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정부 정책 제언-신성철 전 KAIST 총장
과학기술 분야에서 5년은 짧아
정권 초월하는 장기적 정책 필요
前정부 R&D예산 삭감 큰 실책
먹거리발굴·과기협력은 계승을
신성철 전 KAIST 총장 2025.4.25 [이승환기자]
신성철 전 KAIST 총장이 4일 출범하는 새 정부를 향해 “정말 큰 과제를 떠안게 됐다”며 걱정과 기대를 동시에 표했다. 과학기술을 둘러싼 글로벌 패권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새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이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는 최근 매일경제와 인터뷰하면서 “잘못된 과학 정책은 국가를 10년씩 후퇴시킨다.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장기적 안목으로 정책을 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전 총장은 과학기술 연구와 교육현장, 과학기술 외교 정책까지 두루 경험한 전문가다. 세계적인 물리학자로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과 KAIST 총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협력대사를 지냈다. 지금 한국은 삼중고에 빠져 있다. 연구개발(R&D) 경쟁력은 계속 떨어지고, 이공계 인재는 해외나 의대로 빠지고 있으며, 미국이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해 과학기술 외교에 빨간불이 켜지기도 했다.
잘나가던 한국 과학기술은 어쩌다 위기를 맞았을까. 신 전 총장은 “과학기술 정책을 정권 입맛대로 바꾸는 정치권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권 5년은 과학기술 분야 성과가 나오기에는 짧은 시간”이라며 “정권을 초월해 집행되는 장기 공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 전 총장은 “미국과 중국은 정치 체제는 다르지만 장기적인 과학기술 정책을 편다는 점에서 같다”고 말했다. 미국은 여야의 정치 공방이 심하지만, 과학기술 앞에서는 여야가 없다. 도널드 트럼프 1기와 조 바이든 행정부가 모두 글로벌 기술 리더십을 유지하기 위해 첨단기술 육성과 보호, 중국 견제를 일관되게 추진한 것이 대표적이다.
중국은 장쩌민, 후진타오, 시진핑 등 정치 지도자가 대체로 이공계 출신이고, 과학기술 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인다. 주요 분야는 ‘국가 핵심 연구소’로 지정해 성과가 좋으면 최장 30년간 지원한다. 인재를 끌어모으는 천인계획도 이름을 바꿔가며 수십 년째 계속하고 있다. 신 전 총장은 “중국의 발전이 무섭고 놀랍다”면서 “이처럼 장기적이고도 전폭적인 투자가 중국이 성장한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신 전 총장은 “새 정부도 전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을 무조건 뒤엎지 말고, 꼼꼼하게 검토해 잘한 것은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윤석열 정부는 입맛에 맞는 조언만 들었고 R&D 예산 삭감 등 과오가 분명하다. 대부분의 성실한 과학자를 모욕했다”면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할 부분이 없지 않다”고 덧붙였다.
그는 윤 정부에 대해 12대 전략기술, 3대 게임체인저 기술 등 미래 먹거리를 찾아나선 점, 글로벌 협력 중요성을 인식한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한국의 추격자 전략은 수명을 다했고, 앞으로는 과학강국과 상호보완적인 협력을 하며 도전적인 연구에 집중해야 한다는 진단이다. 그는 “최고이거나 최초가 아니면 의미가 없다”며 “세계 과학에 기여하려면 협업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특히 지난해 11월까지 과학기술협력대사를 지낸 신 전 총장은 “새 정부는 과학기술 외교와 협력을 더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윤 정부가 중요성을 인식해 방향은 잘 잡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콘텐츠’다. 그는 “협력을 위한 협력을 하면 돈만 쓰게 된다”며 “어떤 분야에서 무엇을 협력하고 싶은지,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잘 분석한 후에 과학기술 협력을 추진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과학강국에 한국과 협력해야 할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전반적인 과학기술 외교의 큰 틀을 만드는 것도 새 정부 과제다. 이에 신 전 총장은 ‘글로벌 연구 협력 지도’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내놨다. 연구자들이 해외 연구자들과 협력하고 싶어도 어디에 누가 있는지를 몰라 어려움을 겪거나, 비체계적으로 알음알음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신 전 총장은 “지금까지 우리는 너무 미국 중심으로 과학기술 외교를 펼쳐왔다”며 “기초과학이 강한 유럽과도 협력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신 전 총장은 세계 무대에서 한국이 지닌 독특한 위상을 인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선진국은 한국을 파트너로 인식하고, 개발도상국은 롤모델로 인식하기 때문에 이 특징을 잘 살린다면 과학기술을 이용해 세계 무대에서 영향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학기술 인재 역시 새 정부가 떠안은 막중한 과제다. 우수한 이공계 인재 유출이 계속해서 심해지고 있다. 윤 정부 역시 이공계 인재 양성과 유입을 강조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신 전 총장은 “오늘날 나라를 지키는 건 과학자”라며 “50만명의 과학기술 용사가 있으면 한국에도 희망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차미영 막스플랑크연구소 단장 이야기를 했다. KAIST 교수였던 차 단장은 지난해 한국인 최초 막스플랑크연구소 단장에 올랐다. 세계 최고 수준의 막스플랑크연구소는 연구자 정년을 67세까지 보장하며, 과제 제안서 없이도 매년 20억원의 연구비를 제공한다.
신 전 총장은 “과학자가 자존감과 명예를 갖도록 파격적인 처우와 보상을 해야 한다”며 “우리도 뛰어난 연구자가 놀랄 정도의 제안을 해야 인재를 모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매주 일요일 밤 0시에 랭킹을 초기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