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공영방송·지상파·종편, 유력 신문사까지 성폭력 재현 앞세워 발언 규정…피해 당사자 사진 활용까지
[미디어오늘 노지민 기자]
▲2025년 5월 27일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 대선 후보 초청 TV토론 당시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가 발언하고 있다. MBC는 이날 토론회에서 이준석 후보가 성폭력 재현 발언으로 비판 받은 대목을 묵음 처리했다. 사진=MBC NEWS 유튜브 갈무리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가 TV토론에서 상대 후보를 비판하고자 여성 대상 언어 성폭력을 재현한 가운데, 상당수 언론이 문제 발언을 제목 등에 그대로 인용하며 확산시키고 있다.
이준석 후보는 지난 27일 '정치' 주제의 토론회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가족이 했다는 발언을 두 차례, 모두 여성 성기를 언급하면서 인용했다. 특히 이재명 후보 아들이 썼다고 의혹이 제기된 온라인 커뮤니티 댓글을 언급하면서는, 피해자에게 가해진 성희롱 주요 표현을 그대로 입에 올렸다. 여성 신체부위를 언급하며 이를 특정 도구로 훼손하고 싶다는 발언을 얼굴을 찌푸리며 읊은 것이다. 미성년자까지 다양한 연령대와 성별의 국민이 보는 토론회에 이런 발언이 중계되면서 당혹스럽고 불쾌했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여성단체 등은 이 후보 사퇴를 촉구했고, '정치하는엄마들'은 28일 그를 공직선거법, 정보통신망법,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주요 언론은 이 발언을 즉각 제목에 올려 기사를 내고 있다. 댓글 작성자가 신체부위를 훼손하는 데 쓰고 싶다고 말한 도구를 앞세워 '○ 발언'이라며 부정확한 규정을 하고 있다. 당일 TV토론 중계를 주관한 MBC와 더불어 공영방송인 KBS, 두 방송사와 '지상파 3사'로 묶이는 SBS도 마찬가지였다. 종합편성채널 4사 중에선 JTBC를 제외한 TV조선, 채널A, MBN 등이, 뉴스통신사 중에선 뉴시스와 뉴스1이 성폭력 맥락에서 사용된 단어를 제목에 올렸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의 성폭력 재현 발언의 주요 표현을 인용해 발언을 규정한 기사들. 사진=구글 뉴스 검색 결과
유력 일간지로 꼽히는 조선일보, 동아일보, 문화일보, 중앙일보, 매일경제를 비롯해 신문·인터넷 매체 다수도 성폭력 표현을 제목에 앞세웠다. CBS노컷뉴스의 경우 토론 직후 <성폭력 발언 인용하고 답변 회피하고…성감수성 '0점' 토론회> 기사로 토론회 상황을 비판적으로 다뤘는데, 이튿날 작성된 기사 제목에는 성폭력 표현이 사용됐다.
특히 일부는 여성 신체부위에 특정 행위를 가하는 방식을 연상시키게끔 더 자극적으로 제목을 썼다. 포쓰저널은 여성 뒤에 'XX' '젓가락' 등을 붙였고, 조세일보 또한 유사한 제목을 지었다. 더퍼블릭도 성폭력 행위를 연상시키는 제목을 썼다가 지금은 수정된 상태다. 뉴데일리의 경우 피해 당사자인 여성 연예인·유명인의 이름 뒤에 성폭력 표현을 붙이면서, 해당 연예인 사진을 기사 썸네일(대표이미지)로 사용하기까지 했다. 이준석 후보는 이 기사를 직접 본인 페이스북에 공유했다.
▲뉴데일리는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가 TV토론회에서 재현한 성폭력 발언의 피해 당사자 이름, 사진 등을 앞세워 기사를 작성했다. 사진=구글 뉴스 검색 결과
이런 식이 아니면 이준석 후보의 발언을 보도할 수 없을까.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준 언론사들도 있다. 경향신문, 국민일보, 서울신문, 한겨레, 한국일보 등은 성폭력 발언 제목을 쓰지 않았고, 경향·한겨레는 본문에도 이를 쓰지 않았다. 이들 언론사는 실제 성폭력을 재현하는 대신 이준석 후보가 '여성 혐오 성폭력' '언어 성폭력' '성폭력 표현 인용' 발언을 했다고 표현했다. 경향신문 <대선 토론 중 생중계된 이준석의 '언어 성폭력'···사퇴 요구 '빗발'[플랫][컨트롤+F]> 기사는 하단에 “한국기자협회의 '성폭력·성희롱 사건 보도 참고수첩'과 경향신문 '젠더 보도 가이드라인'은 성폭력 가해 방법에 대한 자세한 묘사와 선정적 표현 등을 지양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경향신문은 이준석 후보 발언의 맥락만 전하고 해당 발언의 구체적 내용을 기사에 직접 인용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뉴스통신사 중에선 연합뉴스도 제목과 본문에 이준석 후보의 성폭력 재현 발언을 직접 인용하는 대신 그가 '여성신체 폭력 표현'을 썼다고 전하고 있다.
▲한겨레 보도 제목
▲경향신문 기사 갈무리
언론 현업 단체에서도 자성이 나온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성평등위원회는 28일 “언론노조를 비롯한 언론현업단체는 2020년 1월 '혐오표현 반대 미디어 실천 선언'을 통해 정치인을 포함한 사회적 영향력이 큰 인물의 혐오 표현을 더욱 엄격하고 비판적으로 다루겠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가짜뉴스나 왜곡된 정보에 기반한 혐오 표현에 대해서는 철저한 팩트체크를 거쳐 보도하겠다는 원칙도 천명했다. 아울러 언론노조 젠더보도 가이드라인은 성차별적 표현의 직접 인용이나 젠더 기반 폭력 범죄의 폭력 양상을 불필요하게 상세히 묘사하는 데 대해 신중을 기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면서 “이준석 후보의 성희롱 발언을 보도하는 과정에서 다시금 시민의 고통이 증폭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를 당부한다”고 밝혔다.
MBC차별없는노동조합도 같은날 “이준석 후보의 발언 이후 다수 언론은 이를 '논란'이나 '돌발 발언'으로 포장하며 자극적인 제목과 구성으로 소비했다”며 언론이 2차가해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자사의 '오늘 이 뉴스'도 처음 성폭력 표현을 제목에 올렸다가 비판이 나온 뒤 제목을 수정했지만, 관련 보도에서 해당 발언을 “낯 뜨거운 여성 신체 부위를 언급”했다고 표현한 일도 있었다면서 내부 인권젠더 감수성 '결함'을 지적했다. “언론은 이제 '논란'을 옮기는 중계자가 아니라, 혐오 표현을 비판하고 차단하는 역할에 나서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정치하는엄마들의 대선 3차 TV 토론 이준석 성범죄 발언 긴급 단체고발 기자회견. 사진=정치하는엄마들 페이스북
언론시민단체에선 이준석 후보의 발언을 정확하게 규정하고 제대로 비판할 것을 촉구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28일 이 후보 발언은 “여성과 시민 모두를 향한 명백한 모욕이며 언어폭력 행위”라며 그의 사퇴를 요구하는 한편, 해당 발언이 공론장에 나오도록 한 선거방송토론위원회와 언론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민언련은 “(일부 언론이) 이준석 후보의 성폭력 발언 파문을 전하며 더불어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의 비판만 부각해 정치공방으로 몰아가고 시민사회 목소리를 배제하는 등 심각성을 희석”한다면서, 제목에 성폭력 표현을 재현한 언론은 “본연의 책무를 저버리고 성폭력 발언의 2차가해를 조장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민언련은 또한 언론을 향해 “폭력을 선동하고 혐오차별을 조장하는 자에게도 마이크를 내어주어선 안 된다”고도 당부했다.
권순택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통화에서 “이준석의 발언이 왜 문제가 된 것인지를 봐야 한다. 남초커뮤니티 안에서의 여성혐오 문화가 이준석에 의해 공론의 장이어야 할 대통령 후보 TV토론에 올린 것이 문제”라며 “언론이 이 사실을 보도하면서 그가 말한 여성의 특정 신체 부위를 훼손하는 도구를 네이밍으로, 그것도 제목으로 뽑는다는 것이 옳은가. 그것이 그들 언론사들이 말하는 저널리즘 원칙에 부합한다고 보는 건가”라고 물었다. 그러면서 “그것은 굉장히 사건을 단편적으로 보고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남초커뮤니티에서의 여성혐오 문화 그 자체의 맥락으로 읽는다면, 다른 선택을 했어야 한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언론이 이 후보 발언을 규정하는 표현과 이를 정하는 원칙 자체가 “언론사의 인권감수성 차이를 드러내는 잣대”라는 것이다.
이준석 후보 측에서 혐오에 기반해 성폭력 재현 발언을 옹호하는 주장 또한 그대로 받아써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권 사무처장은 나아가 “그런 말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뱉은 이준석이란 사람이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어도 좋은지에 대해 언론이 계속해서 이야기해야 하는 때가 아닐까 싶다”라고 당부했다.
▲혐오와 검열에 맞서는 표현의 자유 네트워크(약칭 21조넷) 성명 갈무리
▲민주언론시민연합 성명 갈무리
후보들 발언 시간 제재에 치우친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 TV토론의 형식, 사회자가 문제 발언을 저지하지 않은 책임 등에 대한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선거방송토론위 구성 및 운영에 관한 규칙은 '후보자가 법에 위반되는 내용을 발표할 때는 사회자로 하여금 이를 제지하거나 중지를 명하도록 하고, 자막 안내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토론위 측은 공직선거법 등에 명백히 위반되는 발언이 아니면 이를 제재할 근거가 없다는 입장이다. 후속 대응 논의는 본 선거가 임박하고 사전투표가 시작된 만큼 선거가 끝난 뒤에 가능할 거란 전망이다. 당일 토론회 중계를 주관한 MBC는 자사 홈페이지이와 유튜브 채널의 토론 영상에서 이준석 후보의 성폭력 재현 발언을 묵음 처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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