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요약
갈수록 격화되는 미중 패권경쟁에 한국 '낀' 신세
대통령 취임날부터 한국 사이에 두고 미중 신경전
미중 모두 만족시키는 '어려운 줄타기' 성공할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연합뉴스
"북경(베이징) 날씨가 너무 좋지요?"
지난 2023년 3월, 코로나19 사태가 끝나고 중국발전고위급포럼(CDF 2023) 참석차 3년 만에 중국 베이징을 찾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대외적으로 남긴 유일한 말이다.
당시는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가 본격화되던 시기로 중국 시안(낸드플래시)과 쑤저우(반도체 후공정)에 공장을 가동하고 있는 삼성전자는 미중 양국 사이에 그야말로 '낀' 상황이었다.
삼성전자의 최대 해외 생산기지인 동시에 최대 시장인 중국을 3년 만에 방문했지만 '날씨' 이야기 외에 입밖에 꺼낼 수 없는 난처한 상황이었던 셈이다.
미중 양국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지난 3일 치러진 대선에서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의 상황 역시 당시 이 회장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그 때보다 상황은 더 악화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은 중국을 상대로 전방위 압박을 가하고 있다. 양국간 '관세 전쟁'은 지난달 12일부로 휴전에 돌입했지만 '비관세 전쟁'은 보다 치열해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미국은 최근에도 중국에 대해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출 통제 강화 △반도체 설계 소프트웨어(EDA) 판매 중단 △유학생 비자 취소 조치 등을 취하며 중국의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중국 역시 이에 지지 않고 희토류 수출 통제 조치 등 비관세 조치를 유지하며 미국의 애간장을 태우고 있다. 중국은 세계 희토류 채굴의 약 70%, 가공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미중 양국간 패권경쟁이 격화될수록 한국 외교는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미국은 한국의 최대 동맹국이자 2대 수출국이며, 중국은 최대 수출국이자 가장 가까운 이웃 국가이다.
더 큰 문제는 양국 모두 한국을 향해 서로 자기편에 줄 서라고 요구하고 있다는데 있다. 이는 이 대통령 당선 이후 양국이 내놓은 메시지만 봐도 명확하게 드러난다.
우선 미국 백악관은 입장문에서 "전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에 대한 중국의 개입과 영향력 행사에 대해서는 여전히 우려하고 반대한다"면서 이례적으로 제3국인 중국을 언급했다.
한국의 대선 결과를 평가하며 뜬금없이 중국을 언급한 배경은 누구봐도 이재명 대통령 집권으로 한국이 중국과 가까워지는 것을 경계하는 일종의 경고 메시지로 읽힌다.
린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 연합뉴스
이에 린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4일 브리핑에서 미국을 겨냥해 "중한 관계는 제3자를 겨냥하지도 제3자 요인의 영향을 받지도 않는다"면서 "중국은 일관되게 편 가르기와 진영 대결을 반대해왔다"고 비판했다.
수개월째 지속된 정치적 혼란에 종지부를 찍고 새정부가 출범한 첫날부터 미중 양국이 한국을 사이에 두고 으르렁대며 싸우는 모습을 연출한 것으로 한국이 처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시절 소위 '셰셰'(謝謝·고맙습니다) 발언으로 인해 '친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백악관의 입장문도 이같은 평가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의식한듯 이 대통령은 지난 대선 기간 "이재명의 실용외교는 굳건한 한미동맹을 토대로 한다", "대한민국 외교의 근간은 한미동맹" 등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누차 역설했다.
동시에 중국을 향해서는 "중요 무역상대국이자 한반도 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나라로, 지난 정부 최악의 상태에 이른 한중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또, 4일 취임사를 통해 "굳건한 한미동맹을 토대로 한미일 협력을 다지고, 주변국 관계도 국익과 실용의 관점에서 접근하겠다"고 강조했다.
두 강대국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실용외교를 펴겠다는 뜻이다. 다만, 앞서 살펴본대로 미중 모두 줄서기를 요구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실용외교 만큼 어려운 과제도 없다.
패트릭 크로닌 미국 허드슨연구소 아시아태평양 안보석좌는 이를 두고 이재명 대통령의 입장은 미국과 철통같은 동맹을 유지하되 누구와도 적이 되지 않으려는 것이라며 "그건 매우 어려운 줄타기"라고 지적했다.
반면,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는 5일자 사설에서 "(이 대통령이) 중국과의 관계를 희생해 다른 국가와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길을 닦지 않아야 한다"면서 '어려운 줄타기'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 대통령이 미국과의 관계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중국과 원만한 관계 개선을 이루는 '어려운 줄타기'에 성공할 수 있을까? 이 대통령의 '국익 중심 실용외교'가 이제 막 시험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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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CBS노컷뉴스 임진수 특파원 jslim@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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