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 선수. photo 뉴시스·AP
손흥민(32)은 2010년 10월 30일 함부르크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했다. 2009~2010시즌 독일 분데스리가 10라운드 쾰른전이었다. 손흥민은 프로 데뷔전 데뷔골로 '슈퍼스타'의 탄생을 알렸다. 손흥민은 승승장구(乘勝長驅)했다. 독일 명문 레버쿠젠으로 이적해 간판선수로 활약했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 입성해 토트넘을 대표하는 선수로 성장했다. 2021~2022시즌엔 아시아 최초 EPL 득점왕도 차지했다.
손흥민이 딱 하나 이루지 못한 건 우승이었다. 손흥민은 2016~2017시즌 EPL, 2018~2019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2020~2021시즌 카라바오컵(EFL컵)에서 준우승만 기록했었다. 손흥민이 프로 데뷔 15년 만에 첫 우승컵을 들었다. 손흥민은 지난 5월 22일 2024~2025시즌 UEFA 유로파리그(UEL) 결승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맞대결에서 팀의 1-0 승리에 이바지했다.
2007~2008시즌 EFL컵 이후 토트넘의 첫 우승이다. 토트넘이 유럽클럽대항전에서 우승한 건 무려 41년 만이다. 손흥민은 루카 모드리치, 가레스 베일, 해리 케인 등 이른바 '월드클래스'가 토트넘에선 이루지 못했던 걸 해냈다. 토트넘은 주장으로 UEL 정상 등극을 이끈 손흥민을 '구단 레전드'로 인정했다. 1882년 창단한 토트넘이 '구단 레전드'로 인정한 선수는 손흥민이 세 번째다. 손흥민이 1971~1972시즌 UEFA컵(UEL의 전신) 우승 당시 주장이었던 앨런 멀러리, 1983~1984시즌 UEFA컵 우승을 이끈 캡틴 스티브 페리맨과 토트넘의 자랑스러운 역사에 이름을 남긴 것이다.
우승했다, 그래서?
손흥민이 토트넘 주장으로 우승을 맛본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았다. 손흥민의 스토리를 집중 조명하던 영국 언론들이 냉정한 전망을 쏟아내고 있다. 주장 교체, 세대교체, 손흥민의 사우디아라비아 이적설 등이 대표적인 예다. 비관적 전망에 논거가 없는 건 아니다. 손흥민은 30대 중반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손흥민은 올 시즌 EPL 30경기에서 7골 9도움에 그쳤다. 손흥민이 리그 두 자릿수 득점에 실패한 건 토트넘 데뷔 시즌(2015~2016) 이후 처음이다. 손흥민은 UEL 10경기에선 3골 1도움을 기록했다. 손흥민은 발 부상으로 UEL 8강 2차전, 준결승 1·2차전을 뛰지 못했다. 결승전에서도 교체로
23분 뛰었다. 냉정하게 보면 손흥민은 올 시즌 UEL 우승의 중심이 아닌 조연이었다.
기량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서 떨어지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손흥민과 동갑내기인 네이마르, 마리오 괴체, 사디오 마네, 크리스티안 에릭센, 루카스 모우라 등의 현재를 떠올리면, 손흥민은 놀라울 정도로 기량을 유지하는 편이다. 손흥민이 자신을 향한 비관적 전망, 비판을 잠재우는 방법은 하나다. 손흥민의 또 다른 동갑내기 모하메드 살라처럼 활약하면 된다. 살라는 올 시즌 EPL 전 경기(38) 모두 선발 출전해 29골 18도움을 기록했다. 살라는 올 시즌 리그 득점왕, 도움왕을 석권했다. 리버풀은 살라를 앞세워 EPL 정상에 올랐다. 이런 살라도 리버풀과의 계약 만료 3개월을 앞둔 4월에서야 새 계약을 체결했다. 살라는 리버풀과 2027년 6월까지 재계약을 맺었다. 30대 선수에겐 더 냉정한 잣대를 들이대는 게 프로의 세계다.
떠나간 선배를 보면 미래가 보인다
지난 5월 31일 미국 경제지 '포브스'에 따르면 토트넘의 구단 가치는 33억달러(약 4조5350억원)다. 유럽 모든 프로구단 가운데 9위다. 연간 수익은 6억6600만달러(약 9150억원)에 달한다. 선수단 몸값은 7억6610만유로(약 1조1980억원)로 9위다. 토트넘이 2000년대 들어 올린 우승컵은 단 2개다. 그런 토트넘이 이 정도의 가치와 수익을 올린다는 건 구단 운영 능력이 대단히 빼어나다는 것이다.
토트넘은 냉정한 팀이다. 손흥민 이전 토트넘 레전드로 평가받았던 선수들의 사례를 보자. 손흥민 이전 토트넘 주장이었던 위고 요리스는 2012년 여름 이적 시장에서 토트넘에 합류해 2023년 12월 31일 퇴단했다. 요리스는 토트넘 유니폼을 입고 444경기에 출전해 508실점 151회의 무실점을 기록했다. 요리스는 토트넘 역대 최고의 수문장으로 꼽힌다. 그런 요리스가 주전 경쟁에서 밀려나 미국으로 조용히 떠났다.
레들리 킹은 토트넘 유소년 팀에서 성장해 1999년부터 2012년까지 토트넘에서만 뛴 '원클럽맨'이었다. 킹은 잉글랜드 축구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서도 A매치 21경기를 소화한 실력자였다. 하지만 킹은 잦은 부상으로 31살의 나이에 은퇴했다. 에넌 레넌은 2005년 여름부터 2015년 1월까지 토트넘에 몸담은 윙어였다. 레넌은 토트넘에서 364경기에 출전해 30골 76도움을 기록했다. 레넌은 토트넘을 대표하는 측면 공격수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입지를 잃었다. 레넌은 2015년 2월 에버턴으로 임대 이적 후 완전이적하며 토트넘 생활을 마무리했다. 토트넘은 '구단 레전드'라고 해서 무한한 기회를 보장하지 않는다. 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어떤 선수라도 냉정하게 내친다.
선택은 손흥민의 몫
손흥민은 토트넘과의 계약을 1년 남겨두고 있다. 손흥민이 토트넘에서 은퇴를 바란다면, 연봉 삭감, 출전 시간 감소 등을 감수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손흥민이 살라처럼 팀을 EPL 우승으로 이끄는 엄청난 활약을 펼친다면, 토트넘이 먼저 재계약을 제안해 올 수도 있다. 하지만 세계 축구 역사에서 살라와 같은 사례는 흔하지 않다.
토트넘은 올 시즌 EPL 20개 구단 중 17위에 머물렀다. EPL에선 매 시즌 18~20위가 강등된다. 토트넘이 EPL 출범(1992년) 후 기록한 최악의 성적이다. 토트넘의 부진한 리그 성적에 주장 손흥민 책임론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UEL 우승을 이끈 엔제 포스테코글루 감독과 토트넘의 동행이 불확실하다. 현재로선 이별 가능성이 크다.
토트넘이 새 감독을 선임한다면 새 판을 짤 것이다. 브레넌 존슨(24)이 올 시즌 리그 33경기에서 11골 3도움을 기록했다. 존슨이 EPL에서 처음 단일 시즌 두 자릿수 득점에 성공했다. 케인의 대체자로 합류한 도미닉 솔란케(27)가 토트넘 2년 차 시즌에 접어든다. 토트넘이 차기 시즌 UCL 출전권을 확보하면서 이름값 있는 선수 영입도 가능할 것이다. 손흥민이 토트넘에 남는다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한다.
독일 '트랜스퍼마크트'에 따르면 손흥민의 이적료는 2020년 12월 9000만유로(약 1415억원)로 정점을 찍었다. 이후 계속 내려가고 있다. 그 속도가 더 빨라진다. 2024년 12월 손흥민의 몸값은 3800만유로(약 597억원)로 평가받았다. 손흥민의 이적료가 올해 3월 3000만유로(약 471억원)로 떨어지더니 2024~2025시즌을 마친 뒤엔 2000만유로(약 314억원)까지 내려갔다. 손흥민이 레버쿠젠을 떠나 토트넘에 입단했을 때의 가치는 2500만유로(약 393억원)였다. 손흥민의 가치가 가장 떨어진 게 지금이다.
유럽 언론들에 따르면 토트넘은 손흥민의 이적을 고려한다. 이는 손흥민과의 재계약 협상 태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손흥민이 토트넘에서 우승컵을 추가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손흥민이 토트넘과의 동행을 이어간다면, 추가로 이룰 수 있는 건 '토트넘에서의 은퇴'일 것이 유력하다. 단, 토트넘에서의 은퇴가 '아름다운 이별'일 것이라고 장담할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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