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미래 먹거리' 영토를 넓혀라
[1] 실증에 발목 잡힌 K로봇
中 확대한 컴퓨팅 자원, 80%가 미활용
실적 위해 과잉 공급, 불완전한 운영도
"실증 기반 계획과 유연 전략 병행해야"
편집자주
다음 세대의 삶을 책임질 미래 첨단 산업이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추격자였던 중국이 선도국으로 변모하는 사이 한국 기술은 규제와 정쟁에 발목 잡혀 제자리걸음을 했다. '뛰는 차이나, 기로의 K산업' 2부에선 미래 산업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한 전략을 분석했다.
게티이미지뱅크
2022년 말 챗GPT 등장 이래 중국 정부는 인공지능(AI) 인프라 구축을 국가 우선 과제로 정했다. 지방정부에선 2023년부터 2년간 500개가 넘는 신규 데이터센터 프로젝트를 발표했고, 2024년 말 기준 최소 150개가 완공돼 운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MIT 테크놀로지 리뷰에 따르면, 새로 건설된 컴퓨팅 자원의 최대 80%가 활용되지 않는 상태다. 데이터센터의 핵심 수익원인 그래픽처리장치(GPU) 서버 임대료도 절반으로 떨어졌다. 프로젝트에 투자한 이들은 수익성 악화를 우려하고, 놀고 있는 GPU는 매각되는 처지다.
딥시크의 약진으로 중국 AI 산업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묻지마 투자'의 부작용도 뚜렷하다. 실수요 검토 없이 자금을 쏟아부은 결과, 인프라가 과잉 공급돼 유휴·부실 자산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이를 반면교사 삼아 국내 정책을 실증과 수요 기반으로 재설계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중국에 텅 빈 데이터센터가 난립한 원인으로 중앙정부의 하향식 지시와 단기 실적 중심 행정이 지목된다. 지방정부가 가시적 성과에 집착해 지역 수요나 기술 여건은 무시한 채 보여주기식 투자를 늘린 바람에 AI 인프라가 실제 산업 수요가 아니라 지방 관료 실적에 초점을 맞춰 설계됐다는 것이다. 이게 GPU 과잉 확보, 부적절한 입지 선정, 불완전한 인프라 운영으로 이어졌다는 진단이다.
이런 현상은 과거에도 나타났다. 2015년 말 로봇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선전, 광저우 등 중국 36개 도시가 로봇산업 육성에 뛰어들었고, 중국 전역에 로봇 산업단지 수백 개가 만들어졌다. 당시 현지 매체 '경제관찰망'은 보조금을 부정 수취하거나 생산 능력을 위조하는 기업들이 생겨났고, 관료들의 현지 실사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물론 대규모 투자가 획기적인 성과를 내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은 예산과 자원이 한정된 만큼 실증 데이터와 미래 수요 조사에 기반한 정교한 정책 설계가 더욱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박승찬 중국경영연구소장은 "산업과 에너지 수요 실증 데이터를 바탕으로 정책 우선 순위를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존 로드맵을 넘어선 영역에서 등장하는 신기술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유연한 전략을 병행하자는 제안도 나온다. 기술 발전과 시장 변동 속도에 대비 태세를 갖춰야 한다는 얘기다. 최병철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기술경제연구실장은 "사전 조사를 토대로 치밀한 계획을 수립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장 변수를 고려해 유연하게 대응하는 투자 체계도 함께 운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태연 기자 ty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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