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AI 탑재 로봇이 일자리를 놓고 면접을 보는 상황을 챗GPT로 구현한 이미지.
점선면은 지난 5월12일~16일 구독자 참여 이벤트 ‘내가 바라는 공약은?’을 진행했어요. 짧은 시간 정말 많은 분이 다양한 의견을 보내주셨습니다. 독자님들이 꿈꾸는 새로운 한국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었습니다.
점선면은 독자 여러분이 기대하는 공약을 바탕으로 이번 대선 주요 의제를 분석하는 뉴스레터를 보내드립니다. 각 후보가 의제와 관련해 어떤 공약을 냈는지도 함께 정리합니다. 네 번째 의제는 ‘인공지능(AI)’입니다.
“미래 기업이 어떻게 먹고 살아갈지가 중요한 것 아닐까요. AI를 한국형으로 어떻게 만들지, 비단 단순 세제 지원 뿐만 아니라 구체적으로 GPU를 몇개 매입해서 어떻게 활용할지 등이 궁금합니다.”
-틈슈님(서울, 20대 여성)
“미래산업 관련 공약이 궁금합니다. 성장동력이 없다고 느껴집니다”
-르미님(서울, 20대 여성)
‘정치의 책무’ 보이지 않는 AI 공약
세계는 지금 ‘인공지능(AI) 전쟁’ 중입니다. AI 플랫폼을 먼저 선점하는 기업이 전 세계의 모든 데이터를 빨아들이고, 이에 따른 수익도 독점하는 미래가 예상됩니다. ‘AI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는 말도 나와요. 대선 후보들도 AI를 국가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산업으로 보고 관련 공약을 내놓았는데요, 먼저 그 내용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모두 ‘AI 3대 강국’을 목표로 ‘5년간 100조원 투자’를 내세웠어요. 지난해 정부 예산이 656조원이었으니, 1년 예산의 6분의 1이 넘는 금액을 투자하겠다는 건데요. 공약을 잘 뜯어보면 민간투자를 유도하겠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두 후보 모두 재원 조달 방식으로 ‘펀드’를 거론했어요. 이 후보 측에선 ‘국민참여펀드’ 아이디어가 나왔고요, 김 후보는 공약으로 ‘민관합동펀드 100조 조성’을 내세웠습니다.
AI 인재 육성도 중요한 문제인데요. 이 후보는 지역 거점 대학에 AI 단과대학을 설립해 석박사급 인재를 양성하겠다고 했습니다. 김 후보는 AI 대학원을 늘려서 ‘AI 청년 인재’를 20만명 양성하고, 해외 우수인력 유치를 위한 인건비·연구비 지원을 약속했어요.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와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는 AI 육성 관련 정부 투자나 인재 양성에 관한 공약은 내놓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 후보는 ‘과학기술 인재’ 유출을 막기 위해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과를 달성한 과학기술인을 위한 연금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했어요.
이밖에 눈에 띄는 공약을 살펴보면, 이재명 후보의 ‘모두의 AI’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한국형 챗GPT’를 만들어 국민이 무료로 쓸 수 있게 하자는 겁니다. 또한 고성능 GPU(그래픽처리장치)를 5만개 이상 확보하겠다고 했어요. ‘AI의 엔진’이라고 할 수 있는 고성능 GPU를 얼마나 확보하는지가 AI 경쟁력에 직결되는데, 현재 엔비디아가 독점 공급하는 GPU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에 나온 공약으로 보여요.
김 후보는 AI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했습니다. ‘기준 국가제(산업별로 발달 수준이 높은 국가를 지정해 규제 수준을 맞추는 것)’를 적용해 국내에만 있는 규제를 없애는 방안을 제시했어요. 반대로 권 후보는 AI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AI는 많은 전력을 소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권 후보는 지역별 전력 사용 총량제를 도입해서 데이터센터가 무분별하게 확대되는 것을 막겠다고 했습니다.
후보별 공약을 평가하기 전에 일단 우리의 AI 산업 여건을 살펴봐야 할 것 같아요. 문제를 정확히 이해해야 제대로 된 해법이 나올 테니까요. 국가의 AI 경쟁력을 결정짓는 세 가지 핵심요소는 투자, 인재, 기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달 미국 스탠퍼드대 HAI(인간중심인공지능)연구소가 발간한 AI인덱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AI 민간투자는 13억3000만달러로 전년(13억9000만달러)보다 줄었습니다. 투자 규모 순위도 9위에서 11위로 하락했고요. 정부 투자 규모도 너무 적습니다. 한국의 전체 예산 중 AI 예산은 0.27%(1조8000억원)에 불과하지만 중국은 1917억위원(약 38조원), 미국은 200억달러(약 29조원)을 투입하고 있어요.
AI 인재 유출도 심각합니다. 링크드인 기준 AI 인재 지표는 -0.36으로 유입되는 인재보다 떠나는 인재가 많아요. 기술 측면에서는 네이버 ‘하이퍼클로바X’, LG ‘엑사원’, 삼성전자 ‘가우스’ 등 자체 모델이 있지만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모델은 보이지 않습니다. HAI연구소의 보고서에서도 ‘주목할만한 AI 모델’ 108개에 한국 모델은 하나도 없었어요. 미국은 61개, 중국은 15개, 프랑스는 8개였고, 이스라엘과 싱가포르도 각각 4개, 3개가 있었지만요.
한국이 AI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확실한 정부 투자와 인재 양성이 필요하다는 대선 후보들의 진단은 맞습니다. 하지만 ‘100조원 투자’를 말하면서 재원 마련 방안은 물론 그 재원을 어디에 쓸 것인지 구체성은 부족해 보여요.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챗GPT 같은 AI 기초모델을 만들겠다는 건지, AI 응용 스타트업을 지원해 글로벌 시장 진출을 돕겠다는 건지, 기존 빅테크에 전략적 투자자로 참여하겠다는 건지, 아니면 이 모든 것을 독자적으로 하겠다는 건지 불분명하다”고 평가했어요.
특히 인재 양성은 ‘AI 단과대학’ ‘AI 대학원’을 말하기 전에 짚어야 할 과제들이 있습니다. 2021년부터 지난해 1학기까지 서울대 신입생 611명 중 공대생 187명이 자퇴했다는 소식을 보셨을 거예요. 작년 대입 정시모집에서 연세대와 고려대의 이공계 상위권 학과에 합격하고도 등록을 포기한 합격자가 전년보다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고요. 실력 있는 이공계 인재들이 의대로 몰려가는 현실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AI의 미래를 장밋빛으로만 그리는 것도 무책임한 면이 있습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에 따르면 국내 일자리 10개 가운데 9개는 AI와 로봇으로 대체할 수 있게 됩니다. 한국은행이 지난 2월 발표한 연구에 따르더라도 국내 근로자 중 절반 이상(51%)의 일자리가 AI 때문에 없어질 수 있다고 해요.
산업뿐만 아니라 복지, 노동을 두루 챙겨야 하는 정치가라면, 마땅히 AI 발전과 더불어 ‘제대로 된 사회안전망’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는 인재 양성과도 연결되는 부분입니다. 안정적 고소득이 보장되는 의대로 쏠리지 않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이 AI 같은 신산업에 도전하게 만들기 위해서도 탄탄한 사회안전망은 필요해요. AI로 일자리를 잃게 될 사람들에 대한 대비책도 되고요.
AI 시대는 부의 양극화를 가속할 가능성이 큽니다. AI를 선점한 특정 국가 내 특정 기업에 부가 쏠릴 수 있으니까요. 정부의 역할은 이런 면에서도 더욱 중요해질 겁니다. AI의 명과 암을 면밀하게 살펴야 할 때인데, 장차 정부를 이끌게 될 대선 후보 중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게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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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설희 기자 s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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