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연구기관 연구자들이 2년 전 심판 청구
일부 재판관 “에너지 절감 실효성도 없다”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소속 연구자들이 공공기관 실내 난방온도 제한 조치에 대해 제기한 헌법소원이 2년 만에 각하(却下)됐다. 각하는 권한쟁의 심판 요건이 갖춰지지 못한 경우 사건 심리를 하지 않는 결정이다.
다만 일부 재판관은 난방온도 제한이 연구자의 환경권을 침해한다는 사실이 인정된다는 의견을 냈다. 실내 냉난방에 들어가는 에너지가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연구자들이 더위, 추위에 신경 쓰지 않고 연구하는 게 사회에 더 도움이 된다는 의견도 나온다.
지난 2022년 10월 18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사무실 입구에 공무원이 공공기관 평균 난방 온도 17도 제한 안내문을 부착하고 있다./연합뉴스
5일 과학기술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헌법재판소는 지난 3월 말 출연연 연구자들이 공공기관 에너지 사용의 제한에 관한 공고 제4조 제1항 등에 대한 위헌 여부를 확인해 달라고 한 헌법소원 심판청구에 대해 각하 결정을 내렸다.
앞서 2023년 1월 출연연 연구자 8명이 정부의 공공기관 실내 난방온도 제한이 부당하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22년 10월 공공기관 에너지사용의 제한에 관한 공고를 내고 겨울철 공공기관 실내 평균 온도를 섭씨 17도로 제한했다. 그전보다 1도 더 낮춘 것이다.
공공기관 실내 난방온도 제한 지침은 일상적인 사무를 하는 공공기관뿐 아니라 과학 연구를 수행하는 출연연에도 똑같이 적용됐다. 그러자 현장에서는 추워서 실험하기가 불가능할 지경이라는 불만이 쏟아졌다. 정부의 지침이 완화될 기미가 없자 극지연구소와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소속 연구자들이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헌법소원은 심판청구 2년만에 각하됐다. 헌재는 문제가 된 산업부의 공고가 언론 보도 이후 개정된 점에 주목했다. 조선비즈가 2023년 1월 5일 연구자들의 헌법소원을 보도한 이후 논란이 커지자 산업부는 공공기관 실내 난방온도 제한 규정을 완화했고, 개정된 공고도 그해 3월 31일까지 시행된 후 폐지됐다.
헌재는 “공고의 난방온도 제한 규정이 효력을 상실했기 때문에 심판청구는 권리보호이익이 없다”고 판단했다. 난방온도 제한 규정이 이미 폐지된 만큼 위헌 여부를 따질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일부 재판관은 반대 의견을 통해 연구자들을 지지했다. 헌재 재판관 8명 중 이미선, 김형두, 조한창 재판관은 반대 의견을 통해 난방온도 제한 규정이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해 연구자들의 환경권을 침해했다고 지적했다.
반대 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헌법소원 심판청구 이후 공고가 개정돼 실내온도 기준을 일부 완화해 적용할 수 있게 됐지만, 앞으로도 난방온도 제한 규정과 같이 공공기관의 실내온도를 평균 17도 이하로 제한하는 내용의 침해행위가 반복될 위험이 상당하다고 보여진다”며 “지나치게 높거나 낮은 실내온도는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기 때문에 환경권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공공기관의 실내 난방온도를 제한한 것이 ‘보여주기식’ 정책에 불과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2022년 9월 30일 비상경제장관회의 자료를 보면 공공기관 실내 난방온도를 18도에서 17도로 낮추면 난방 에너지를 6% 절약할 수 있다고 나온다. 2022년 12월 기준 공공용 판매전력량은 254만8077메가와트시(㎿h)로 이 중 6%를 절약한다고 하면 감축량은 15만2884㎿h 수준이다. 이는 전체 전력판매량의 0.3% 수준에 불과하다.
반대 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공공기관의 난방을 위해 사용되는 전력량은 공공용 판매전력량의 일부에 지나지 않으므로, 난방온도 제한 규정이 에너지 절약에 실제로 기여한 정도는 이보다 훨씬 낮을 것으로 보인다”며 “공공기관 난방온도 제한 규정이 현실적으로 실효성이 없거나 그 효과가 매우 제한적인 수준에 그치는 것이었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반면 난방온도 제한 규정으로 공공기관 종사자들이 입게 되는 피해는 직접적이고 구체적이라고 지적했다. 재판관들은 “공공기관 종사자들의 업무 효율성 저하로 인하여 사회 전체가 입게 되는 손해는 난방온도 제한 규정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공익을 훨씬 상회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출연연 연구자들은 실효성 없는 실내 냉난방 온도 제한보다 안정적인 연구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사회에 더 이득이 된다고 지적했다. 한 출연연 노조 관계자는 “여름철이 다가오면서 실내온도 제한 규정을 놓고 한바탕 홍역을 치를 텐데, 정부가 실효성 없는 온도제한 조치보다 연구 현장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고민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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