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석 연조직이 분석된 텔마토사우르스의 상상도. 위키미디어 제공
고대 공룡 화석에서 적혈구 구조와 유사한 단백질의 흔적이 발견됐다. 암을 비롯한 질병의 진화적 기원을 밝히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영국 앵글리아 러스킨대와 임페리얼칼리지런던(ICL) 공동 연구팀은 루마니아 하체그 분지에서 발견된 공룡 텔마토사우루스의 화석을 분석해 보존된 연조직 내에서 적혈구를 닮은 저밀도 구조와 단백질 성분을 확인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생물학'에 29일(현지시간) 게재됐다.
텔마토사우르스는 약 6600만 년 전 백악기 후기에 서식한 초식성 공룡이다. 연구팀은 주사전자현미경(SEM)과 단백질 조각을 생화학적 기법으로 밝혀내는 기술인 ‘팔레오프로테오믹스(paleoproteomics)’를 이용해 텔마토사우르스 화석 속에서 혈액세포 유사 구조를 식별하고 단백질 구성 성분을 추출했다. 이런 분석이 가능할 정도로 연조직이 보존된 화석은 극히 드물다.
연구팀은 분석된 분자 수준의 정보가 고대 생물의 질병 흔적을 분석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단백질과 바이오마커를 분석하면 당시 생물체가 어떤 질환에 어떤 과정을 거쳐 걸렸는지를 추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텔마토사우루스 화석에선 종양의 흔적이 보고된 바 있다. 이번 단백질 분석은 암의 진화적 기원을 밝히는 데 중요한 연결고리로 작용할 수 있다.
연구팀은 이번에 확보한 분자 수준의 정보가 고대 생물의 질병을 추적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단백질과 바이오마커는 단순한 조직 구조보다 훨씬 더 정밀한 생물학적 정보를 담고 있어 질병 발현 과정과 생리적 반응까지 역추적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특히 단백질은 DNA보다 분해에 강하고 오염에도 비교적 안전하게 보존되기 때문에 수천만 년 전 생물체 내부에서 발생한 병리적 변화까지 조명할 수 있는 안정적인 자료가 된다.
이번에 분석된 텔마토사우루스 화석은 과거 연구에서 종양 병변의 흔적이 확인된 바 있다. 이번 연구를 통해 종양과 관련된 단백질 구조를 함께 분석함으로써 암세포가 생성되고 성장하는 데 관여했을 가능성이 있는 생화학적 과정을 탐색할 수 있게 됐다. 단순히 '암이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내는 것에서 나아가 암 발생의 진화적 경로를 확인하고 암 억제 또는 감수성(암에 걸리기 쉬운 요인)에 영향을 준 생물학적 요인을 규명하는 것이 가능진 것이다.
논문의 공동저자인 저스틴 스테빙 앵글리아 러스킨대학교 교수는 “공룡처럼 크고 수명이 긴 생물은 오랜 세월 동안 암에 어떻게 대응해왔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DNA보다 안정적인 단백질, 특히 석회화된 조직에서 추출되는 단백질은 분해와 오염에 덜 취약해 고대 질병 연구에 이상적인 소재”라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향후 고생물의 연조직의 보존과 수집이 더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골격 중심의 기존 화석 수집 방식에서 벗어나 연조직 보존 화석이 미래의 분자생물학 연구를 위한 핵심 자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참고 자료>
- doi.org/10.3390/biology14040370
[박정연 기자 hes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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