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 말 사업 참여 의향서 100여곳 제출… 본입찰선 응찰 사업자 無
정부 지분 51% 소유 조건에 응찰 포기... “국유화 기업 경영 참여하는 격” 비판도
시장성 검증 필요한 국산 NPU 50% 사용 조건도 부담
정부 “사업자 선정되면 자유로운 경영 보장... 향후 지분 축소도 협의 가능”
그래픽=정서희
정부가 추진하는 국가AI(인공지능)컴퓨팅 인프라 구축 사업이 응찰 기업이 없어 유찰됐습니다. 당초 100여곳의 기업들이 사업 참여 의향서를 제출하는 등 높은 관심을 보였지만, 입찰 조건에 정부 지분율이 절반을 넘겨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가자 경영 자율성 훼손 우려로 기업들이 등을 돌린 겁니다.
2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국가AI컴퓨팅센터 구축·운용 사업 입찰을 재공고했습니다. 지난달 19일부터 30일까지 12일간 진행된 국가AI컴퓨팅센터 본입찰에 참여한 기업이나 컨소시엄이 단 한 곳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업 참여를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진 삼성SDS·네이버·앨리스그룹 컨소시엄을 포함해, KT·마이크로소프트(MS), SK텔레콤·아마존웹서비스(AWS) 컨소시엄 등도 입찰을 포기했습니다.
국가AI컴퓨팅센터는 국가와 민간이 합작해 구축하는 일종의 AI 데이터센터입니다. 민간 기업과 정부가 각각 2000억원을 출연해 총 4000억원의 출자금으로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해 추진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정책금융 차입금 지원까지 포함하면 총 2조원대 자금을 투입해 1엑사플롭스(1EF) 이상 규모의 국가AI컴퓨팅센터를 구축할 계획입니다. 업계에 따르면 1EF 규모의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려면 그래픽처리장치(GPU) 1만5000장 이상이 필요합니다.
정부는 연내 확보하겠다고 발표한 1만장의 그래픽처리장치(GPU) 중 많은 수량을 우선적으로 국가AI컴퓨팅센터에 공급할 계획입니다. 정책금융 차입금의 금리 역시 업계 최저 수준으로 제공될 것으로 알려져 많은 국내 기업들이 관심을 가졌습니다. 지난 2월 말까지 100여곳의 민간 기업이 과기정통부에 사업 참여 의향서를 제출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GPU 부족을 겪고 있는 기업들 입장에선 돌파구가 되고, 저금리 정책자금 대출까지 받을 수 있는 국가AI컴퓨팅센터 사업의 인기가 갑자기 시들해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업계 안팎에선 SPC 지분을 정부가 51%, 민간 기업이 49% 소유한다는 입찰 조건 때문에 기업들이 응찰을 포기했다는 이야기가 적지 않습니다. 정부가 과반 지분을 보유하면 SPC에 참여한 민간 기업의 자율성을 침해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는 겁니다. IT업계 한 관계자는 “민간 기업이 사업권을 따낸다고 하더라도 정부가 51% 지분을 가지면 경영상 모든 의사 결정과정에서 정부의 눈치를 봐야 하고, 사실상 국유화된 기업 경영에 참여하는 격”이라면서 “2000억원을 출자해야 하는 데다 조 단위 정책자금을 빌려 적자를 내지 않고 운영하려면 신속하고 업황에 맞는 경영 판단이 필요한데, 정부의 최종 승인을 받는 의사결정 구조에선 사업 수익성 확보에도 한계가 있을 것 같다”라고 했습니다.
또다른 IT업계 관계자는 “대학과 연구소,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에 저렴한 가격으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입찰 조건도 발목을 잡고 있다. 정부 입장에선 저렴하게 서비스를 해야 하는 대상을 넓힐려고 할 것”이라며 “사업 자원은 한정돼 있는데 어떻게 서비스를 차등 배분할지를 두고 정부와 마찰이 예상된다”라고 했습니다.
2030년까지 국산 AI 반도체(NPU·신경망처리장치) 비중을 50%까지 높여야 한다는 입찰 조건도 기업들이 응찰을 포기한 이유로 꼽힙니다. 엔비디아, AWS 같은 글로벌 빅테크 기업이 만든 고성능 NPU 대신 최근 실증 사업 단계를 거쳐 막 상용화되기 시작한 국산 NPU를 50%까지 사용하라는 것은 자칫 국가AI컴퓨팅센터 사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겁니다. 데이터센터업체 관계자는 “국산 NPU의 시장성이 검증되지도 않았는데 2030년까지 50% 사용 목표를 박아둔 것은 현실에 맞지 않는 조건”이라며 “국산 NPU 성능이 시장에서 평가를 받고 자연스레 수요가 발생할 때 국산 NPU 사용 비중을 높일 필요가 있다”라고 했습니다.
수천억원의 국민 혈세와 대규모의 정부 정책 차입금이 지원되는 사업이기 때문에 정부가 과반 지분을 확보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민간 기업에 과반 지분을 허용해 전권을 부여할 경우 민간 기업이 국가AI컴퓨팅센터를 자사 기업의 이익을 위해 활용한다고 해도 이를 견제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겁니다. 또한 민간 기업이 수익 극대화를 위해 대학과 연구소,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에 높은 서비스 가격을 책정할 경우 저렴한 공급으로 국내 AI 산학연 생태계를 키우겠다는 당초 계획이 무산될 수 있다는 겁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정부 지분 51% 소유 조건은 정부가 좀 더 과감한 지원책을 강구해 시행할 수 있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정부 개입에 대한 우려가 있는데, 최대한 민간 사업자의 자유로운 경영을 보장할 것”이라며 “향후 사업자가 확정되면 민간 참여사와의 협의를 통해 정부 지분을 줄이는 사항에 대해서도 협의가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50% 이상 국산 NPU 사용 조건에 대해선 “(시장성 검증을 거쳐) 2030년까지 5년간 단계적으로 국산 NPU 비중을 늘리면 된다”면서 “국산 NPU는 해외보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와 전성비(전력 대비 성능)가 좋기 때문에 국가AI컴퓨팅센터 사업 수익성 강화에도 도움이 되고, 국내 AI 반도체 생태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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