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대 대통령 당선이 확실시되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배우자 김혜경씨와 함께 서울 여의도 국회 앞 광장에 모인 지지자들 앞에 서서 손을 들어 올리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이 나라의 주인이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여러분 스스로 투표로써, 주권 행사로써 증명해주셨습니다.”
2025년 6월4일 새벽 1시20분께, 제21대 대통령 당선이 확실시되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서울 여의도 국회 앞 광장에 모인 지지자들 앞에 섰다. 전날 밤 11시40분께 한국방송(KBS)과 문화방송(MBC), 에스비에스(SBS) 등 방송 3사가 이재명 후보의 당선이 확실하다고 보도하자, 저녁부터 여의도에 모인 지지자들은 “이재명 대통령”을 외치며 환호했다. 이재명 후보는 그동안 어떤 인생 역정을 걸어왔을까.
소년공에서 인권변호사가 되기까지
1978년 야구 글로브 공장인 ‘대양실업’ 소년공 시절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 모습. 그해 4월 말 고입 검정고시학원에 등록해 8월 합격했다. 이재명 후보 캠프 제공
경북 안동의 화전민 마을에서 7남매 가운데 다섯째로 태어난 이재명은 어린 시절 여덟 식구가 단칸방에 살았을 만큼 가난했지만 “어머니의 사랑을 받으며 구김살 없이 살았기에 유년은 따뜻하고 그리운 기억으로 남아있다”고 회상한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가족들과 함께 더 나은 삶을 찾아 경기 성남시로 이사했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이재명이 열여섯살 소년공 시절부터 사법연수원에 다니던 때까지 기록했던 10년의 일기를 담은 책 ‘나의 소년공 다이어리’를 보면 이재명은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숨기고 다른 사람의 이름을 빌려 여러 공장을 전전했다’고 한다. 그는 야구 글러브를 만드는 공장에서 기계 프레스에 팔이 끼어 왼쪽 팔이 굽어지는 장애까지 입었다. 2022년 방송 인터뷰에서 그는 “나를 괴롭히던 공장 관리자가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을 듣고 공부를 결심했다”고 밝힌 바 있다.
소년 노동자 이재명은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퇴근하고 곧장 학원으로 달려가 밤늦게까지 악착같이 공부해 검정고시를 빠르게 합격하고 장학생으로 중앙대 법학과에 진학할 수 있었다. 대학생 시절에는 사법고시 합격만을 목표로 공부에 전념했으나, 대학교 4학년 무렵에 군사정권 하에서 벌어진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진실을 마주하고 사회의 부조리에 눈을 뜨게 됐다. 1986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이재명은 성남시에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다. 당시 인권 변호사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강연에 갔다가 “변호사는 밥 굶을 일이 없으니 사회를 위해 일해보라”는 노 전 대통령의 이야길 듣고 인권 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1989년 사법연수원 수료식에서 이재명 당선자. 한겨레 자료사진
이재명 당선자가 성남에서 인권 변호사로 일하던 시기에 성남시립병원 설립 운동에 몸 담으면서 정치에 입문하게 됐다. 2000년대 초반, 성남 본시가지에 큰 병원 두 곳이 동시에 폐업했는데 50만 시민이 한밤 중에 응급치료가 필요해도 분당까지 가느라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그는 성남시립병원 설립추진위원회 공동대표가 돼 지지 서명을 주도했는데, 당시 성남시의회 다수당이던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은 시립병원 건설과 관련해 주민이 발의한 조례를 날치기로 무산시켰다. 이때 시립병원을 시민의 손으로 만들자고 다짐하면서 본격적으로 정치의 길에 들어섰다.
파격적 보편복지 행보, 성남시장 시절
2017년 2월20일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이2017년 2월20일 오전 성남시가 시행하고 있는 `청년배당\'을 직접 체험해보려고 경기 성남 상대원 재래시장을 방문해 청년에게 지급되는 삳품권으로 떡을 사고 있다. 한겨레 자료
2006년 지방선거와 2008년 총선에서 고배를 마신 이재명은 2010년 지방선거에서 첫 승리를 거두며 성남시장에 당선됐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취임 직후인 2010년 7월께 판교 신도시 조성을 위한 판교특별회계에서 빌려 쓴 돈 5200억원을 단기간 안에 상환할 수 없다며 모라토리엄(채무지급 유예)을 선언했다. 지방자치단체로서 전례 없는 모라토리엄 선포에 논란이 일었지만, 성남시는 세수 누락을 줄이며 강도 높은 재정정책을 펼쳐 2013년 12월 모라토리엄 상황에서 벗어났다고 발표해 주목받았다.
성남시의 빚을 갚은 이재명 시장은 과감한 복지 정책을 내놨는데, 선별(marginal) 복지가 아닌 보편적(universal) 복지 기조 아래 모든 중고생에게 교복을 무상으로 지급하고, 산모를 위한 공공산후조리원을 세웠다. 이재명은 훗날 인터뷰에서 “어렸을 때 또래들이 교복을 입고 학교를 갈때 나는 작업복을 입고 그들을 거슬러 공장에 다녔는데 교복 입은 학생들이 참 부러웠다. 성남시장 시절 무상교복 정책은 교복에 대한 나의 경험이 들어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만 24살 청년들에게 1명 당 100만원을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청년배당’을 국내 최초로 도입했다.
중앙정부와 보수 언론은 이렇게 파격적인 성남시의 행정을 견제했다. 박근혜 정부는 성남시의 청년배당을 포퓰리즘이라 비판하면서 압박했으나 이재명 시장은 굴하지 않았다. 중앙 정부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청년배당 정책은 경기·광주·부산·대전 등의 청년복지정책으로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2016년 겨울,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촛불 시위에 참여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며 언론의 주목을 받은 이재명은 전국구 정치인으로 부상했고, 박근혜 탄핵 이후인 2017년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도전했다.
2017년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들. 왼쪽부터 이재명 성남시장, 최성 고양시장,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안희정 충남도지사. 공동사진취재단
2017년 대선 후보 경선과 경기도지사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대선후보 경선에서 진 이재명은 이듬해인 2018년 지방선거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남경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후보를 꺾으며 정치 인생 2막을 열었다.
광역자치단체장이 된 이재명은 성남시장 재직 시절 실험했던 여러 복지 정책을 경기도 전역으로 확산시켰다. 산후조리 지원, 무상 교복, 청년 배당 등 ‘3대 무상복지’도 경기도 차원에서 확대했고, 지역화폐 발행을 통해 골목경제를 살리겠다는 청사진도 현실화했다. 경기도지사 이재명의 행보를 상직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은 계곡 불법영업 단속이었다. 몇십년 동안 지방자치단체의 단속을 피해 계곡을 점령하고 불법으로 자리세를 받아 시민들을 불편하게 했던 업주들을 상대로 담판을 짓고 불법 시설물들을 모두 철거시켰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2020년 7월16일 오후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 판결을 받은 뒤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청 앞에서 재판 결과와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수원/한겨레 백소아 기자
하지만 이렇게 ‘사이다’ 행정을 하면서도 이면에 크고 작은 시련이 끊이지 않았다. 2018년 말부터 가족 문제와 과거 행적을 둘러싼 각종 의혹 제기에 시달렸다. 일부 검찰 수사로 이어져 법정 공방도 벌여야 했다. 친형 정신병원 강제입원 논란으로 재판에 섰을 때는 도지사직 상실 위기에 몰리기도 했지만, 2020년 7월 극적으로 무죄 취지의 최종 선고를 받아 지사직을 유지할 수 있었다.
2022년 제20대 대선에서 석패한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운데)가 2022년 3월10일 새벽 패배가 확실시되자 서울 여의도동 중앙당사에 나와 기자회견을 하기에 앞서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2022년 제20대 대선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0.73%포인트 차이로 석패한 뒤 야당 정치인이 된 이재명을 향한 검찰의 수사는 더욱 거세졌다.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과 성남에프시(FC) 후원금 의혹 등으로 수사가 계속됐고 검찰은 이재명을 구속하기 위해 국회에 체포동의안을 두 번이나 제출했다. 두 번째 체포동의안은 국회가 통과시키면서 서울중앙지법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까지 받았지만, 법원이 구속영장을 기각시켰다.
2024년 1월2일, 이재명은 부산 지역 공개 행사 중 흉기 피습을 당하기도 했다. 목숨까지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도 빠르게 회복하고 특유의 투지로 버틴 그는 다시 국민 앞에 섰다.
2024년 4월10일 치러진 제22대 총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도록 이끈 이재명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와 위증교사 혐의 사건 재판을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자신만의 정치를 계속했다. 윤석열의 12·3 내란 계엄 이후 이재명은 다시 한 번 정치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이했다. 2025년 4월4일 헌법재판소가 윤석열을 파면하자 4월10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으며, 4월27일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득표율 89.77%를 기록하며 최종 후보로 선출됐다.
대선 국면 여론조사에서 단 한 차례도 대선 후보 지지율 1위를 놓치지 않으며 마침내 국민의 선택을 받아 제21대 대한민국 대통령이 됐다. 대통령 선거 기간 막바지에는 보수 성향이 강한 지역에서도 ‘이재명을 믿어 보자’는 분위기가 감지될 정도였다.
2025년 6월4일 새벽 1시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당선이 확실시되자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설치된 축하무대에 올라 지지자들에게 당선 인사를 했다. 이종근 선임기자
“국민을 통합시키는 대통령의 책임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어우러져 함께 사는, 공평하게 기회를 함께 누리는 억강부약의 대동세상을 함께 만들어가면 좋겠습니다.”
이재명은 2025년 6월4일 새벽 여의도 연설에서 지지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의 정치 인생처럼 대한민국의 현실도 녹록하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예측하기 힘든 관세 정책으로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증폭되고, 12·3 내란 계엄 이후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1%도 되지 않는 상황이다.
자신에게 쏟아진 많은 견제와 비판을 이겨내고 대통령이 된 것처럼 이재명 정부는 시민들에게 희망과 극복의 서사를 보여줄 수 있을까. 다시 시민의 시간이다. 이재명 정부를 응원하는 동시에 감시해야 할 시민의 시간.
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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