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2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5 KBO리그 삼성 라이온즈와 키움 히어로즈의 경기에서 키움 히어로즈가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0-2 패배를 한 뒤 선수들이 아쉬워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시즌 3분의2를 남겨둔 시점에 일찌감치 가을야구 레이스에서 탈락한 야구단이 있다. 올시즌 3년 연속 꼴찌가 확정적인 키움 히어로즈다. 6월 2일 기준 키움은 61경기 16승 1무 44패, 승률 0.267로 10위에 머물고 있다. 5월 마지막날 두산을 상대로 승리하면서 창단 최다 10연패에서 탈출했지만 9위 두산과는 9.5경기 차로 여전히 압도적 꼴찌다.
키움의 포스트시즌 가능성은 이미 소멸했다. 일자별 KBO 포스트시즌 진출 확률을 제공하는 사이트(PSODDS.com)에 따르면, 키움의 가을야구 확률은 5월 22일부로 0.0%가 됐다. 개막 이후 겨우 54경기만 치른, 무려 90경기나 남은 시점에서 가을야구 확률이 사라진 것이다. 2000년대 이후 5월이 지나기 전에 가을야구 가능성이 사라진 팀은 키움이 처음이다.
키움의 각종 기록을 보면 1982년 삼미 슈퍼스타즈 이후 최악의 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팀 214득점(10위), 타율 0.233(10위), 출루율 0.302(10위), 장타율 0.335(10위)로 타격 부문 전체가 꼴찌다. 타자 WAR(대체선수대비 기여승수) 합계는 -1.23으로 유일한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타자 WAR이 마이너스인 팀은 프로야구 역사상 한 팀도 없었다. 투수 성적은 더욱 참혹하다. 392실점(최다), 피홈런 60개(최다), 볼넷 255개(최다), 평균자책 5.81(10위), WHIP 1.68(10위)로 모든 투수 지표에서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투수 WAR 합계도 -3.87로 유일하게 마이너스다. 이보다 나쁜 팀은 1982년 삼미 슈퍼스타즈(-6.74) 하나뿐이다. 최하위가 당연한 멤버로 시작해서 가진 전력만큼의 성적을 내고 있으니, 선수단이나 홍원기 감독을 비난하기도 민망하다.
키움 만나면 3연승은 기본
키움은 다른 팀들에 승리 자판기가 됐다. 다들 키움을 만나면 3연승을 기본으로 생각한다. 2승 1패만 해도 아쉬워하는 분위기다. 두산 베어스 이승엽 감독은 키움전에서 2패로 루징시리즈를 당한 다음 날인 6월 2일 자진사퇴했다. 3연승해도 모자랄 상대에게 1승밖에 못하자 더는 버티지 못하고 물러난 것이다. 키움을 다른 팀들이 얼마나 우습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다른 팀들이 키움을 우습게 여긴다면, 키움을 운영하는 수뇌부는 야구를 우습게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야구계에서는 키움 야구단을 이끌어가는 수뇌부 구성이 바뀌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횡령·배임 등으로 구속수감됐던 이장석 구단주가 출소한 뒤 기존 키움 수뇌부들이 주류에서 밀려나고 외부 출신이 헤게모니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재작년까지 타 구단에서 과장이었던 인사는 작년 키움에 재입사한 뒤 초고속 승진을 거듭해 지금은 사실상 대표이사 다음가는 실세로 자리매김했다. 이 임원과 근무했던 타 구단 팀장은 "키움으로 이직했다고 해서 그런가 했는데 엄청 높은 자리에 올라가 있어서 깜짝 놀랐다"고 밝혔다. 타 구단 통역 출신 인사는 현재 구단 운영파트 실세다.
舊장석파가 新장석파 밀어내
이들과의 헤게모니 싸움에서 밀린 기존 수뇌부는 실권을 잃었다. '구 장석파'가 '신 장석파'에 밀려난 형국이다. 키움 사정에 밝은 관계자는 "작년 말 고형욱 단장과 스카우트 팀장이 업무에서 배제당한 것도 이런 구단 내 권력이동의 결과"라고 전했다.
지금은 키움을 떠난 야구 관계자는 "과거 키움이 선수를 판다고 욕도 많이 먹었지만, 기존 키움 수뇌부들은 성적을 포기한 적은 없었다. 좋은 선수를 뽑아서 잘 키워서 언젠가는 우승할 수 있다는 목표로 팀을 꾸렸다"고 말했다.
그러나 수뇌부가 바뀐 지금 키움은 성적은 포기하고 수익에만 관심이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프로야구단을 운영하는 주된 목표는 성적과 수익이다. 경쟁력 있는 선수단을 구축해 그라운드에서는 우승을 추구하고, 많은 관중을 불러들이며 다양한 사업을 통해 수익을 얻는 이중의 목표가 KBO리그 모든 구단의 과제다. 그런데 최근 키움의 움직임에선 성적을 내고 경쟁력 있는 야구를 해보려는 의지가 전혀 읽히지 않는다. 창단 이후 처음으로 2년 연속 꼴찌를 하고서도 겨우내 제대로 된 선수 영입이나 전력 보강에는 소홀했다. 다른 팀에서 방출돼 전성기가 지난 30대 선수들만 잔뜩 수집했다.
작년까지 좋은 활약을 펼쳤던 외국인 투수 아리엘 후라도, 엔마뉴엘 데 헤이수스와는 재계약하지 않았다. 100만달러면 잡을 수 있는 이들을 버리고 외국인 타자 2명·외국인 투수 1명으로 외국인 라인업을 구성했는데, 결과는 처참한 실패였다. '젊은 선수들에게 많은 기회를 주면서 경험을 쌓게 한다'는 명분은 언뜻 듣기엔 그럴듯하다.
하지만 육성이나 리빌딩은 그냥 나이만 어린 선수를 1군에 계속 내보낸다고 자연히 되는 것이 아니다. 야구 잘하는 선배들을 가까이에서 보고 배우는 것도 중요하다. 왕조 현대 유니콘스의 유산을 물려받은 과거 키움에는 이런 문화가 있었다. 반면 지는 야구에 익숙해진 가운데 의지할 선배도 없는 지금 키움에선 유망주의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최근 키움의 행보엔 전력 보강을 위한 움직임은 없고, 계속되는 전력 유출만 있을 뿐이다. 공식은 간단하다. 팀의 간판스타는 포스팅을 통해 메이저리그에 보내고 수수료를 챙긴다. 메이저리그급은 아니더라도 주전급으로 FA 자격이 다가오는 선수는 지명권을 받고 트레이드한다. 그렇게 잔뜩 지명한 유망주를 다시 키워서 때가 되면 미국에 보내거나 다른 팀에 보내고, 거액의 포스팅 수수료와 지명권을 받아오는 일종의 무한동력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순환 속에서 팀이 좋은 성적을 낼 기회는 돌아오지 않는다. 유망주 수집과 판매, 다시 재수집의 반복만이 있을 뿐이다. 이정후는 메이저리그로 떠나면서 자신의 포스팅 수수료로 구단이 얻은 수익을 선수들을 위해 써달라고 당부했지만, 키움이 이 돈을 전력 보강이나 선수들을 위해 썼다는 신호는 전혀 감지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정후 판 돈을 구단주의 소유권 분쟁 해결에 사용했다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다른 구단 핵심 관계자는 "키움의 행태를 보면 같은 야구 종사자로서 화가 난다. 다른 구단들은 치열하게 경쟁하고 좋은 경기력을 선보여서 리그 전체 파이를 키우려고 노력하는데, 키움만 따로 놀면서 리그 전체 노력에 무임승차하는 것 아닌가"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리그 전체 노력으로 천만 관중 흥행 대박이 터지고, 서울 연고팀인 키움도 관중 증가와 수익 증대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팀 성적은 바닥을 치고, 팀을 제대로 운영하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는데, 구단의 주머니는 두둑해지는 아이러니다.
KBO는 최근 키움의 움직임을 계속해서 주시하는 중이다. 리그 전체 경쟁력과 산업성을 중시하는 현재 사무국 체제에서 비정상적인 구단을 방치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 야구 관계자는 "과거 정운찬 총재 시절 히어로즈를 퇴출하지 않은 게 지금 생각하면 두고두고 후회되는 패착"이라고 말했다. 당시 이장석이 법원에서 횡령·배임죄 확정판결을 받자 KBO는 영구실격 제재를 가했다. 하지만 이장석이 구단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건 막을 방법이 없다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구단 제명으로 구단까지 퇴출하고 새 주인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이 만만찮았지만, 법률 검토 끝에 거기까지는 가지 않았다.
키움의 막장 운영에 피해를 보는 건 선수와 팬들이다. 10연패를 끊은 뒤 주장 송성문은 방송 인터뷰에서 눈물을 흘리며 팬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표현했다. 프로팀이길 포기한 구단의 행태에 죄 없는 선수와 팬들만 마음고생하고 있다. 다른 구단 관계자는 "키움 선수들이나 팬들을 보면 불쌍해서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물론 이 구단 경영자들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선수들이 울거나 말거나, 밀려 들어오는 관중과 수익에 소리 죽여 웃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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