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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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선 출구조사 지켜보는 권영국 후보 민주노동당 권영국 대선 후보가 3일 서울 구로구 선거캠프에서 제21대 대통령선거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
ⓒ 연합뉴스 |
우리는 달려왔습니다.
지난 한 달간, 아니 작년 12월 3일 친위 쿠데타의 좌절 이래로
우리 민주노동당과 한국 사회는 정신없이 달려왔습니다.
위태롭고 불안정한 날들이었지만 우리 당은 내란 시도를 진압하고 다른 대한민국을 여는 평등한 광장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태 왔습니다. 비록 당비나 내고 주변의 지지자들을 조직하는 정도였지만 멀리서 지켜보는 당의 헌신은 긍지였고 자랑이었습니다. 유력한 지도자의 퇴장, 분열과 당력 소진 이라는 아픔을 겪으면서도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어야 할 곳에 있는 당은 의석 몇 개 보다 더 아름다운 깃발이었습니다.
선거를 준비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을 겁니다. 오래되고 익숙한 어려움, 자금과 인력의 부족만이 아닙니다. 당명 변경을 둘러싼 진통도 난관을 더했습니다. 여전히 우리를 지배하는 낡은 관성, 패배주의, 혼란의 와중에도 각자가 나름의 방식으로 이 깃발을 지켰습니다. 어려운 살림에 추가 후원금을 낸 이들, 지지자들을 조직한 분들, 직접 거리에서 선거운동에 참여한 모든 분들이 이 깃발의 주인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의와 헌신이 우리 후보를 방송에 내세울 수 있었습니다. 토론을 통해 존재를 증명한 것은 우리 당이 아닙니다. 우리와 함께 있는 사람들, 힘없고 가난한 배제된 이들이 그 공간에서 시민권을 되찾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패배를 예감하고 있었습니다.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정지 지형 속에서, 낯선 기회를 호소하는 일은 언제나 그랬듯이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지금 당장 더 중요한 일이 있다거나, 시간이 가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일이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때로는 너희의 실력을 믿지 못하겠다고 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가끔은 가혹하고, 때로는 정확한 비판과 공격 앞에 버텨온 시간들이 이제 막을 내렸습니다.
우리는 꿈이 있었습니다.
다음 선거에서 방송 토론에 초대되는 것이 우리의 정직한 꿈이었습니다. 누구는 당선을 목표로 하고, 누구는 선거비 보전과 정치적 도약을 꿈꿀 때, 우리의 목표는 3%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성적표를 받아 들었습니다. 실패와 낙제점에 정직하게 직면해야 합니다. 불과 한 달의 헌신으로 그동안의 오류와 실패를 덮을 수 없었다는 것을 아프게 받아들입니다.
아마 후보가 제일 힘들 것입니다. 권영국이라는 이름, 진보적 시민 사회 운동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름 석자는 들어 봤을 그 사람이 우리의 얼굴이었습니다. 최선을 다해 헌신한 후보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이 우리의 후보여서 자랑스러웠습니다. 아울러 마지막 힘을 짜내 최후까지 헌신한 전국의 활동가들도 실망이 깊을 것입니다. 예견된 패배라고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오늘 밤만 힘들어합시다. 실패가 우리의 이름은 지울 수 있을지라도 가난한 이들과 연약한 사람들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우리 안에서 우리들의 얼굴로 살아갑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들이 우리의 별이었습니다.
우리가 그 별에 사로잡혔던 순간을 바로 지금 기억해야 합니다. 가난해도 존엄하고, 소수자가 배제되지 않는 미래, 생태와 생명이 존중되며 다양성이 지켜지는 세상. 그 미래는 권력을 가지고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절망에 무릎 꿇지 않고, 꿈과 양심을 성공에 팔지 않는 용기가 거름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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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대 대통령 선거 당일인 3일 오후 서울 구로구 민주노동당 당사에 차려진 개표상황실에서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가 한상균 공동선대위원장과 손을 맞잡고 출구조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
ⓒ 복건우 |
다시 3퍼센트를 향해 시작합니다.
슬프지만 부끄럽지는 않습니다. 양심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떳떳하게 나아가며, 꿈이 현실이 되는 그날을 우리의 거친 손으로 직접 만들어 가야 합니다. 부끄러움 대신 고된 길을 선택했습니다. 슬픔과 아쉬움은 현실이지만 우리는 당당합니다.
그 당당함으로 만들어 갈 미래가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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