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 카페의 아이스 아메리카노. 김광우 기자.
[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위스키 가격이랑 비슷한데?”
불과 25년 후 미래.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값은 2만원대까지 치솟는다. 돈이 있다고 사먹을 수도 없다. 재료 부족으로 ‘품절’되기 일쑤기 때문.
이뿐만 아니다. 와인, 초콜릿, 전복 등 우리에 익숙한 먹을거리들도 곧 자취를 감춘다. 봄철에만 느끼는 시원한 바람, 여름철 야외에서 즐기는 축제 등 소중한 일상도 사라진다.
이 모든 게 ‘기후변화’가 불러오고 있는 현실. 불과 25년 후 미래, 2050년에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다.
지난 주말, 서울 광화문에 이같은 ‘2050년의 미래’를 구현한 행사가 열렸다. 미래를 엿본 시민들은 모두 “일상을 지키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일 서울 광화문 서울마당에서 열린 ‘위어스(WEarth) 지구의 목소리’ 캠페인에 참여하기 위해 시민들이 줄 서 있다. 김광우 기자.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Greenpeace)는 지난 1일 서울 광화문 서울마당에서 시민 참여 행사 ‘위어스(WEarth) 지구의 목소리’를 개최했다. 기후변화로 위협받는 일상을 체험하고, 변화가 필요하다는 뜻을 모으자는 취지의 행사다.
이날 오후 2시 방문한 서울마당은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행사 참여자들로 붐볐다. 총 600여명에 달한 참여자들은 모자나 양산으로 뜨거운 햇볕을 가린 채, 각 부스에 설치된 이벤트에 열중하고 있었다.
1일 서울 광화문 서울마당에서 열린 ‘위어스(WEarth) 지구의 목소리’ 캠페인 ‘2050 스토어’ 부스에 기후변화로 사라질 것들이 전시돼 있다. 김광우 기자.
가장 많은 시민이 몰린 곳은 ‘2050 스토어’. 기후위기로 인해 익숙한 물품을 구입할 수 없게 된 미래의 일상을 체험하는 곳이었다. 해당 부스에서는 쉽게 구할 수 있는 온갖 물품에 ‘품절(Sold out)’ 표시가 부착돼 있었다.
부스에서는 그린피스 캠페이너들이 아메리카노, 초콜릿, 사과, 오징어, 전복, 와인 등 기후변화로 사라지는 대표적인 먹을거리들을 소개했다. 특히 아메리카노 가격이 한 잔에 1~2만원대 위스키 가격까지 오를 수 있다는 얘기가 시작되자, 시민들의 탄식이 들려왔다.
1일 서울 광화문 서울마당에서 열린 ‘위어스(WEarth) 지구의 목소리’ 캠페인 ‘2050 스토어’ 부스에서 시민들이 설명을 듣고 있다. 김광우 기자.
그린피스 ‘2050 스토어’ 관계자는 “원두는 기온의 변화에 특히 예민한 작물인 만큼, 각종 이상기후와 기온 상승의 영향으로 생산이 어려워지고 있다”며 “지금도 커피값 상승이 지속되고 있어, 커피를 일상처럼 마시는 게 힘들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국제 기준인 ICE 뉴욕 선물시장에서 파운드당 아라비카 커피 가격은 지난달 기준 370센트까지 오르며, 1년 전보다 두 배가량 상승했다. 이에 국내 인스턴트커피, 카페 프랜차이즈 등에서도 상품 가격을 인상했다.
1일 서울 광화문 서울마당에서 열린 ‘위어스(WEarth) 지구의 목소리’ 캠페인 ‘2050 스토어’ 부스에 설치된 설명문. 김광우 기자.
커피뿐만 아니다. 와인 또한 사라질 수 있다는 얘기에 시민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미국 국립과학원회보에 따르면 2050년까지 주요 와인 생산 지역의 포도 재배 면적이 최대 73%까지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기후변화의 영향을 크게 받은 먹을거리도 눈에 띄었다. 우리나라 동해안에서 잡히던 오징어 수확량은 지난 20년간 약 16분의 1로 줄어들며, ‘금(金)징어’ 칭호를 획득했다. 그린피스는 “2050년에는 박물관에서 오징어를 봐야 할 지도 모른다”고 설명했다.
1일 서울 광화문 서울마당에서 열린 ‘위어스(WEarth) 지구의 목소리’ 캠페인 ‘2050 스토어’ 부스에 설치된 설명문. 김광우 기자.
먹을거리에 그치지 않는다. 기후변화는 소중한 일상마저 위협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뮤직 페스티벌’. 2050년까지 기온 상승이 이어질 경우, 폭염으로 인해 여름철 야외에서 뮤직 페스티벌을 개최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게 그린피스 측의 전망이다.
이날 참여자들은 ‘2050 스토어’에 방문해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 각자 반드시 지키고 싶은 일상들을 종이에 적어 한쪽 벽에 붙이는 ‘지키고 싶은 문장들’ 이벤트에 참여했다.
1일 서울 광화문 서울마당에서 열린 ‘위어스(WEarth) 지구의 목소리’ 캠페인 한쪽 벽에 시민들이 적은 ‘지키고 싶은 문장들’이 붙어 있다. 김광우 기자.
참여자들은 ‘따뜻한 봄과 시원한 가을’, ‘미세플라스틱을 잔뜩 먹은 생선’, ‘사랑하는 사람과 나눠 먹는 달콤한 초콜릿’, ‘꿀벌들이 꽃 속에서 날아다니는 모습’, ‘좋아하는 사과’, ‘아름답게 변하는 사계절’ 등의 메시지를 남겼다.
지구가 보내는 신호를 담은 문장을 소리 내어 읽고 이를 녹음하는 이벤트도 진행됐다. 기후위기 대응의 절실함을 호소하고, 변화를 요구하기 위한 취지라는 게 그린피스 측의 설명이다. 이같이 시민들의 목소리로 만들어진 ‘지구의 목소리’는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그린피스 캠페인에 활용될 전망이다.
1일 서울 광화문 서울마당에서 열린 ‘위어스(WEarth) 지구의 목소리’ 캠페인에 마련된 간이 카페. 재사용컵을 이용해 음료를 제공하고 있다. 김광우 기자.
이날 친구를 따라 행사에 참여했다는 직장인 박경원(30) 씨는 “평소 기후변화를 직접적으로 체감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지 않았었는데, 오늘 얘기를 듣고 보니 계속해서 변화가 일어나는 데 이를 별생각 없이 아들였던 것뿐이었다”며 “일상에서 사라지는 것들에 조금 더 관심을 기울여야겠다”고 말했다.
스스로의 인식 변화를 넘어, 정부의 정책 변화를 요구하는 시민들도 적지 않았다. 일상을 지키기 위해 더 적극적인 기후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1일 서울 광화문 서울마당에서 열린 ‘위어스(WEarth) 지구의 목소리’ 캠페인에 마련된 간이 이벤트 부스에 사람들이 몰려 있다. 김광우 기자.
신민주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캠페이너는 “지구의 한계를 고려하지 않는 기존 성장주의에서 탈피해 지구와 사람이 모두 행복할 수 있는 방향으로 국가 정책과 경제 목표를 바꿔야 한다”며 “기후·생태계 파괴가 아니라 재생에너지 전환, 기후재난 대응, 생태계 보호와 회복, 시민들의 복지 향상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그린피스는 사람과 자연 모두의 행복을 위한 지속 가능한 경제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지구를 고갈시키는 양적 성장 중심의 기존 체계에서 벗어나, 모두가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겠다는 취지다.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매주 일요일 밤 0시에 랭킹을 초기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