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스토리 - 대선, 내 삶을 바꿀까]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을 비롯한 중소기업대표 5000여명이 2024년 2월 50인 미만 사업장 중대재해처벌법 유예 촉구 결의대회를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최혁 한국경제신문 기자
대통령 선거에서 보수와 진보의 공약이 명확히 구분되는 분야는 세금과 노동 분야다. 최근 추세는 어떤 후보도 증세를 말하지 않는다. 선거에 악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노동 분야는 판이하게 다르다. 올해도 중대재해처벌법, 노란봉투법 등을 놓고 양측은 극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재명 후보는 노측에, 김문수 후보는 사측의 입장을 대변한다. 그럼에도 민주노총이 이번 선거에도 “어떤 후보도 지지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은 이례적이다. 선거기간 중 또 발생한 SPC 근로자 사망사건이 중대재해처벌법과 관련해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이다. 중소기업 2세 경영자의 관점에서 이번 선거의 공약을 비교 점검해봤다. <편집자 주>
대선을 앞두고 대선후보들의 노동 공약에 기업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이번 대선에서 “노동자의 기본권을 지키겠다”며 주 4.5일제 도입, 정년 65세 연장, 노란봉투법 추진 등을 대표 공약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이 공약들이 모두 현실화될 경우 중소 제조업을 운영하는 수많은 중소기업은 ‘고용 확대’가 아닌 ‘고용 회피’로 내몰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노란봉투법 역시 부담이다. 원청-하청 구조가 일반화된 국내 제조업 특성상 원청이 하청업체 노동 문제까지 책임지는 구조가 되면 “협력사 간 계약 자체가 줄어들 것”이라는 게 경영계의 우려다.
심재우 삼정가스공업 본부장. 사진=삼정가스공업
“한 명 뽑을 때마다 리스크 늘어” 노동존중 공약의 역설
‘40대 기업 후계자’는 이들의 노동 공약을 어떻게 평가할까. 2세 경영인인 심재우(40) 삼정가스공업 본부장에게 대선 공약으로 바뀔 경영 환경의 변화에 대해 물었다. 삼정가스공업은 삼정산업가스, 삼정특수가스, 삼정가스화학, 삼정바이오솔루션, 삼정엔지니어링 등 8개 계열사를 둔 36년 역사를 가진 산업용 가스 분야 강소기업이다.
심 본부장은 가업을 잇기 위해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뒤 고려대 MBA를 거쳐 2020년 회사에 합류했다. 서울대 경영대학원에 재학하며 경영과 학업을 병행하고 있다.
처벌 위주의 중대재해처벌법과 근로시간 단축 공약에 대해 그는 “노동 생산성을 낮추고 기업 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2024년부터 5인 이상 사업장으로 확대되면서 대부분 중소기업이 법 적용 대상이 됐다. 이에 대해선 경영자들도 “안전 강화를 위한 취지는 동의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처벌 중심 구조에 대한 불안감은 여전하다.
그는 “경제활동인구 10명 중 8명이 중소기업에 종사하고 있고 기업경제에서 사람은 큰 자산인데 중대재해처벌법과 반기업적 노동법 등 과도한 규제와 정책이 기업 입장에서 사람을 ‘자산’이 아닌 ‘리스크’로 만들고 있다”고 토로했다.
“급진적 노동 정책을 내놓고 모든 부담을 기업에 전가시키려 한다면 우리나라 기업은 더 이상 대한민국이라는 토지에서 농사를 지으려 하지 않을 것”이라며 “경작지가 어느 날 휴경지로 바뀔 수도 있다는 얘기”라고 경고했다.
이재명·김문수 대통령 후보 주요 기업정책 비교. 그래픽=송영 기자
처벌보단 예방…중처법, 인센티브 중심 손질해야
중대재해처벌법의 경우 처벌이 아닌 인센티브 중심의 예방 체계로 개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사고 기업에 정부 인증을 주거나 세제 혜택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이 더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심 본부장은 “중대재해처벌법 실행 이후부터 직원 한 명을 고용할 때마다 위험변수 한 개를 더 가져가는 셈이 됐다”며 “고용 위축과 산업 침체를 야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사후 처벌보다 무사고 기업에 대해 정부인증 등을 주는 긍정적 강화를 통해 기업들에 더 많은 동기부여를 줄 수 있다”며 “재해를 예방하기 위해선 안전관리 비용이 투입될 수밖에 없는데 이로 인한 인플레이션(가격 인상)에 대해 공급자와 소비자 간 암묵적 합의도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경영계에선 영세 사업장들은 안전관리 시스템 구축과 유지 비용이 부담스럽고 중대재해 발생 시 최고경영자(CEO)가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어 경영 부담이 가중, 투자 및 경영활동 위축을 가져온다고 우려한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5월 15일 ‘자랑스러운 중소기업인협의회’ 조찬 강연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최근 중소기업중앙회 조찬 강연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을 ‘악법’이라고 규정하고 “결정권자가 되면 반드시 고치겠다”고 했다. 이 후보는 최근 SPC삼립 시화공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를 언급하며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는 그 자체로 노동자의 기본 권리”라며 “부끄러운 노동 후진국 근로환경을 고치겠다”고 말했다.
이 후보가 추진하는 노란봉투법 개정안은 사용자 책임의 범위를 원청까지 넓히고 하청 노동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공약은 노동자의 권리 보호라는 점에선 진전이지만 중소기업에는 법적 리스크와 불확실성 확대를 의미한다.
경영계는 노란봉투법이 사용자 범위를 확대해 원·하청 산업생태계를 붕괴시키고 불법 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해 노사분규와 불법행위를 조장한다는 입장이다. 이 후보가 제시한 법적 정년연장 공약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이미 연공서열 중심의 임금 구조에서는 고령자 유지가 비용 상승으로 이어진다”며 “청년 인력을 채용하고 싶어도 자리가 안 나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했다.
노동시장·노사관계에 악영향을 줄 법안. 한국경영자총협회, 2024년 제22대 국회에 바라는 고용노동 입법 설문조사. 그래픽=송영 기자
임금 삭감 없는 주 4.5일제, 정부가 성장엔진 끄는 격
심 본부장은 특히 임금 삭감 없는 주 4.5일제에 대해 “모든 기업에 리스크를 지우는 공약”이라고 평가했다. 임금 동결 조건에서 주 4.5일제 등 근로시간 단축 제도가 시행될 경우 실질적으로 기업은 같은 돈을 주고 일을 덜 시키는 구조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경제 여건과 산업구조를 고려하지 않은 급진적 정책은 현실성도 낮고 부작용이 클 수밖에 없다”며 “임금 삭감 없는 주 4.5일제가 만약 의무화되면 무역이 GDP의 85% 이상을 차지하며 해외 기업들과 경쟁해야만 하는 우리나라 기업 입장에선 정부가 나서서 성장동력을 꺼버리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주 4.5일제에 무조건 반대하는 건 아니지만 업종별 특성이 있고 산업마다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기업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의무화해 임금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근무 일수만 줄이겠다는 것은 ‘호텔(기업)은 망해도 돈만 돌면 된다’라고 생각하는 이 후보 측의 ‘호텔경제론’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5월 8일 ‘진짜 대한민국 선거대책위원회’ 직능본부 민생정책 협약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금의 세계는 과거와 달리 경제와 산업의 조류가 실시간으로 방향을 바꾼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기업은 마치 항로를 잃은 배처럼 바다 한가운데서 표류할 수밖에 없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보장하는 정책이 절실하다고 심 본부장은 말했다.
그는 기업이 국내외 변화에 맞춰 인력 구조나 근로조건을 능동적으로 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연성이 보장된다면 기업은 성장이 필요할 때 더 많은 사람을 고용하고 재배치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지속가능한 일자리 창출의 열쇠”라는 설명이다.
정책에 대한 시각도 덧붙였다. “여야가 내놓는 정책들은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반영하고 있기에 어느 하나가 절대적으로 옳다 또는 그르다고 말하긴 어렵다”며 “중요한 것은 지금의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과 글로벌 흐름을 함께 고려해 균형 잡힌 해법을 모색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는 그가 대선후보들에게 전하고 싶은 가장 간절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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