현지 시간) 월스트리트저널과 파이낸셜타임스 등 외신에 따르면,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DXY)는 올해 들어 8.8% 하락해 99 아래로 떨어졌다. 이는 1980년대 중반 이후 최악의 낙폭이다. 사진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 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연설하며 손짓하고 있다. 2025.06.08.
[서울=뉴시스]박미선 기자 = 경제 위기 때마다 '피난처' 역할을 해온 미국이 최근 세계 금융시장에서 불안정의 진원지로 지목되고 있다.
지난 4월 5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전면적 관세 부과 조치 이후, 미국의 채권·주식·달러 가치가 동시에 하락하며 미국 자산의 '안전자산'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 관세로 인한 금융시장 충격을 달러가 상쇄하지 못하면서, 미국 자산이 리스크 회피 수단으로서의 신뢰를 잃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90일 간 상호관세 부과를 유예하고, 이 기간 90개국과의 무역협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관세 발표 후 약 두 달이 지난 지금도 미국을 '안전지대'로 보는 시선은 약해지고 있다. 오히려 글로벌 투자자들 사이에선 미국이 새로운 불안의 발원지라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8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과 파이낸셜타임스 등 외신에 따르면,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DXY)는 1월 초 109까지 올랐다가 이달 5일 기준 98.8까지 떨어져 올해 들어 9% 넘게 하락했다. 이는 1980년대 중반 이후 최악의 낙폭이다.
달러뿐 아니라 국채 시장도 약세다. 4월부터 미국 국채에 대한 매도세가 거세지면서 인플레이션 우려와 재정 악화에 대한 경계심이 커지고 있다.
지난달 21일 진행된 20년물 미국 국채 입찰에선 수요 부진이 두드러졌고, 이 여파로 30년물 금리는 5.089%까지 치솟아 2007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10년물 금리 역시 4.595%로 2023년 10월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뉴욕 증시는 트럼프의 관세 발표 직후 이틀간 10% 가까이 폭락했지만, 다행히 점차 회복했고 이달 초 기준 S&P 500 지수는 4월 저점 대비 약 20% 반등했다.
미국 대형 사모펀드사의 한 고위 임원은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대규모 관세를 발표한 날인 이른바 '해방의 날'을 언급하며 "이날을 기점으로 많은 사람들이 자산이 미국에 과도하게 집중됐다는 점을 깨닫게 됐다"고 짚었다.
오크트리 캐피털의 공동창업자 하워드 막스는 "미국은 지난 100년간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투자처였지만, 이제는 일부 투자자들이 '미국 예외주의'가 예전만 못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상호관세 부과에 앞서 90일 유예기간을 두고 무역협상에 나섰지만 협상이 완료된 국가는 90개국 중 영국 단 한 곳에 불과하다. 관세 정책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여전히 높은 만큼, 경기 둔화 신호는 커지고 있다.
최근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과 경제 정책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올해 미국 경제 성장이 급격히 둔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GDP(국내총생산) 증가율은 올해 1.6%, 내년에 1.5%로 하락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는 지난해 2.8% 성장률과 비교하면 크게 감소한 수치다.
OECD의 미국 전망 보고서는 경제 둔화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신규 관세를 지적했다. 실제 트럼프의 관세 정책으로 인한 관세율은 지난해 2%에서 15.4%로 올라 1938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OECD 수석 이코노미스트 알바로 페레이라는 전망과 함께 게재한 논평에서 "무역 장벽과 경제 및 무역 정책 불확실성이 크게 증가했다"며 "이러한 불확실성 증가는 기업과 소비자 신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무역과 투자를 위축시킬 것"이라고 분석했다.
아울러 "정책 불확실성에 따른 경제 활동 둔화, 관세 인상으로 인한 물가 상승 압력, 금융 시장의 큰 조정" 등 하방 위험을 경고했다.
이런 분위기 속 미국 자산에 대한 투자자들의 회의론은 점점 커지고 있다.
최근 캐나다 퀘벡주의 공적연기금(CDPQ)은 미국 자산 비중(현재 40%)을 줄이고 유럽 투자 비중을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슈로더스의 CEO 리처드 올드필드는 "미국 자산에서 자금이 빠져나가기 시작하는 초기 신호가 보인다"고 말했다.
스테이트스트리트 데이터에 따르면, 투자자들은 달러 약세에 대비해 외환 헤지 비중을 늘리고 있으며, 외국인 투자자들도 미국 자산 보유에 따른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얼라이언스번스타인 CEO 세스 번스타인은 "이제는 미국 노출을 재검토할 시기"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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