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어러블 혈압 센서' 개발 정기훈 KAIST 교수 인터뷰
마이크로분광기 기반 '초분광 PPG' 기술
1000만원대 분광기 센서, 10만원 이하로 낮출 전망
"새 바이오 데이터 확보, 정밀의료 밑거름"

[이데일리 김범준 기자] 앞으로는 운동 중 움직임이 있는 상황에서도 정확도가 높고 연속적인 혈압 측정을 통한 밀착 심혈관 건강 관리가 가능할 전망이다. 국내 연구진이 세계 최초로 ‘초분광(超分光) 광용적맥파(PPG)’ 기술을 활용한 웨어러블 혈압 센서를 개발하면서다.

정기훈(오른쪽)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바이오·뇌공학과 교수와 박정우 박사 후 연구원.(사진=카이스트)

정기훈 카이스트(KAIST) 바이오·뇌공학과 교수는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전 세계에서 마이크로 광학을 가장 잘하고 있는 연구실”이라고 소개하면서 “초분광 PPG 기술을 활용한 웨어러블 혈압 센서는 정확도가 훨씬 높은 새로운 차세대 바이오 빅데이터 수집·분석을 통해 고도화된 디지털 헬스케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존 커프(공기주머니) 방식으로 혈압을 측정하기 위해선 최소 10분간 안정이 필요하고, 측정 시 움직이지 않아야 하며 팔을 압박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최근 스마트워치에는 1~3개 파장을 이용해 혈압을 측정하는 PPG 센서가 탑재됐지만, 고혈압 상태와 운동 상태에서 정확도가 낮고 연속 측정은 불가했다.

PPG는 빛의 파장이 피부와 혈관을 침투해, 혈액을 순환시키는 적혈구 속 헤모글로빈 농도 변화를 통해 심박동을 측정한다. 심박동수는 곧 혈류의 속도로 이어지고, 유속의 상관관계에 따라 압력(혈압)을 산출하는 방식이다. 다만 기존 PPG는 녹색 혹은 청색 등 일부 개별 파장만 활용하기 때문에 정확도가 떨어진다.

업계에서는 삼성과 애플 외에도 미국 바이오 센싱 기업 발렌셀(Valencell), 지능형 센서 기업 에이엠에스 오스람(ams OSRAM) 등이 웨어러블 디바이스 개발과 디지털 헬스케어를 위한 다양한 기술 경쟁을 벌이고 있다. 관건은 보다 정확한 양질의 신체 데이터 분석을 위해 센서를 고도화하면서도, 손목 등 일상 속 부담 없는 착용을 위해 크기를 최대한 줄이고 가격을 낮추는 게 핵심이다.

카이스트 연구팀은 오랜 기간 마이크로 광학 분야 연구를 통해, 기존 분광기(물질이 방출 또는 흡수하는 빛의 스펙트럼을 계측하는 수광 센서) 대비 부피는 1000분의 1 수준으로 줄이고 해상도는 높인 초박형 마이크로분광기 개발에 성공했다. 백색광 발광다이오드(LED·전기 에너지를 빛 에너지로 전환하는 광센서)와 통합 포토다이오드(빛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변환하는 광센서) 기반 마이크로분광기를 담은 초분광 PPG 모듈이 탄생했다.

정 교수는 “초분광 PPG는 가시광선 스펙트럼이 모두 혼합된 백색광을 쏘면 통합 포토다이오드가 수십 개의 세분화된 초분광 파장 신호를 받아들인다”면서 “빨간색 쪽 파장은 길어 동맥까지 깊게 들어가고, 보라색 쪽은 파장이 짧아 피부에 가까운 모세혈관 신호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연속적이고 정밀한 측정이 가능하다”고 원리를 설명했다.

정기훈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바이오·뇌공학과 교수 연구팀이 개발한 혈압 모니터링을 위한 초분광 PPG 모듈 및 내부 구성. 초박형 고해상도의 고체 침지 격자 마이크로분광기를 활용해 초분광 범위의 PPG 신호를 측정하고 이를 통해 혈압을 모니터링한다.(사진=카이스트)

현재 연구 목적으로 쓰이는 분광기 센서 가격은 1000만원대 수준이지만, 카이스트 연구진이 개발한 초박형 마이크로분광기가 실제 양산 과정에 들어가면 10만원 이하로 낮아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해당 마이크로분광기가 적용된 카이스트 초분광 PPG 센서는 현재 기술성숙도(TRL) 1~9단계 중 상용화가 가능한 6단계에 해당한다.

정 교수는 “반도체 공정과 비슷한 마이크로 일렉트로메카니컬 시스템(MEMS)으로 센서를 개발했다”며 “연구실에서 시제품으로 충분히 검증을 마치고 실제 웨어러블 디바이스 양산을 위한 개발 단계에 들어갈 수 있는 수준으로, 스핀오프 창업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카이스트 연구팀이 개발한 웨어러블 초분광 PPG 센서는 연속적으로 수축기 및 이완기 혈압을 모니터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심박수, 호흡률과 같은 다른 생리적 매개변수도 동시에 측정해 운동 전후의 혈압 변화를 세밀하게 분석할 수 있다. 심혈관 생리학적 지표를 정밀하게 제공함으로써 자원 효율성 향상, 의료비 절감, 정밀의료 및 디지털 헬스케어의 발전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평가다.

정 교수는 “초분광 PPG 센서를 웨어러블 타입으로 처음 데모(증명)한 사례”라며 “초분광 PPG는 새로운 바이오 데이터 확보를 통한 정밀의료에 밑거름이 될 수 있는 중요한 기술로, 향후 개인 맞춤형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이번 연구 의미를 강조했다.

정 교수는 성균관대 기계공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UC버클리에서 기계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6년 카이스트 바이오·뇌공학과 교수로 임용돼 현재 및 카이스트 헬스사이언스연구소에서 관련 연구를 활발히 이어오고 있다. 이번 연구는 한국보건산업진흥원 한국형 ARPA-H 사업, 한국연구재단 글로벌 중견연구 사업 등 지원을 받아 수행했다. 연구 논문은 국제 학술지 ‘어드밴스드 사이언스’ 4월 25일자에 게재됐다.

김범준 (yolo@edaily.co.kr)

Copyright © 이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