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기술 ‘큰손’서 직접 제조 나서
아랍에미리트(UAE)가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업체 TSMC와 손잡고 자국에 반도체 첨단 생산 시설을 건설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30일 블룸버그는 “TSMC가 최근 몇 달 동안 미국 중동 특사인 스티브 위트코프, UAE 투자 기관인 ‘MGX’ 관계자들과 여러 차례 만나 파운드리 건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고 보도했다. 이 프로젝트가 성사될 경우, TSMC는 UAE에 한 달에 웨이퍼 10만장 이상을 처리할 수 있는 기가팹을 건설할 계획이다.
실제 UAE에 대규모 반도체 생산 시설이 들어설지는 불확실하다. 용수와 인력 확보 등 걸림돌이 많다. 그럼에도 이런 보도가 나오는 배경에 단순 투자자를 넘어서 ‘인공지능(AI) 허브’가 되려는 중동 국가들의 야심이 있다는 분석이다. 현재 추진 중인 사우디아라비아의 ‘비전 2030’, UAE의 ‘국가 AI 전략 2031’은 석유 의존 경제에서 벗어나 AI로 고부가가치 산업을 육성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AI 모델 개발, 인프라 건설, 인재 양성까지 모두 중동에서 이뤄질 계획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일 “걸프 국가들이 AI의 수퍼파워(강대국)가 되려는 욕망을 갖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래픽=송윤혜
◇빅테크와 손잡고 인프라 구축
지난달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샘 올트먼 오픈AI CEO, 리사 수 AMD CEO 등 미국 대표 빅테크 관계자들이 대거 동행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순방단이 다녀간 뒤 중동에선 데이터센터 건립 소식이 쏟아져 나왔다.
UAE는 오픈AI, 엔비디아, 오러클, 소프트뱅크 등과 협력해 아부다비에 5GW(기가와트) 규모의 AI 데이터센터를 건설하는 ‘스타게이트 UAE’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5GW는 미국 평균 가정 약 300만 가구의 전력 소비량과 맞먹는 수준이다.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인 공공투자펀드(PIF)가 전액 출자해 만든 AI 기업 ‘휴메인’은 지난달 29일 770억달러를 투입해 2030년까지 1.9GW의 데이터센터 용량을 구축하고 2034년까지 6.6GW로 확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데이터센터 사업을 위해 휴메인은 오픈AI, 일론 머스크의 xAI, 벤처캐피털 대기업 안드레센 호로위츠와 협상을 진행 중이다. 테크 업계 관계자는 “최근 중동은 해외 AI 기업과 합작 등을 통해 자체 스타트업을 육성 중”이라며 “향후 중동형 AI가 나올 수 있다”고 했다.
◇중동 AI 전문 인력 양성
중동이 AI 생태계 강국을 꿈꾸는 것은 풍부한 전력 때문이다. 석유뿐 아니라 태양광 등으로 전 세계에서 전기 요금이 가장 저렴하다. FT는 “중동은 더운 기후 때문에 데이터센터에서 발생하는 열을 관리하기 어려운 환경이지만, 풍부한 전기가 이를 상쇄한다”고 보도했다.
중동은 AI에 필수적인 전문 인력 확보를 위해서도 팔을 걷었다. UAE는 2027년까지 100만 AI 인재 양성을 목표로 세우고, 아부다비에 모하메드 빈 자이드 인공지능 대학교(MBZUAI)를 세웠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스탠퍼드 대학교, 카네기 멜런 대학교 등과 협력하여 AI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AI 아카데미를 설립했다. 2030년까지 2만명의 자국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이 목표다.
또 낮은 세금을 앞세워 해외 인력을 유치하고 있다. OECD가 구인구직 플랫폼 링크트인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2019년부터 2024년까지 AI 기술을 보유한 인재의 이주 규모에서 UAE는 세계에서 셋째로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중동이 AI 허브가 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미·중 관계다. 중동은 전통적으로 중국과 관계가 긴밀하다. 이 때문에 미국이 기술 유출을 우려해 중동에 제재를 가할 수도 있다. FT는 “최근 중동은 미국에 ‘중국과의 관계 단절’을 약속했다”며 “하지만 AI 기술 확보를 위해 조급증을 내다 중국 기술을 이용할 가능성이 여전히 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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