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평등의 약속들] ⑤ 성평등 전담부처 강화
지난 2022년 10월15일 오후 서울 종각역 앞에서 전국 195개 여성·노동·시민사회 단체 회원들이 정부의 여성가족부 폐지안을 규탄하는 집중집회를 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기호 ①이회창(한나라당) ②김대중(새정치국민회의) ③이인제(국민신당)
지난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에 나선 세 사람 가운데 ‘여성부 신설’에 반대한 후보는 누구일까요?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찍으신 분들이 많을 텐데요. 틀렸습니다. 기호 1·2·3번 모두 여성부 신설을 약속했죠. 대선 후보 티브이(TV) 토론회가 처음 시작된 해가 바로 1997년인데요. 당시 여성신문과 전국 88개 여성단체는 각 당 후보를 불러 여성정책만 놓고 토론을 했고 이 장면은 한국방송(KBS)을 통해 생방송되기도 합니다. 당시 한국에서 여성 정책을 관할하던 정무 제2장관실은 법을 만들 수도, 다른 부처를 움직일 권한도 없었는데요. 정부 정책 전반에 걸쳐 성평등 추진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커진 배경입니다. 1995년 베이징 유엔세계여성대회 이후 각 국가에선 정부 정책이 여성과 남성에게 어떻게 다른 영향을 미치는지 지속해서 점검해 성불평등 구조를 변화시키자는 흐름이 나타나기도 했고요.
■ 안착 못하는 사이 폐지론
성평등 정책에 적극적이었다는 평가를 듣는 김대중 정부지만, 출범 뒤 곧바로 여성부를 만든 건 아닙니다. 1998년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를 설치하지만 정무 제2장관실과 비슷한 한계가 있다는 평가에 따라 2001년 여성부가 탄생합니다. 그러나 출범 10년 사이 보육·가족 업무를 맡아 여성가족부로 개편(2005년) → 이명박 정부의 통폐합 시도 뒤 여성부로 축소(2008년) → 청소년·가족 업무 포함 여성가족부(2010년)로 바뀌는 등 부침을 겪습니다. 그러다 ‘촛불’이 연 2017년 대선에서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여가부를 폐지하고, 국가 양성평등위원회를 만들어 성평등 컨트롤타워로 삼자고 주장했는데요. 반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여가부 강화와 함께 대통령 직속 성평등위원회를 만들자는 입장이었습니다. 그 뒤 대통령 직속 성평등위는 설치되지 않은 채 2022년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가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여가부 폐지’를 선언하기에 이릅니다.
지난 20대 대선에서 윤석열 당시 후보는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한겨레 자료사진
■ 이번 대선에선?
성평등 전담부처로서 여가부 기능 강화에 가장 적극적인 이는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입니다. 여가부 이름을 성평등부로 바꾸고, 성평등부총리를 신설하겠다고 약속했지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도 여가부를 성평등가족부로 개편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여가부를 없애야 한다는 것도 아니고, 여가부를 무조건 확대하자는 것도 아니다”라는 입장을 보여왔습니다. 지난달 27일 대선후보 3차 티브이(TV) 토론회에서 “전국 시민을 상대로 언어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비판을 받는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일찌감치 여가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죠.
■ 왜 필요한가
어쩌다 청소년 보호 업무를 맡게 돼 ‘셧다운제’(자정부터 오전 6시까지 16살 미만 청소년 게임 접속 금지, 2021년 폐지됨)로 악명 높은 여가부입니다만, 국제사회에 내미는 영문명엔 ‘성평등’(Ministry of Gender Equality and Family)이 강조돼 있습니다. 성별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동등한 권리와 기회를 갖는 성평등은 곧, 민주주의 강화이기도 합니다. 오이시디(OECD)는 민주주의 강화뿐 아니라 경제 성장을 위한 우선 과제로 성평등을 꼽고 있는데요. 2023년 보고서에서 “노동 참여율과 노동시간 성별 격차를 해소하면 오이시디 국가들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약 0.23%포인트 상승해 2060년까지 국내총생산(GDP)은 9.2% 증가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일부 정치권과 언론은 성평등을 ‘남성 것을 빼앗아 여성에게 준다는 식’의 갈라치기를 강화해 왔습니다. 그러나 자녀를 돌보기 어려운 장시간 노동 구조, 결혼과 출산을 한 여성이 경험하는 불이익, 남성이 생계 부양을 해야 하는 가족 체계가 굳건한 상황에선 여성도 남성도 행복하기 어렵습니다. 성평등 강화와 남성의 가족 내 돌봄 참여를 지원하는 ‘젠더 관점’ 정책이 있어야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까닭이지요.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는 지난해 6월 한국 정부에 “여가부의 인적, 기술적, 재정적 자원을 크게 늘릴 것”을 권고했습니다. 국가 성평등 정책 전담부처로서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라는 취지인데요. 그러니까 ‘진짜’ 국가 성평등 추진 컨트롤타워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입니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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