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 서초에서 마주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손열음
[이규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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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손열음은 지난 5일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 서초의 5층에 위치한 서울체임버홀에서 토크콘서트를 마치고 현장에 모인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
ⓒ 필립리 |
"1분 만에 티켓이 매진되었다던데요. 이 자리에 함께 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무대에 오른 손열음이 말문을 열자, 객석에서는 웃음과 박수가 잇따랐다. 진행자인 피아니스트 김주영이 '피켓팅(피가 튀길 정도로 치열한 티켓팅)'이라는 말을 꺼냈을 때, 관객들은 이미 그 여운을 실감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251석. 많지 않은 좌석에 들어서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접속했고, 단 1분 만에 모든 좌석이 동이 났단다. 그렇게 치열한 경쟁을 뚫고 이 자리에 앉은 이들을 향해, 손열음은 연주보다 먼저 진심을 건넸다.
그의 첫 마디는 인사였고, 두 번째는 음악이었다. 투명하게 반짝이는 선율이 홀을 가득 메운다.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제1권 C장조, BWV 846'. 피아노가 시작되는 순간, 객석은 숨을 멈춘다. 소리란 이름의 맑은 물줄기가 흐르고, 그 위에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손열음의 손끝이 더해진다.
그가 그리는 음악은 단정하고, 뜨겁다. 곡이 이어지는 동안, 공연장은 숨소리조차 삼켜지는 긴장감으로 팽팽해진다. 사람들은 손바닥을 껴안고, 무릎 위에 올린 손가락은 미동조차 없다. 피아노가 전하는 울림은 공간을 넘어 마음속으로 스며든다. 마지막 음이 흘러내릴 무렵, 누군가 조심스레 숨을 토한다. 그리고 박수가 터진다. 그것은 환호가 아니라 감탄이다.
박수와 환호가 잠잠해질 무렵, 그는 조용히 마이크를 들었다. 객석을 채운 모두의 귀가 열리고, 눈이 그의 입술에 집중한다. 그는 음악보다 낮은 톤으로 천천히 이야기를 꺼낸다. 목소리는 또렷하고, 감정은 절제됐다. 오늘은 단순한 연주회가 아니다.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 서초의 서울체임버홀에서 열린 이번 무대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자신의 이야기를 '연주'하는 자리다.
연주에 앞서 친절한 배경 설명을 곁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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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니스트 손열음은 토크콘서트를 마치고 전체 관객들을 대상으로 싸인을 해주며 인사를 나누었다. |
ⓒ 필립리 |
무대는 총 네 곡으로 구성됐다. 그는 음악 사이에 말을 두었고, 그 말은 곡과 곡 사이의 다리가 되었다. 첫 번째로 연주된 곡은 오직 왼손만을 위한 연주곡이었다.
"이 곡은 1차 세계대전 당시 오른팔을 잃은 비트겐슈타인을 위한 곡이에요. 피아노는 두 손이 공평하게 연주되는 악기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왼손만으로도 모든 연주가 가능합니다. 그는 오른손을 잃었지만, 음악은 그를 떠나지 않았고, 오히려 더 깊은 감정으로 남게 되었죠. 전쟁이 개인에게 남긴 상흔, 그리고 그 상처를 예술로 껴안으려는 그의 삶을 생각하며 이 곡을 연주했습니다."
그의 말은 감정을 덧입혀 음표를 해석한다. 무대 위 선율은 기술이 아니라 생애로서 관객 앞에 펼쳐진다. 이어진 다음 곡을 소개하며 그는 체르니에 대해 이야기한다.
"체르니라고 하면 다들 '100번', '30번' 떠올리시죠. 마치 피아노를 배우는 사람에게 계급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던 교본의 대명사요. 저도 체르니에 대한 기억이 무겁기만 했어요. 그런데 그에게도 정말 예쁜 곡들이 있답니다. 그걸 오늘 여러분과 나누고 싶었어요. 연습곡의 고통만이 아닌, 체르니의 따뜻한 감성도 존재한다는 걸요."
토크콘서트에서 손열음의 진심을 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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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열음의 토크콘서트는 티켓 예매를 개시한지 1분만에 매진이 될 정도로 피켓팅을 뚫고 관객이 객석을 메웠다. |
ⓒ 필립리 |
진행을 맡은 피아니스트 김주영은 그의 동료이자 친구였다. 같은 음악가의 심정을 담아 조심스럽고도 깊이 있게 질문을 던진다. 질문은 군더더기 없이 명료하고, 대답은 뿌리처럼 퍼진다. 바흐를 거쳐 체르니, 그리고 마지막 라벨의 곡에 다다르며 손열음은 보다 깊은 고백을 꺼낸다.
"라벨의 곡을 연주할 때 대학생 때였어요. 처음에는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으로 연주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며 점점 단순한 왈츠의 연주로 옮겨갔어요. 저도 연주를 오래 할수록 느낍니다. 복잡하게 치는 것보다 정말 필요한 감정만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그는 말의 중간에 멈춘다. 잠시 입을 다문 뒤 시선을 아래로 떨군다. 멈춤은 곧 고백이다. 그 조용한 숨, 머뭇거림, 천천히 입술을 여는 찰나의 시간들이 오히려 모든 감정을 전한다. 객석에서는 기침 한 번조차 들리지 않는다. 누구도 휴대폰을 꺼내지 않고, 손을 흔드는 이도 없다. 모두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그 속에서 자신을 돌아본다.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 서초가 전하는 예술교육의 진심
필자는 예전에 예술의전당에서 그의 정제된 연주를 들은 적이 있다. 당시의 무대는 단단했고, 객석은 차분했으며, 연주는 차가운 섬세함을 드러냈다. 그날 보여준 음악의 완벽성. 그때의 손열음은 완벽한 테크닉으로 무장된 연주자였다. 그러나 오늘의 손열음은 한 사람의 예술가로, 감정을 숨기지 않고 때로는 연약하게, 때로는 단단하게, 삶의 페이지를 천천히 넘기며 관객에게 건넸다.
이 무대는 음표보다 문장이 많았고, 테크닉보다 망설임이 길었다. 그런 그를 마주한 객석의 사람들은 저마다 가슴 속 깊은 곳을 꺼내어 마주하는 듯하다. 이날 무대가 주는 울림은 단지 연주에 있지 않았다. 손열음이라는 한 사람의 생애를 따라가며, 음악이 어떻게 사람을 만들고, 또 사람을 감싸는지를 경험했다.
그런 시간들은 교육이라 부르지 않아도 교육이 된다.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 서초는 오늘의 무대를 통해 하나의 원칙을 확인시켰다. 예술교육이란 기교를 전수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공유하는 것. 예술가의 이야기를 듣고, 시민이 자신의 감정을 되비춰보는 순간. 그 속에서 예술교육은 완성된다.
예술은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리를 비운 후에도 자리를 지킨다. 누군가는 혼자 돌아가고, 누군가는 누군가의 손을 잡고 걷는다. 그러나 오늘, 손열음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 모두는 마음속에 잔잔한 울림을 남긴다. 그 곡은 악보에도 없고, 건반에도 없다. 오직 한 사람의 예술가가 내면에서 꺼내어 모두에게 건네는 이야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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