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논단
누군가 선거는 축제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갈수록 낯설어지는 말이다. 축제는 참가자 모두가 즐기는 공간이다. 선거판도 축제장이 되려면 그래야 한다. 승리가 확실해 일찌감치 축배를 들 준비를 하는 후보와 지지자들에게 만 신명나는 놀이판이 돼서는 축제라 할 수 없다.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다소 불리하더라도 그의 역량과 인품, 그를 선택한 내 안목에 대한 믿음을 갖고 열심히 응원하며 흥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선거라는 축제에는 필수 요소가 따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선거 무대에 흠잡을 데 없는 쟁쟁한 후보들이 올라 객석의 만족도를 높여야 한다. 유권자들이 누가 나라를 진일보시킬 최상의 후보인지 고르느라 골머리를 앓을 정도의 인재들로 무대를 채워야 한다. 페어 플레이 역시 필수다. 상대의 약점이나 과실을 비판하는 것은 전략일 수 있다. 하지만 선을 넘는 건 문제다. 기족까지 물고들어가는 폭로전 , 이미 일단락된 과거사 우려먹기, 아니면 말고식 의혹 제기 따위는 판을 깰 뿐이다. 시의적절하면서 정교한 공약들이 제시돼야 한다. 그래야 유권자들을 진지한 담론의 장으로 끌어들여 선거는 품위까지 갖춘 축제로 승화한다.
이번 선거에선 축제가 갖춰야 할 요소들을 찾기 어려웠다. 축제가 어니라 극한의 인내를 시험받는 국기훈련 같다는 사람도 있다. 무대를 맡은 정당이 최선을 다했는 지 묻지않을 수 없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대권 도전을 앞당기는 천운을 잡았지만 망령처럼 따라다니는 사법 리스크를 해소하지 못한 채 링에 올랐다. 특히 그의 선거법 위반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유죄취지 파기환송은 후보 교체론까지 돌 정도로 여파가 컸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한때 전광훈 목사 등 극우 인사와 교류했고, 윤 전 대통령 탄핵을 반대했던 전력의 소유자다. 서로를 향해 `내란방조자', `범죄자' 공격하는 후보들로 중도층에선 한숨 소리가 적잖이 터졌다.
그나마 기대를 걸었던 후보 토론은 가족의 과거사까지 까발리는 내거티브로 점철됐다. 미래를 위해 자신을 선택해 달라며 젊음과 패기를 과시하던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가 젓가락 망언으로 본인의 미래조차 책임지기 어렵게 된 게 그 정점이다. 표가 몰린 전국 곳곳에서 대형 공약이 급조돼 연발됐으나 대부분 `돈이 어디 있어서?' 라는 초보적 물음 앞에서 종이쪽으로 전락했다.
두 정당이 상대 당에 새긴 낙인은 `내란세력'과 `독재세력'이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을 향해 `내란을 방조한 세력이 귀환하면 새로운 내란을 꾀할 것'이라고 공격하고, 국민의힘은 `다수 의석으로 입법권을 남용해온 민주당이 행정부까지 장악하면 1당독재가 된다'고 반격한다. 하지만 두 정당 모두 상대의 의심을 불식했다는 평가를 받지 못한다.
국민의힘은 소속 대통령의 무도한 계엄령이 초래한 숱한 국가적 불이익에 1차적 책임을 져야할 정당이다. 전 대통령과의 절연, 반탁세력과의 단절이 급선무 였지만 당도 후보도 옛 주군과의 관계에 선명하게 선을 긋지 못했다. 읍소 끝에 자진탈당을 얻어냈 을 뿐이다. 정체된 지지율이 비상한 처방을 요구했지만 두번 다 불발로 끝난 후보 단일화에만 시간을 허비했다.
민주당에 이번 조기대선은 축복이다. 목전까지 닥쳤던 이 후보 피선거권 박탈 위기를 떨쳤고, 라이벌 정당은 대통령의 일탈로 내상을 입고 허둥대고 있으니 지기 어려운 환경이다. 오만인지 오판인지 모를 일이 벌어진 건 짚어야겠다. 본인들은 사법부 개혁이라고 하지만 밖에서는 시법부 압박으로 부르는 행위들이다. 비판이 거세지자 대법관 100명 증원과 비법조인 임명 법안은 철회했다. 하지만 대법관 30명 증원안과 방탄 의혹을 사는 공직선거법과 형사소송법 개정안 등은 남아있다. 여전히 `사법까지 틀어쥔 3권장악 정권이 출현할 것'이라는 국민의힘 공세의 불씨가 되고있다.
내일은 유권자들이 나태한 정치에 경종을 울리는 날이다. 투표율이 한껏 치솟아 묵직해진 유권자의 존재감이 모레 취임하는 새 대통령의 어깨를 무겁게 눌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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