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심각하게 모욕”...시민·여성단체 연이어 고발
이준석 후보, “심심한 사과...검증 필요한 사안”
“왜 여성혐오 바로 인정 못하나”...실망감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왼쪽부터), 민주노동당 권영국, 국민의힘 김문수, 개혁신당 이준석 대선 후보가 27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정치 분야 TV토론회에 참석해 있다.
지난 27일 대선 후보 TV 토론회에 등장한 여성 신체 관련 표현을 둘러싸고 여성 혐오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해당 표현을 방송에서 직접 인용한 것과 더불어 해당 표현이 여성 혐오 표현임을 바로 인정하지 않은 것 모두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대선 후보 3차 TV 토론회에서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를 향해 여성 신체 부위에 특정한 행위를 하는 것을 언급하며 “어떤 사람이 여성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했다면 이것이 여성 혐오에 해당하냐 아니냐”고 물었다.
이 발언은 과거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아들로 추정되는 인물이 여자 아이돌 에스파 카리나를 거론하면서 쓴 글이라고 알려진 댓글을 인용한 것으로, 지난 2021년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의 주장이 그 시초다.
이에 권영국 후보가 “답변하지 않겠다”고 말하자 이준석 후보는 “민주노동당은 성폭력적 발언에 대해 기준이 없냐”고 재차 물었다. 이에 권영국 후보는 “이것을 묻는 취지는 잘 모르겠는데요. 기준은 매우 엄격하다”고 답했다.
이준석 후보는 이어서 이재명 후보에게 “이재명 후보님도 동의하냐”고 물었고, 이재명 후보는 “시간을 충분히 주고 질문을 하시면 좋겠다”고 답했다. 이준석 후보가 “동의하시는지만 답변해 주시면 된다”고 되묻자 이재명 후보는 몇 초간 침묵한 뒤 “시간과 규칙을 지켜서 하시면 좋겠다”고 답했고 이 말을 직후로 토론 시간이 종료됐다.
27일 서울 상암 MBC스튜디오에서 열린 21대 대선후보 3차 토론회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참석하여 토론회를 준비하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주관한 이번 3차 대선토론은 약 2시간 가량 진행됐다. 대선 전 마지막 토론회인 만큼 후보자들은 서로의 정치 비위 의혹, 비상계엄 책임론 등을 가열 차게 공격했다. 이재명 후보가 2019년 1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법인카드로 과일을 2791만원 산 것에 대해 “집에 뭐 코끼리 같은 거 키우냐”는 발언이 나오는 등 후보자들 간 날 선 공방이 이어졌다.
정치·외교안보 분야를 주제로 한 토론이었지만, 토론회 직후 가장 논란이 된 것은 이준석 후보의 ‘젓가락’ 발언이었다. 토론회 직후부터 이날 오전까지 엑스(X, 옛 트위터)의 실시간 인기 검색어에는 ‘여성 성기’ ‘이재명 아들’ ‘토론 수준’ ‘여성 혐오’ 등의 단어가 도배됐다.
지난 27일 밤 10시 20분께 3차 대선 후보 TV 토론회가 끝난 후 엑스(X, 옛 트위터)의 실시간 화제 키워드에 ‘여성 성기’ 등의 단어가 올라 있다. [엑스 캡처]
여성계는 전 국민이 시청하는 대선 토론회에서 적나라한 여성 혐오 표현이 등장했다는 것에 분노를 표하고 있다. 이에 일부 시민단체와 여성단체는 이준석 후보의 퇴출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내고 이준석 후보를 수사기관에 연이어 고발하고 있다.
이병철 법무법인 찬종 변호사는 이날 오전 국민신문고를 통해 이준석 후보를 공직선거법상 후보자 비방과 형법상 모욕·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하는 민원을 접수했다고 밝혔다. 이병철 변호사는 “대선 토론 방송을 시청한 여성들을 심각하게 모욕했을 뿐 아니라 이재명 후보가 21대 대선에서 당선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적시했다”고 주장했다.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이 28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연 ‘대선 TV토론 이준석 대선후보 성범죄 발언 단체고발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 역시 이준석 후보를 공직선거법, 정보통신망법,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단체는 이날 오후 1시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준석의 언어 성폭력은 전 국민에 대한 모독이자, TV 토론을 시청한 아동·청소년들에 대한 명백한 정서적 아동학대”라고 주장했다. 단체에 따르면 고발에는 시민 3만7728명이 참여했다.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은 오늘 서울중앙지검에 이준석 후보를 공직선거법상 후보자 비방,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고발한다. 한국여성민우회와 참여연대,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등 여성·시민단체들도 이준석 후보의 발언을 문제 삼으며 후보 사퇴를 요구하는 성명과 논평을 내고 있다.
이에 이준석 후보는 이날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 산책 유세에서 기자들을 만나 여성 신체 분위 언급 논란에 대해 “불편할 국민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에 대해선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면서도 “그런 언행이 사실이라고 하면 그것은 충분히 검증이 필요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선 후보가 28일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점심시간을 이용해 산책 나온 직장인 유권자들을 만나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이충우기자]
한편 일각에서는 여성 인권을 주창하는 더불어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이 토론회에서 해당 어휘를 ‘여성혐오’라고 바로 인정하지 못한 것에 비판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20대 여성 A씨는 “이재명 후보의 아들이 한 게 맞는지 여부를 떠나 명백한 여성 혐오 어휘였는데, 권영국 후보가 민주당 눈치를 보면서 아무말 못하고 답을 회피하는 것 같았다”며 “선택적 여성인권주의자”냐고 비판했다. 또 다른 20대 여성 B씨는 “위선적인 침묵”이라며 “여성 유권자들 표를 원하면서 간단한 질문에 예 아니오 대답도 못하냐”고 실망감을 표했다.
한편 권영국 후보는 토론회 직후 엑스에 ‘TV토론에서 못다한 말’이라는 글을 올려 “그 발언이 다른 후보를 비방하기 위해 꺼낸 것이라는 사실은 토론회 끝나고 나서 알았다”며 “이준석 후보가 여성혐오 발언인지 물었던 그 발언은 분명한 여성혐오 발언”이라고 수습했다.
논란 속에서 이재명 후보는 28일 여성가족부를 성평등가족부로 확대·강화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이재명 후보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여성가족부를 성평등가족부로 확대·개편하다“며 “모두가 동등한 권리와 기회를 누리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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