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5년 통제영 거북선의 설계도로 복원한 거북선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표현했다. 유클리드소프트 제공
○ 거북선 명예 특허 받았다
지난 5월 19일 특허청은 조선시대인 1592년 개발된 전투용 배, 거북선에 대해 선조 우수 발명품으로 명예 특허를 등록했습니다. 과거 선조들의 발명품에 특허를 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에요. 발명품의 역사적 의미와 기술적 특징을 검토해 선정했습니다.
거북선은 지금으로부터 약 400년 전 만든 배입니다. 그렇지만 특허받을 수 있는 세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했어요. 바로 신규성, 진보성, 산업상 이용 가능성입니다.
신규성은 이전에 없던 새로운 발명품인지 판단하는 거예요. 진보성은 앞선 발명품의 요소들을 이리저리 결합해 봐도 쉽게 만들어 낼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산업상 이용 가능성은 산업 현장 등에서 활용 가능한 발명품이란 의미입니다.
거북선이 특허를 받은 이유① 배 전체를 둥글게 덮어 밀폐하고 철침을 꽂은 형태의 배는 새로운 것이었다. 전쟁기념관 오픈 아카이브, 어린이과학동아 제공
거북선처럼 배 지붕 전체를 둥글게 덮은 밀폐형 구조의 선박은 당시 처음 만들어졌어요. 덮개엔 뾰족한 철침을 박아 배 안에 있는 군사를 보호하고 적군이 배에 접근하는 것도 막았습니다. 거북선이 만들어진 16세기까지 전 세계에 이런 형태의 선박은 없었어요. 그래서 신규성을 충족했습니다.
특허청은 이런 거북선의 아이디어는 앞서 개발된 배들의 요소를 결합해서 쉽게 만들 수 없었기 때문에 거북선에 진보성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서양과 중국 선박 중에 일부 또는 전체에 덮개를 덮은 배가 있었지만 거북선처럼 둥근 지붕을 전체에 덮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아이디어였습니다.
거북선이 특허를 받은 이유②,③ 앞서 배 일부나 전체를 덮은 동서양의 선박이 있었지만 거북선처럼 전체를 둥글게 덮는 시도는 누구도 하지 않았다, 거북선은 임진왜란의 중요한 전투에 출격해 실제로 싸울 수 있는 배임을 증명했다. 전쟁기념관 오픈 아카이브, 김평원 제공
한주철 특허청 서기관은 "오늘날엔 쉬워 보이지만 당시의 기술 수준으로 나무를 미세하게 깎고 연결해서 평평하지 않고 둥근 모양의 지붕을 만들어낸 것을 높이 평가했다"고 말했습니다. 또 "서양과 중국의 배들을 보지 않고 이런 생각을 한 것이 대단하다"고 덧붙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아무리 새로운 발명품도 실제로 사용될 곳이 없다면 특허받지 못해요. 거북선은 수많은 기록을 통해 전투에 쓸 수 있는 배임을 증명했습니다.
○ 거북선 일본 배 이긴 비결은?
● 튼튼한 판옥선, 거북선으로 진화했다
1555년 조선은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려고 전투용 배 판옥선을 개발했습니다. ‘판옥’은 판자로 집을 지었다는 뜻이에요. 배의 갑판 위에 판자로 방패를 세우고 그 위에 갑판을 올려 만들었어요. 판옥선에서 노 젓는 군사는 갑판과 갑판 사이에서 안전하게 노를 젓고 전투 군사들은 제일 높은 갑판에 있었습니다. 적을 내려다보며 공격할 수 있어 전투 효율이 높았습니다.
판옥선은 배 밑바닥이 평평한 평저선의 특징을 갖고 있어요. 뱃머리와 배 뒷부분은 부드럽게 휘어 올라와 파도의 저항을 줄였습니다. 우리나라 전통 배엔 평저선이 많고 서양과 일본 배는 바닥이 좁고 뾰족한 첨저선이 대부분입니다.
평저선은 첨저선보다 배가 물에 잠기는 깊이가 더 얕기 때문에 더 빨리 제자리에서 방향을 바꿀 수 있습니다. 밑바닥이 평평해 썰물로 갯벌이 드러나도 배를 대기 좋아요. 그래서 우리나라 앞바다에 적합했습니다.
1592년 판옥선을 개량한 거북선이 등장합니다. 튼튼한 덮개로 판옥선을 덮어 배에 탄 모든 군사를 안전하게 보호했어요. 대신 배 옆면에 6개씩 난 구멍으로 안쪽에서 활과 포를 쏘았습니다. 당시 왜군은 작고 날렵한 배인 일본 전선을 타고 적군의 배에 뛰어올라 싸우는 전략을 썼습니다.
판옥선과 일본 전선의 차이. 전쟁기념관 오픈 아카이브, 김평원 제공
거북선의 지붕과 철침은 이런 왜군의 접근을 차단했습니다. 또 거북선은 소나무를 두껍게 잘라 만든 판옥선을 토대로 해서 무척 튼튼했어요. 소나무보다 무른 삼나무와 전나무로 만든 일본 전선은 판옥선과 부딪히면 부서지기 일쑤였습니다.
거북선이 적군의 배 사이로 돌격해 대열을 흐트러뜨리면 이순신 장군의 지휘선을 비롯한 판옥선들이 뒤따라 진격해서 공격을 퍼부었습니다.
이 때문에 판옥선에 대해 아는 것은 거북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해요. 홍순재 국립해양유산연구소 학예연구사는 "임진왜란의 승리와 거북선 개발에 판옥선이 큰 역할을 한 것이 더 널리 알려지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 거북선 밝혀지지 않은 비밀
● 거북선, 어떻게 생겼을까
이충무공전서에 기록된 통제영 거북선.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제공
1795년 정조가 편찬한 ‘이충무공전서’엔 조선시대 해군 기지 ‘통제영’과 ‘전라 좌수영’에서 만든 거북선 그림이 실려 있습니다. 거북선 관련 역사 자료 중 만든 이와 연대가 확실한 믿을 수 있는 자료입니다.
하지만 이 자료에도 거북선의 내부 설계도는 없어요. 또 임진왜란 후 약 200년이 흘러 지역별로 달라진 거북선의 모습만 보여요. 그래서 사람들은 거북선의 원래 모습을 다양하게 추측합니다.
내부, 3층 VS 2층. 김평원 제공
먼저 거북선의 내부가 3층, 혹은 2층이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3층이었다면 배가 뒤집히기 쉽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윗부분이 무거울수록 배의 무게중심 위치가 올라가고 그러면 기울어진 배를 바로 세우는 힘인 복원력이 약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판옥선의 맨 윗층을 덜고 지붕을 얹어 2층 거북선을 만들었다는 주장도 나와요. 하지만 이 경우 노 구멍과 포 구멍이 있는 2층 갑판 가장자리에 노 젓는 군사와 포를 쏘는 군사들이 뒤섞이게 됩니다. 이동하며 공격하기 어려워져요.
2024년 김평원 인천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2층 구조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기존에는 거북선 노가 1자에 가깝게 세워서 물을 휘젓는 형태였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김 교수는 "서양의 조정 경기처럼 물을 밀어내며 비스듬하게 젓는 노를 사용했을 수 있다"고 제안했어요. 이 경우 노를 젓는 위치가 배의 가운데로 바뀌어 포 담당과 노 담당 군사가 한 자리에 뒤섞이지 않습니다.
대포를 쏘기 좋은 일자 용머리(왼쪽), 연기를 피우기 좋은 기역자 용머리(오른쪽). 해군사관학교, 전쟁기념관 오픈 아카이브 제공
용머리 모양도 추측이 다양합니다. 임진왜란 때 기록들은 ‘용머리의 입으로 대포를 쏘았다’고 전해요. 그래서 2022년 해군사관학교가 만든 임진왜란 시기 거북선엔 대포알이 통과하기 좋은 일(ㅡ)자 용머리가 달렸습니다.
2023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채연석 전 원장이 만든 통제영 거북선도 일자용머리입니다. 전라 좌수영 거북선의 기역(ㄱ)자 용머리는 연기를 피우기에 적합하다고 추정해요. 임진왜란에서 외적의 침입을 막아낸 경험은 우리 민족을 단합시키고, 자부심을 갖게 했습니다.
노의 종류가 달라지면 2층 거북선이 가진 문제점이 해결된다. 김평원 제공
임진왜란에서 승리한 이유를 분석하려면 거북선을 이해할 필요가 있어요. 김평원 교수는 "새로운 자료가 나오지 않는 한 거북선에 대해 정확히 알긴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역사뿐만 아니라 물리학, 선박공학 등의 지식을 융합해서 연구하면 새로운 발견도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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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과학동아 6월 1일, 400년 만에 특허받다…거북선
[박수진 기자 soo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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