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63스퀘어 전망대에서 바라본 용산과 한강변 일대. 사진=한국경제신문
“내가 이렇게 욕심이 많은 사람인 줄 미처 몰랐다.”
경기도 신도시에 사는 A 씨에게 최근 고민이 생겼다. 사정상 지금 사는 아파트를 팔고 이사를 가고 싶지만 여력이 충분치 못하다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5년 전 A 씨는 운 좋게 2기 신도시 주택 청약에 당첨됐다. 아내의 배 속에는 사랑스러운 2세도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A 씨 부부는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뻤다.
어느덧 꿈에 그리던 새 아파트에 입주해 살고 있던 A 씨. 건강하게 태어난 아이도 별 탈 없이 자라고 있다. 그런데 어느새 ‘넥스트 스텝’에 대한 고민이 싹트기 시작했다. 브랜드 신축 아파트의 편의성, 쾌적한 신도시 인프라가 선사하는 삶의 질로도 해소할 수 없는 결정적인 문제가 존재했다.
그것은 ‘출퇴근 시간’과 ‘학군’이었다. 서울에 있는 직장까지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는 A 씨의 체력이 예전 같지 않아지면서 피로도가 쌓여갔다. 퇴근하고 아이와 놀아주기가 너무 힘이 든다. 아내도 재취업을 희망하고 있다. 맞벌이 부부에게 ‘직주근접’은 필수다.
아이 교육도 문제였다. 젊은 부부가 많은 신도시 특성상 아이들은 많다. 교육열도 나름 있다. 덕분에 어린이집, 유치원 보내기도 수월하고 키즈카페, 소아과, 학원도 골라갈 만큼 다양하게 분포돼 있다. 그러나 이 동네는 중학교 때부터가 애매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서울이나 분당을 알아볼까”라는 생각에 A 씨 부부는 본격적으로 부동산 시세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다행히 GTX 호재 덕분에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 시세가 많이 올라줬다.
하지만 서울, 분당 집값은 더 많이 올랐다. 가격이 조금 괜찮다 싶으면 위치, 학군이 떨어지거나 아파트가 정말 낡았다. “수도에서 녹물이 나와요”라는 호갱노노 리뷰에 마음을 접기도 여러 번이다. 아이에게 아토피 증세가 있기 때문이다.
“새 아파트까지는 정말 욕심이라는 걸 잘 안다. 그런데 이런저런 생각 때문에 포기가 안 된다. 그래서 이사는 어려울 것 같다.” 더 이상 청년도 신혼부부도 아닌 A 씨 부부는 별다른 정책 혜택을 기대하지 못하고 있다. A 씨는 서울 입성의 꿈을 접어야 할까?
‘도심 공급’ 한목소리
2023년 기준 전국 주택보급률은 102.5%에 달한다. 하지만 수도권, 특히 서울의 주택 부족 문제는 여전히 국내 주거 시장의 고질병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에 육박하는 시대, 전문가들은 그냥 ‘집’이 아니라 ‘살고 싶은 집’이 더 공급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2023년 투기과열지구 내 85㎡ 이하 주택 청약 시에도 50% 추첨제가 도입되는 등 가점이 낮은 수요자들에게도 당첨 기회는 열렸다. 문제는 절대적인 물량이 부족한 탓에 경쟁률이 ‘로또’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통편의, 학군 같은 인프라를 두루 갖춘 ‘살고 싶은 집’은 그 희소성으로 인해 시세가 오르고 있다. ‘얼죽신’(얼어 죽어도 신축을 뜻하는 신조어) 열풍도 쾌적한 신축 아파트가 부족해 생긴 현상이다. 지난해 고분양가 논란을 낳고 분양한 ‘마포 자이 힐스테이트 라첼스’, ‘마포 푸르지오 어반피스’가 완판에 성공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특히 강남권을 비롯한 핵심지역 집값은 무섭게 반등하며 부동산 상승기였던 2021~2022년 상반기 시세를 추월했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올해 4월 월간 아파트 매매가격지수는 2022년 1월을 기준으로 전국과 서울에서 모두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KB선도아파트50지수’와 ‘서울 시세총액 TOP20’은 2022년 당시보다 올랐다.
KB선도아파트50지수는 매년 12월을 기준으로 시가총액 상위 50개 아파트 단지를 선정해 가격 변동률을 수치화한 지표다. 통상 가구 수가 많고 시세가 높은 유명 아파트가 선정된다. 즉 전국은 물론 서울 전체 아파트보다 이 같은 선도 아파트에 대한 수요가 높게 나타나 가격에 반영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시가총액 1위 단지인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와 함께 재건축 아파트로 유명한 ‘압구정 현대’, ‘목동 신시가지’ 등도 연일 신고가를 기록하고 있다.
들끓는 시장의 관심과 달리 현재 주요 대선후보들의 공약에서 부동산 정책은 다소 우선순위에서 밀린 상태다. 지난 2~3년간 부동산 경기가 급격히 침체한 점, 수십 년에 걸친 지난 정부의 부동산 시장 개입 시도가 결국 효과를 보지 못한 채 부작용만 낳았다는 점에서 양당 후보가 모두 부동산 이슈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 전략을 마련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래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 모두 재개발·재건축 규제완화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는 윤석열 정부 당시인 지난해까지 여야 합의로 관련 법안들이 국회를 통과하며 예고됐던 부분이다. ‘1기신도시’(노후계획도시정비특별법), ‘재건축 패스트트랙법’(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 개정안)의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이재명 후보는 서울 및 노후 도심 재건축·재개발에 대한 용적률, 부담금 완화뿐 아니라 1기 신도시(분당·일산·산본·중동·평촌) 노후 인프라 재정비, 수원·용인·안산·인천 등 노후계획도시 재건축 지원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김문수 후보도 재개발·재건축 권한을 기초자치단체로 넘겨 지금은 15년 넘게 걸리는 사업 기간 단축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또 용도지역 규제가 없는 일명 ‘한국형 화이트존’을 도입해 복합개발과 민간주택 공급을 활성화하겠다는 방안도 내놨다.
도심은 공급부족뿐 아니라 노후화에도 시달리고 있는데 그동안 재개발과 재건축 사업이 지연된 영향이 크다. 한국부동산원 부동산테크에 따르면 올해 기준 서울시의 아파트 평균 연식은 23.7년으로 전국 광역시도 중 가장 높다. 경기도는 19.5년으로 이보다 4년가량 낮지만 입주 30년을 넘긴 성남 분당구(26.9년), 일산 서구(25.3년), 안양 동안구(24.8년) 등 주요 1기신도시 아파트의 노후화가 심한 상태다.
특히 서울이나 1기신도시 학군지 입성을 노리는 수요자들에게는 재개발·재건축 규제완화가 주목할 만한 공약일 수 있다. 단기적으로는 개발지역 집값을 올릴 수 있지만 인프라가 이미 완성된 도심에 신규 공급을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 재건축과 재개발을 비롯한 도시정비사업이기 때문이다.
공공기여·재초환이 변수
이 밖에도 두 후보자들의 공약은 큰 틀에서 유사하다. 양당은 우선 무주택 청년, 신혼부부를 위해서는 공공주택 공급을 늘리고 공적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이다. 또 GTX 등 광역교통망을 활성화해 외곽 지역의 출퇴근 시간을 단축하고 역세권 인프라를 확충한다는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이 250만 호 공급, 이재명 후보가 311만 호 등을 내세운 것과 달리 전체적인 주택공급 목표도 제시되지 않았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양측 모두 유사한 기조이며 부동산을 선거공약으로 이슈화하려는 의도가 없는 것이 확연하게 보인다”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극히 일부 사안을 제외하고는 구체적인 공급 숫자(계획)가 나오지 않은 이유는 지난 선거에서 무리한 수치를 제시했던 것에 대한 학습효과가 반영된 것”이라며 “선거일까지 남은 기간도 짧기에 지금 시점에서 상세한 계획을 내기도 쉽지 않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토지보상과 기반공사 작업이 필요한 신도시 개발만큼이나 재건축·재개발 사업을 통한 공급에도 각종 인허가 절차를 통한 시차는 발생한다. 통상 관리처분 이후 이주와 철거를 마친 상태에서 일반공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올해 6월 시행되는 재건축 패스트트랙법은 재건축 안전진단 없이 재건축 사업을 추진하고 정비구역 지정 전에도 추진위 설립이 가능하도록 해 사업 절차를 3년 이상 단축하도록 하고 있다.
그렇더라도 신규 공급까지는 최소 5년 정도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민간 사업에 따른 공급인 만큼 정확한 규모도 가늠하기 어렵다. 권대중 서강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현재 후보들의 재건축 규제완화 공약이 직접적인 공급 효과를 내려면 임기 내에는 어렵다”고 밝혔다.
기존에 진행 중인 일부 사업들조차 최근 공사비와 금융비용 급등,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의 영향으로 더 진척이 어려워지고 있다. 압구정, 여의도 재건축 아파트에서 조합 내부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기부채납 문제도 변수가 되고 있다. 재초환은 재건축 사업으로 인한 초과이익 일부를 국가가 환수하는 제도다. 현행법에 따르면 재초환에 따라 조합원 1인당 재건축 초과이익이 8000만원을 넘는 경우 최대 50%까지 국가가 환수할 수 있다.
우선 기존 재건축 사업이 신속하게 진척돼 일반분양 물량을 빠르게 공급하려면 이 같은 걸림돌이 사라져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재초환에 대해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폐지’ 공약을 내놓은 상태다.
민주당은 “일단 재초환을 유지한다”는 입장이다. 진성준 민주당 중앙선대위 정책본부장은 5월 16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가 지난 2023년 크게 완화됐고 그래서 그 부담을 크게 줄였고 시행한 지 1년이 채 안 됐다”며 “시행해 본 뒤에 부담이 어느 정도인지를 판단해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권대중 교수는 “후보들이 공약대로 용적률을 완화하더라도 그만큼 임대주택을 요구하거나 재초환을 유지하게 되면 조합의 입장에선 사업성 개선 효과가 상쇄되므로 재건축 사업을 활성화하는 효과가 떨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신규 공급물량이 늘더라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 대출규제가 수요자들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아파트에 입주하기 전 대출을 받아 분양권 잔금을 치르기 위해서는 대부분 각종 대출규제가 적용되는 주택담보대출을 알아볼 수 밖에 없다. 정부는 가계대출 관리 차원에서 스트레스 DSR을 총 3단계까지 도입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DSR은 차주의 소득과 기존 주담대, 신용대출까지 포함해 원리금 상환능력을 평가하는 제도인데 스트레스 DSR이란 금리변동리스크까지 가산금리(스트레스 금리)를 붙여 대출 한도를 설정하는 방식으로 대출 문턱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수도권 주택에만 적용되는 3단계 DSR은 가산금리를 1.50%포인트 적용하는데 오는 7월에 시행된다. 즉 새 정부의 의지에 따라 시행 여부가 결정될 수 있다.
이재명, 김문수 후보는 대출규제 완화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다만 당장은 대상이 젊은 무주택 실수요자로 국한된다. 김문수 후보는 신생아 특례대출 및 생애최초구입자 요건 완화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재명 후보도 5월 18일 열린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생애 최초 구입자들에 한해서 90% LTV를 인정해주자”, “특히 청년들은 DSR이 문제가 되기 때문에 장래 소득을 기반으로 DSR을 인정해주자는 생각”이라고 발언하며 대출 완화 계획을 시사했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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