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여성혐오성 저질발언" 동아일보 "원색적 표현" 비판했지만 이후 '젓가락 발언'으로 표기...문화일보 '젓가락 행진곡'이라며 '젓가락' 활용한 또 다른 비유 쓰기도
[미디어오늘 장슬기 기자]
▲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 사진=개혁신당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이 TV토론에서 한 문제의 발언은 명백한 '여성혐오' 발언이자 '언어 성폭력'이다. 누구나 볼 수 있는 지상파 대선 후보 토론에서 '전파를 타선 안 될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이 후보 발언과 이후 파장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언론의 판단도 중요하다.
보수 매체 중에서 중앙일보는 가장 비판적으로 이번 발언을 평가했다. 지난달 29일 사설 <이준석의 여성 혐오성 저질 발언, 제정신인가>를 보면 이 신문은 “여성 혐오성 발언”, “입에 담기 부끄러울 정도로 저속한 표현을 쓴 게 문제”, “여성의 특정 신체부위를 언급하며 성폭력의 의미를 담은 표현”, “시청자들로선 귀를 의심하게 할 정도”, “최소한의 품위마저 잃은 발언”이라고 표현했다. 다만 이후 기사에서는 '젓가락 발언'이라고 지칭했다.
동아일보도 지난달 29일자 사설 <어른들 보기도 창피했던 TV토론…아이들이 볼까 두려웠다>에서 “여성 신체에 대한 폭력까지 서슴없이 상대 후보를 공격하는 소재로 이용했다”며 “프라임 시간대에 아이들 보여주기 부끄러운 원색적 표현”이라고 규정했다. 이후 기사에선 역시 '이준석 젓가락 발언'이라고 표기했다.
▲ 5월29일 중앙일보 사설
보수매체에서 이 후보 발언의 일부인 젓가락을 따서 해당 발언을 표현한 것과 달리 진보 성향 매체에서는 이 후보 발언의 성격을 규정했다. 한겨레가 '언어 성폭력'(29일자 사설), '여성 혐오 발언'(30일 사설), '폭력 단어'(30일자 기사), 경향신문이 '여성혐오 발언'(29일자 사설), '성폭력 발언'(29일자 기사) 등으로 표기했다.
조선일보는 이 후보의 발언을 '젓가락 발언'이라고 표기하면서 이 후보 비판보다는 더불어민주당 비판에 힘을 실었다. 지난달 29일 <커지는 '젓가락 발언' 논란…역공받는 이준석>이란 기사에서 이 후보에 대한 거센 비판에 대해 전하며 이 후보의 해명을 함께 실었다. 기사 끝에는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의 “적나라한 표현을 쓴 것은 이슈 상업주의에 편승한 것 아니냐는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의 “TV토론의 품격은 떨어진 셈” 등의 코멘트가 실렸다. 같은날 <시민한테 항의받는 이준석 후보>란 사진기사도 실었다.
하지만 이후에는 이 후보 발언에 대한 비판보다는 이 후보의 주장과 민주당 반응을 비판적으로 다뤘다. 다음날인 30일자 기사 <이재명 아들 언행 문제 이슈화 막으려는 민주당>과 사설 <민주당의 너무나 노골적인 거짓말>에서 이재명 후보 아들 발언과 이를 '거짓'이라고 주장하는 민주당을 비판했다. 김어준씨 유튜브 방송에 출연한 유시민씨가 설난영씨에 대해 내놓은 비하발언에 대한 정치부 기자의 기자수첩(31일자)도 실었다. 이준석 후보 발언에 대해 논평을 최소화한 것과는 대비된 보도행태다.
이번 대선기간 이준석 후보를 우호적으로 보도한 곳중 하나는 문화일보다. 2일 <'검색량 최대' 찍은 이준석, 이재명·김문수는 하락세> 등 이준석 후보에게 유리한 사실관계를 강조하는 보도를 비롯해 <경제·안보 위중한데 '내란 vs 독재' 집착한 우물안 대선>(28일자 사설), <'3자구도 대선' 역대 다섯 차례 14·17대 선거도 '1강 1중 1약'>처럼 거대 양당을 비판하면서 '3자 구도'를 강조하는 보도도 꾸준히 나왔다. <“단일화 키, 이준석이 쥐어…국힘, 보수 비전 제시해야”>(5월26일), <이준석 “단일화는 '金사퇴'뿐” 국힘 “100% 개방형 여론조사”>(5월26일), <절대권력 우려 커지는데 보수 단일화 노력도 안하나>(5월20일 사설) 등 단일화를 주문하는 내용도 연일 보도했는데 단일화 이슈는 이번 대선 보도를 '3자 구도'로 가져가면서 결과적으로 이준석 후보를 띄우는 역할을 한 프레임이다.
▲ 5월30일 문화일보 기자 칼럼
문화일보는 지난달 30일 <'젓가락 행진곡'>이라는 자사 기자의 칼럼을 실었다. 이 칼럼의 제목은 부적절하다. 이준석 후보의 발언을 직접 연상케하는 비유이기 때문이다. 해당 칼럼은 이재명 후보의 아들 발언과 이준석 후보 발언에 대해 양비론을 펴고 있는데 양비론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비판을 위해 사용한 비유가 부적절하다는 뜻이다. 피해자 입장에서 보면, 이준석 후보의 발언을 활용한 언론의 이러한 비유가 이번 사태를 가볍게 다루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
차별·혐오 발언의 상당수가 부적절한 비유에서 비롯한다는 점을 봐도 굳이 “대선은 '젓가락 행진곡'과 닮았다”, “일정한 템포와 단순한 멜로디로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젓가락 행진곡'은 정해진 처음과 마지막을 제외하곤 수많은 변주가 중간에 이뤄진다”, “이번 대선도 변주에 해당하는 수많은 변곡점이 '젓가락' 이전에 있었다” 등의 표현을 사용해 기자가 이번 대선 국면을 평가해야 했는지 의문이다.
한편 이준석 후보의 '언어 성폭력' 발언 관련 기사는 지면에서 제대로 다루지 않은 채 국민의힘으로 단일화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도하는 곳도 있다. 대구경북 지역일간지 매일신문은 이준석 후보의 여성혐오 발언을 비판하는 기사를 따로 지면에 담지 않았다. 30일에서야 <대선 후반 악재된 이준석 '원색 발언'>에서 뒤늦게 관련 내용을 다뤘다.
대신 단일화에 응하지 않는 점을 주로 비판하고 있다. TV토론 다음날인 지난달 28일 1면 기사 <굳어지는 '3자 구도'…대구경북의 선택은?>의 부제에서 “이준석 '단일화 없다' 확고…오늘이 데드라인”이라고 보도했다. 대선 전날인 2일자 1면 <거대 권력이냐, 상호 견제냐…민심은 누구 손 들까>를 봐도 이재명 후보가 당선되면 거대권력을 만드는 것이고 이를 견제하기 위해 2위이자 원내 2당인 김문수 후보를 뽑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같은날 사설 <'1인 천하 세상' 두렵다면서도 완주하겠다는 이준석의 모순>에서도 “보수 우파가 분열로 패한다면 이준석 후보가 10%, 15% 득표를 하더라도 이대남의 분노, 청년 정치의 희망이 반영될 수는 없지 않나”라며 노골적으로 이준석 후보의 완주를 비판했다. 사전투표까지 끝난 상황에서도 소수정당 후보에게 굴복을 요구하는 메시지로 보일 수 있다. 이는 매일신문 의도와 다르게 거대 양당에 차별받는 피해자로서 이준석의 위치를 만들어주고 '이준석의 언어성폭력 사태'를 가릴 우려가 있다.
▲ 2일 세계일보 칼럼
일부 언론에선 이준석 후보의 발언이 부적절하다면서도 정치개혁의 한 축으로 성장하길 기대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2일 세계일보에는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의 칼럼 <이준석 실언과 퇴출몰이>가 실렸는데 구 교수는 “그가 사용한 성적 표현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면서도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그 실수할 자유를 보장하는 사회일수록 개인은 성장하고 공동체는 성숙한다는 사실 또한 잊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범진보 세력이 의원직 제명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민주주의 원칙에 역행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다수 시민이 실수가 아닌 사전에 계획한 성폭력 발언이라고 지적하고 있는데도 '실수'이니 넘어가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이다. 그러면서 구 교수는 “매일 1000명이 넘는 신규 당원이 유입되고 있다는 사실은 젊은 세대의 정치개혁에 대한 요구가 얼마나 간절한지를 보여준다”고 했다. 또한 구 교수는 “이후 이들(개혁신당)은 계속 결집할까 아니면 흩어질까. 나는 전자이길 바란다”며 “프랑스 마크롱이 단기 승부를 넘어 유럽 정당 지형을 재편했듯, 한국 정치에도 변화의 바람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믿음. 그 믿음이 꺼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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