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지사 vs 경기지사' 승부서 대선 삼수 이재명, 재수 김문수에 낙승
민선 1기부터 29년간 6명 고배 흑역사 탈출…경기도 위상 재정립 계기
(수원=연합뉴스) 최찬흥 기자 = 3일 치러진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당선이 확실시되며 경기도지사 출신의 첫 대통령에 오르게 됐다.
손 흔드는 이재명 후보 (인천=연합뉴스) 임순석 기자 =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이 확실시되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3일 밤 인천 계양구 자택을 나선 뒤 주민과 지지자들을 향해 인사하며 이동하고 있다. 2025.6.4 soonseok02@yna.co.kr
이에 따라 민선 1기부터 모두 6명의 전현직 경기도지사가 대권에 도전하며 제기됐던 '무덤론'이 이번 대선 결과로 '대망론'으로 반전되며 경기도와 경기지사의 위상이 재정립되는 계기가 마련됐다는 평가다.
특히 이번 대선은 2위를 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 역시 경기도지사 출신이어서 '경기지사 vs 경기지사' 경쟁 구도로 관심을 끌기도 했다.
이 후보는 대권 도전 삼수, 김 후보는 재수였다.
이 후보와 김 후보는 이번 선거운동 기간 6~8회씩 경기도를 방문하며 '정치적 고향' 공략에 공을 들였다.
유세의 상당 일정을 경기지역에 할애하며 도지사 시절 치적과 주요 공약을 내세웠고 결과적으로 민심은 이 후보를 선택했다.
경기지사는 인구 1천400여만명의 전국 최대 지자체를 이끄는 자리로 취임과 함께 대권 후보 반열에 오른다.
그러나 이전까지는 임창열 전 지사를 제외한 전현직 민선 경기지사 6명이 모두 지사직을 발판으로 대권 도전에 나섰다가 줄줄이 고배를 마시며 과거 경기 도백(道伯)의 대권 도전사는 흑역사로 점철됐다.
이재명-김문수 (의왕=연합뉴스) 홍기원 기자 = 제21대 대통령선거를 하루 앞둔 2일 경기도 의왕시 한 건물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다. 2025.6.2 xanadu@yna.co.kr
이명박 전 대통령을 배출한 서울시장 자리와 비교되며 '경기도지사는 대선주자의 무덤'이라는 징크스도 이어졌다.
1995년 초대 민선 지사로 당선된 이인제(29대) 전 지사는 1997년 15대 대선 때 신한국당 경선에서 이회창 후보에게 밀려 2위로 석패하자 같은 해 지사직을 사퇴하고 국민신당을 창당해 본선에 나섰지만 3위에 그쳤다.
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겨 치른 2002년 16대 대선 때에는 민주당 경선에서 노무현 돌풍에 또다시 무릎을 꿇은 뒤 탈당해 자민련에 입당하기도 했다.
그는 2007년 17대 대선에선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본선에 나섰지만 6위에 그쳤고, 2017년 19대 대선에선 자유한국당 후보에 도전했지만, 홍준표·김진태 후보에 밀려 3위에 그치며 경선 문턱도 넘지 못했다.
보건복지부 장관과 3선 국회의원을 지낸 손학규(31대) 전 지사의 경우 당적을 변경하고 정계 은퇴 선언을 번복하며 당내 경선만 3번 도전했다가 낙선하고 대권에서 멀어졌다.
한나라당을 탈당해 17대·18대 대선에서 민주당계 정당의 경선에 나섰지만 모두 2위에 그쳤고, 19대 대선에선 국민의당으로 둥지를 옮겨 경선에 다시 도전했지만 안철수 후보에게 져 탈락했다.
손 전 지사는 2021년 20대 대선에 무소속으로 네 번째 대권 도전을 선언했다가 두 달 만에 후보직을 사퇴하고 뜻을 접었다.
노동운동가 출신으로 3선 국회의원을 지낸 김문수(32~33대) 전 지사는 18대 대선 때 새누리당 경선에 나섰지만, 박근혜 후보가 압승하며 본선 진출을 하지 못했다.
김 전 지사는 19~20대를 뛰어넘어 우여곡절 끝에 21대 대선 국민의힘 후보로 선출돼 본선에 나섰지만, 이 당선인을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5선 국회의원 출신의 한나라당 소장파 그룹 '남원정' 3인방의 한명이었던 남경필(34대) 전 지사 역시 19대 대선을 앞두고 탈당한 뒤 2017년 바른정당 후보 경선에 나섰으나 유승민 후보에 밀려 본선 무대를 밟아보지 못했다.
남 전 지사의 뒤를 이어 경기지사가 된 이 후보(35대)도 재선 성남시장으로 2017년 19대 대선 경선에 도전해 고배를 마신 뒤 경기지사 시절 20대 대선 본선에 진출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득표율 0.73%포인트 차이로 석패했다.
경제부총리를 지낸 현직 김동연(36대) 지사는 이번 21대 대선 더불어민주당 경선에 도전장을 던졌지만, 이 후보에게 패배하며 후일을 기약하게 됐다.
이인제·손학규·김문수(윗줄), 남경필·이재명·김동연(아랫줄) [연합뉴스 자료사진]
역대 경기도지사들의 대권 도전 흑역사가 이어지며 옛 공관이 자리 잡고 있는 수원시 화서동 팔달산 기슭은 전염병으로 숨진 수많은 원혼이 떠도는 '악지'(惡地)라는 풍수설까지 제기된 적도 있다.
남경필 전 지사는 이런 공관을 게스트하우스 등으로 용도 변경했지만, 이 당선인은 국내외 방문객 접견 등 업무 효율을 이유로 공관을 원상 복구한 바 있다.
이 후보는 경기도지사직을 사퇴한 뒤 지난 20대 대선 유세 과정에서 "왜 경기도가 무덤인가. 본인들이 부족했던 것 아닌가. 경기도가 대권가도의 무덤이 아닌 꽃길임을 증명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후보가 삼수 끝에 대권 도전에 성공함에 따라 그의 말대로 '경기지사 대망론'이 현실화하며 경기지사의 국무회의 배석 문제 등 위상 논란도 재점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무회의 규정 제8조 1항(배석 등)에는 서울시장이 배석자로 명시돼 있으나 다른 광역단체장은 배석자로 명시돼 있지 않다. 다만 의장(대통령)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중요 직위에 있는 공무원을 배석하게 할 수 있다.
의전상 서울시장은 장관급이지만 경기지사는 차관급 예우에 그치고 있다.
경기도 관계자는 "이 후보는 도지사 재임 시절 경기지사의 국무회의 배석을 건의했고 김동연 현 지사도 마찬가지"라며 "대통령을 배출한 최대 지자체, 작은 대한민국인 경기도 위상 격상을 진지하게 생각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ch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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