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9월 26일 미국에서 역사상 처음 대선 TV토론이 시작됐습니다. 참가자는 당시 현직 부통령 리처드 닉슨과 상원의원 존 F. 케네디. 높은 인지도에 경험과 노련함을 앞세운 닉슨과 정치신인 케네디의 토론 대결 결과는 불 보듯 뻔한 듯했습니다. 하지만 4차례 TV토론이 진행될수록 케네디가 두각을 드러냅니다. 젊고 건강해 보이는 데다 여유롭고 밝은 표정의 케네디와 달리 식은땀까지 흘리며 불안하고 초조해 보이는 닉슨이 비교된 것인데요. 결과적으로 케네디가 49.72%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닉슨을 불과 0.17%포인트 차이로 누르고 최연소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이는 대선 TV토론이 당락을 결정한 가장 극적인 사례로 통합니다. 케네디와 닉슨은 TV 매체가 선거에 미치는 영향력을 보여주며 미디어 정치 시대를 열었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왼쪽부터), 민주노동당 권영국, 국민의힘 김문수, 개혁신당 이준석 대선 후보가 27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정치 분야 TV토론회에 앞서 포즈를 취한 후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김정록 기자
12·3 비상계엄과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그에 따른 조기 대선을 코앞에 둔 한국은 지난달 27일을 마지막으로 3차례에 걸친 대선 TV토론을 마쳤는데요. 케네디와 닉슨의 TV토론만큼이나 ‘두고두고 회자될 만합니다’. 후보들은 정책 검증과 공약 토론은 뒤로 한 채 상대방의 과거 발언과 의혹, 행적을 끌어와 공격하며 분열적 언사를 쏟아내는 데 급급했습니다. 네거티브 공방 속 정치 양극화의 현주소만 고스란히 드러냈죠. ‘최악의 토론회’라는 후기를 남겼습니다.
지난달 27일 마지막 TV토론에서 후보들은 더욱 치열한 네거티브 공방을 벌였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계엄·내란 책임’을 두고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와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에게 공세를 퍼부었는데요. 이재명 후보는 “김문수 후보는 ‘윤석열 아바타’다. 김 후보가 당선되면 ‘상왕 윤석열’이, 즉 반란 수괴가 귀환한다는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공격합니다. 또 비상계엄 해제 표결에 불참한 이준석 후보의 행적을 문제 삼으며 “왜 집까지 가서 샤워하고 옷 갈아입고 너무 여유롭지 않았냐”고 추궁합니다.
김문수 이준석 후보는 이재명 후보의 사법 리스크와 각종 의혹을 추궁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김문수 후보는 이재명 후보 측근들의 잇단 사망 사례를 언급하며 “‘아수라’라는 영화가 성남시를 상징하는 영화다. 더 이상 희생은 없어야 하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사퇴하는 것이 맞지 않느냐”고 쏘아붙였습니다. 이재명 후보의 사법 리스크를 두고 “이재명 후보가 많은 재판을 동시에 받는데, 이 재판을 대통령이 되면 다 중지시키는 재판 중지법을 만들었다”고 비꼬기도 했죠.
이준석 후보는 이재명 후보의 ‘형수 욕설’ 논란을 소환합니다. 이준석 후보는 “올해 4월 고등학교 폭력 사건에서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한 욕설”이라며 여성의 신체와 관련한 표현을 전한 뒤 “냉정하게 말해서 이것 누가 만든 말인가. 이재명 후보 욕설 보고 따라 한 것 아니겠는가”라고 합니다. 이준석 후보는 여성의 신체와 관련한 노골적 표현을 재차 거론하며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에게 “민주노동당 기준으로, (이 표현은) 여성 혐오에 해당하느냐”고 물어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전문가들은 “‘대선 토론을 할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TV토론이었다”고 평가했습니다. 후보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네거티브 공방에만 열을 올리면서 정책에 관한 얘기를 하고 싶은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고 지적합니다. 상대를 깊이 있게 검증하는 토론이 오가지 못하고, 서로의 바닥만 보여줬다고도 했죠. 그러면서 이 같은 ‘진흙탕 토론회’가 반복되지 않도록 TV토론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차재권 부경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번 토론을 ‘쥐구멍에 찾아 들어가고 싶었던 토론’ ‘쓰레기 같은 언어로 점철된 토론’이었다고 비판했습니다. “현재 TV토론은 형식과 내용 모두 문제여서 다 바꿔야 합니다. 일단 토론 기회가 많이 주어져야 하고, 다양한 형식으로 이뤄져야 하는데요. 일대일 토론 방식 등을 도입함과 동시에 토론 횟수도 6번 이상으로 늘려야 합니다. 또 토론회 중간중간 팩트 체크도 진행하고, 사회자 권한을 강화해 문제 발언이 나오면 제지할 수 있어야 하죠. 지금처럼 네거티브 공방에 몰두해서 토론회를 보는 건지, 싸움판을 보는 건지 헷갈리게 만드는 TV토론은 안 하느니만 못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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