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예술영화 개봉신상 리뷰] 이>

[김상목 기자]

'난영'은 우주과학자다. 그녀는 2050년 예정된 4차 유인 화성 탐사계획에 참여하길 간절히 소망한다. 화성에서 혹시 발견될지 모를 생명체 탐지 장비에 심혈을 쏟아부으며 거듭된 적성 테스트에 임해 왔다. 하지만 결과는 예비 백업 승무원에 그치고 만다. 좌절한 난영은 NASA에서 한국으로 일단 귀환한다.

실은 그녀가 메인 승무원으로 선발되지 못한 데에는 나름의 고려가 있었다. 난영은 과학자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어머니는 2026년 2차 화성 탐사 승무원으로 참여했지만, 탐사대는 불의의 사고로 전원 귀환하지 못했다. 그 사고로 유가족은 큰 충격에 빠졌고, 그런 감정적인 상처 때문에 행여나 냉정한 판단이 요구되는 적성 검사에서 계속 물음표가 붙는 것이다.

낙심한 난영은 가족의 추억이 담긴 구식 음향기기 수리를 위해 전자상가를 찾는다. 그곳에서 우연히 음향기기 수리 일을 하는 전직 음악가 '제이'와 마주친다. 음향기기 수리를 위해 만남을 이어가던 두 사람은 연인으로 발전하고, 각자의 좌절을 겪고 있던 둘은 다시금 품은 꿈을 향해 나아갈 힘을 얻는다. 하지만 난영의 꿈이 이뤄진다는 건, 두 사람이 무한한 우주 공간 으로 분리된다는 것이기도 하다.

우여곡절을 거듭하며 갈등을 겪긴 했지만, 마침내 난영은 화성 탐사대에 합류해 떠나고, 제이는 한동안 포기했던 음악 활동을 재개한다. 과연 광활한 우주 사이에 떨어진 둘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서로를 향한 감정을 전할 수 있을까?

넷플릭스 제작 한국산 애니메이션 선발대 도착!

▲  <이 별에 필요한> 스틸

ⓒ 넷플릭스

넷플릭스에게 한국은 기회의 땅이자 북미대륙에서 벌어지는 OTT 플랫폼 간 사생결단 혈투에서 비장의 무기고로 기능해 왔다. 우리에겐 절대강자로 군림하듯 보이는 넷플릭스이지만, 정작 미국에선 후발주자이자 '언더독' 입장으로, 쟁쟁한 자체 콘텐츠를 축적한 경쟁자들과 비교하면 불리한 조건이 한둘이 아니던 처지다. 이런 열세를 뒤집는 데 한국산 콘텐츠는 혁혁한 공을 세웠고, 콘텐츠 생산기지로 자연스럽게 주목을 받으며 제작투자가 거듭 이어졌다. 그 성과는 미디어 동향에 예민한 이라면 굳이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다.

드라마와 영화에 이어 다큐멘터리, 예능 프로그램까지 다양한 분야에 제작 지원이 진행되었지만, 유독 소식이 없던 게 애니메이션 분야다. 그래서 첫 단추를 누가 꿰는가는 해당 업계에선 나름대로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대답이 들려왔다. <이 별에 필요한>이 바로 그 선발대다. 이미 애니메이션 전문 스트리밍 플랫폼 라프텔에서 장편 <그 여름>을 선보인 바 있는 한지원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완성된 결과물은 근미래에 우주에서 펼쳐지는 SF 로맨스를 화면에 한가득 선보인다.

이야기의 얼개는 초창기 SF 장르의 기운을 재현한 것 같은 우주개발을 향한 꿈과 열망에 가족애와 로맨스를 가미한다. 여기에 일본 만화/애니메이션 특유의 어떤 경향이 소스처럼 덧입혀졌다. 그래서 현재 일본 애니메이션을 대표하는 이름 중 하나인 신카이 마코토의 초기 대표작 <별의 목소리>와 연결될 법한 지점이 적지 않다. 광막한 우주로 강제 이별을 당한 상황이지만, 메시지 하나 주고받는 데에도 오만가지 애로가 꽃피는 제약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향해 품은 감정은 퇴색되지 않고, 믿음은 흔들리지 않는 감성의 힘이 강조된다. 아무리 세계가 난리에 휩싸일지언정, 주인공 사이의 신뢰와 애착만 있다면 무엇이건 가능하다는 정석적인 설계다.

그런 기본 얼개로 인해 감독의 전작들에서 주요하게 조명되던 소외된 존재들을 향한 애착과 조명이 이번 작업에선 상당 부분 탈각된 데엔 아쉬움이 남는다. 시장지배적 거대 플랫폼과 협업이란, 창작자로선 쉽게 오기 힘든 기회의 교환이라 본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기존에 작가가 풀어온 이야기 구조보다 넷플릭스가 근래 제작한 한국 SF 콘텐츠들, <승리호>나 <고요의 바다> 같은 작업의 연장선에 있는 분위기와 가족물 경도가 이어진 데 대해선 물음표를 던질 관객이 제법 나올 건 어쩔 수 없다.

2025년 현실에서 25년, 한 세대가 경과한 근미래를 배경으로 삼지만, 영화 속 세계는 일상에 침투한 기술혁신이 눈부심에도 구조적으론 현재와 별반 차이가 없는 세계를 그린다. 여전히 우주개발은 NASA의 주도하에 있고, 한국은 여기에 협력하는 구조에 놓인다. 4차 화성 탐사를 앞두고 우주선 발사 축하연설에선 초강대국 미국의 입장이 고스란히 옮겨진다. 우주개발이 인류의 미래를 향한 진보라는 관점이야 일반론이 될 테지만, 그 경과에서 '신대륙 발견'이 은근슬쩍 들어가는 게 좀 당황스럽다. 이런 면모가 발견되는 건, 해당 작업이 국내 수요보다는 넷플릭스의 전통적인 한국 콘텐츠 활용법, 즉 세계시장에서 적절하게 통용될 '중저가' 글로벌 콘텐츠로 고려되기 때문일 것이다.

근미래 서울의 풍경과 우주공간을 상상케 만드는 시각적 구현

▲  <이 별에 필요한> 스틸

ⓒ 넷플릭스

<이 별에 필요한>은 감독의 전작들에서 보여준 성취나 사회비판 요소가 가미된 SF 장르에 대한 기대치를 만족하기엔 2% 부족한 작업으로 완성되었다. 무난한 이야기는 적절하게 가미된 신파 요소, 청춘 남녀가 각자의 꿈을 응원하는 로맨스 정석을 충실히 따라간다. 과잉되거나 너무 뻔하게 치우치진 않았지만, 깜짝 놀라게 할 만한 파격이나 반전 역시 특별히 기대하긴 어렵다. 모범생의 정석 같은 결과물이다.

그런 미련을 채워주는 건 대규모 인력과 자원이 투입되어야 구현 가능한 시각 효과의 황홀경이다. 다음 세대가 목격할 대도시 서울의 풍경이란 어떤 것일까? 어릴 적 과학서적에서 종종 볼 수 있었던 미래사회 풍경을 고도의 정밀도로 업데이트하듯 미래도시의 전경이 영화 전반부를 압도한다. 가상현실과 인공지능이 상용화되어 일상생활 곳곳에 파고들어 있다. 드론이 위험하고 비용이 들던 업무를 대체하고, 물리적 거리 간격의 제약은 손쉽게 극복 가능한 것으로 그려진다. 자동차는 자율주행이 일상화되었고, 정보 검색과 실시간 속보는 도시 어디에서나 확인 가능한 것이 되었다.

그렇지만 결국 상상력은 현실을 초월하기 어렵다. 'RETRO', 복고 열풍이 정기적으로 밀물과 썰물 교차하듯 출현하는 현대 사회처럼 근미래 역시 전통과 첨단이 공존하며 존재한다. 난영과 제이가 만나는 공간은 몇 년 후에 과연 볼 수 있을까 조마조마하던 세운상가다. 서울 구도심 재개발 이슈 때마다 언제 무너질지 기약할 수 없던 세운상가와 낙원상가 등이 2050년에도 건재한 모습은 괜히 반갑기만 하다. 단종된 부품 찾느라 애를 먹고, 빽판 재생하는 수고 대신 블루투스 기능으로 턴테이블을 재생하긴 해도 여전히 오래된 음향기기의 소리를 향유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힙스터' 감성은 미래에도 통용되는 셈이다. 오래되고 손때 묻은 것에 대한 향수와 애착은 영화 구석구석을 채우며 흐른다.

후반부에 본격적으로 구현되는 우주공간과 화성의 묘사에는 현실 고증을 충실히 거친 흔적이 역력하다. 국제우주정거장을 몇 배 늘려놓은, 우주정거장과 우주거주구 중간 규모로 묘사된 미래의 'ISS(국제우주정거장 약자)'와 화성 착륙 후 이동수단으로 애용하는 '로버', 그리고 유사시에 우주복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구현하는 장면 등이 특히 그렇다. 대충 미래 가상공간이니 넘어가도 될 법한데, 꼼꼼한 감수와 검증한 티가 은은히 묻어나 신용이 간다.

하지만 <이 별에 필요한>은 'Hard SF' 장르가 아니다. 우주탐험을 주요 배경으로 삼지만, 제작진은 작품이 로맨스 장르물이란 대전제를 잊지 않고 방향을 고수한다. 그래서 우주라는 공간은 실제 공허하고 위험한 미지의 영역이라기보단, 감정이 오가는 데 좀 더 특별한 환상공간으로 구현된다. 마치 과거는 물론 현재에도 평범한 시민들이 우주 공간을 간접 체험하기 위해 활용하는 '플라네타리움'을 사방팔방 구현해 놓은 듯 난영과 제이가 목격하는 우주는 현란하고 신비롭기만 하다.

넷플릭스가 제작하는 극장형 콘텐츠라는 낯선 감각

▲  <이 별에 필요한> 스틸

ⓒ 넷플릭스

<이 별에 필요한>은 한글의 재치를 구가하는 제목이다. <이별에 필요한>이라 제목을 잘못 띄우고 붙이는 순간, 장르와 결말이 뒤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명확히 <이 별에 필요한>이 제목이다. 제목 작명 센스가 많은 걸 함축하고 은유하는 셈이다.

조금 더 파격과 변주가 있길 기대하긴 했지만, 넷플릭스의 첫날 한국 애니메이션 장편 제작은 충분히 감상할 만한 결과물로 모습을 드러냈다. 특히 애니메이션의 장기인 시각적 구현에서 그저 규모로만 승부를 걸지 않는 아기자기한 섬세함이 상당한 만족감을 제공할 법하다. 어릴 적 상상하던 미래사회 전모, 서울이란 대도시가 현재의 풍광을 간직한 채 미래에 적응한 모습에 대한 풍경화로 영화는 제 몫을 톡톡히 해낸다.

하지만 넷플릭스가 야심 가득하게 거듭 내놓는 신작을 볼 때마다 묘한 역설에 빠지곤 한다. 안방 감상용 플랫폼에서 선보이는 콘텐츠는 아이러니하게 가정에서 편안한 자세가 아닌, 극장이란 불편한 수동태 환경에서 강제된 몰입을 유지할 때 궁극의 수용이 가능하다는 판정이 번번이 들기 때문일 것이다. 현실과 감각이 혼재된 눈부신 우주 공간의 시공간을 초월한 경이가 화면에 펼쳐지는 걸 목격하고 있자면, <이 별에 필요한>의 진가를 제대로 누리기 위해 어떤 관람 환경이 최적일까 질문이 새롭게 생성되는 건 어쩔 도리가 없다. 영화 속 홀로그램 구현이 일상화된다면 가능해질까?

<작품정보>

이 별에 필요한
Lost in Starlight
2025｜한국｜애니메이션, 로맨스, SF, 가족
2025.05.30. 공개｜96분｜12세 관람가
감독 한지원
출연(목소리) 김태리(난영 역), 홍경(제이 역)
제작·배급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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