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공약에 ‘성분명 처방 대체조제 추진’ 포함
약사계 “수급 불안정, 리베이트 해소 효과”
의료계 “같은 성분이라도 제제 따라 효과 달라”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인 지난 2022년 1월 서울 중구의 한 약국에 해열진통제인 타이레놀 품절 안내문이 붙어있다./뉴스1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당시 해열진통제 ‘타이레놀’이 품절 대란을 일으켰다. 백신 접종 후 몸살 환자가 늘면서 병원 처방이 늘고 약국·편의점 수요도 급증한 탓이었다. 같은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의 다른 약도 있었지만 의사들이 타이레놀을 처방해 사람들이 그쪽으로만 몰렸다.
같은 성분인데 한 약품에만 수요가 몰리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성분명 처방’ 도입하자는 주장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공약에 ‘필수의약품에 대한 성분명 처방 등 대체조제 활성화 추진’ 내용을 담으면서 논란이 촉발됐다. 약사들은 반겼지만 의료계는 환자 안전과 진료권 침해를 우려하며 반발하고 있다.
타이레놀은 미국 존슨앤드존슨(J&J)의 자회사 얀센의 해열진통제 브랜드로, 국내에서 1985년부터 판매됐다. 아세트아미노펜 성분 의약품 가운데 가장 유명하다. 같은 성분 의약품은 70종에 달했지만, 코로나19 대유행기에 타이레놀 수급에만 문제가 있었다.
성분명 처방은 말 그대로 의사가 약의 상품명 대신 성분명으로 처방하는 제도다. 이를테면 처방전에 타이레놀 대신 아세트아미노펜을 쓰는 방식이다. 약사계는 성분명 처방 도입을 오래 전부터 요구해 왔다. 약사들은 성분명 처방 제도가 도입되면 약품 수급 상황에 맞게 조제할 수 있어 특정 약품 쏠림과 품절 대란을 막을 수 있다고 본다.
지금도 같은 성분의 다른 약으로 대체 조제하기가 불가능한 건 아니다. 현행법상 처방전에 기재된 의약품이 약국에 없으면 약사가 예외적으로 성분·함량·제형이 같은 다른 의약품으로 대체 조제할 수 있다.
다만 이때 의사에게 전화·팩스 등을 통해 대체 조제 사실을 통보해야 한다. 팩스가 없거나 통화 연결이 안 돼 통보하지 못하면 위법에 해당해, 약국은 행정처분 또는 업무정지 등 제재를 받는다. 낡고 모호한 통보 방식에 대한 지적이 잇따르자, 보건복지부가 지난 2월부터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업무포털 시스템으로 통보하도록 했다.
그럼에도 약사들은 대체 조제를 꺼린다. 의사가 대체 조제 사실을 알면 해당 약국에 불이익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이다. 서울 강남구 약국의 한 약사는 “단지 근처에 위치해 동네 주민들이 고객인데, 대체 조제를 했다는 이유로 병·의원이 환자들에게 특정 약국에 대한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면 영업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가별 성분명·제품명에 대한 규정./박혜경 차의과대 임상약학대학원 교수
약사계는 완전한 성분명 처방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면 의사들이 제약사들로부터 약품 채택 대가로 금품을 받는 리베이트를 근절하는 데에도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대한약사회는 갑자기 성분명만으로 처방하면 의료 현장에 혼란이 올 수도 있다는 점에서 상품명 대신 회사 이름을 붙인 성분명으로 처방하자고 주장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1953년 보건의료인과 환자가 의약품의 성분을 잘 구별할 수 있도록 개발한 ‘국제일반명(INN·International Nonproprietary Name)’을 제안했다. 의약품을 개발한 제약사명에 성분명을 붙이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타이레놀의 INN은 ‘얀센아세트아미노펜’이다. 미국·영국·프랑스·캐나다·일본 등이 이미 INN 체계를 활용 중이다. 복지부도 INN 도입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성분명 처방에 대해 의료계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의사들은 성분명 처방이 ‘과학적 진료행위에 대한 침해’라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약 처방은 단순히 성분명을 나열하는 행위가 아니다”며 “환자의 병력, 복용 중인 다른 약물, 부작용 가능성, 흡수율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의학적 판단에 따라 최적의 약제를 선택하는 전문 영역”이라고 주장했다.
김성근 의협 대변인은 “같은 성분이라고 해도 제제에 따라 약동학적 특성이나 임상 반응이 다를 수 있어, 의사의 판단 없이 임의로 대체될 경우 환자 안전에 심각한 위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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