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EPA 연합
이탈리아, 덴마크, 벨기에, 스웨덴 등 유럽 각국이 속속 탈원전 정책을 폐기한 데 이어 미국도 대형 원전 10기 추가 건설에 나섰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등 첨단 산업을 위해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필수인데 현재로서는 원전이 최선의 대안이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원자력 기술 육성을 위한 원자력 산업 기반 활성화 등 4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 행정명령에는 미국 에너지부(DOE)가 설계 완료 상태인 신규 대형 원자로 10기를 2030년까지 건설하는 데 우선순위를 두라는 지시가 담겼다. 또 폐쇄된 원자력발전소 재가동, 현재 가동 중인 원자력발전소의 전력 생산 증대, 중단된 원자로 건설의 완료, 새로운 첨단 원자로 건설, 핵연료 공급망과 관련한 개선 방안 마련 등 원자력 에너지를 지원하는 방안도 망라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제는 원자력 시대”라며 “우리는 오늘 엄청난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있다. 이것은 미국을 ‘진짜 파워’로 다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행정명령은 향후 25년간 원자력발전 용량을 4배로 늘리는 것을 목표로 산업의 실제 필요성에 맞춰 원자력규제위원회(NRC)를 개혁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여기에는 신규 원자력발전소 허가 결정을 18개월 이내에 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고 AP통신이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에너지 차르’인 더그 버검 내무부 장관은 “이번 조치는 원자력 산업에 대한 50년 이상의 과도한 규제 시계를 뒤로 돌릴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7월 가동을 목표로 3개의 새로운 실험용 원자로 시험과 관련한 규제를 완화하는 행정명령에도 서명했다.
미국이 원자력발전 확대에 나선 것은 원전 산업을 다시 일으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것이 첫 번째 의도다. 펜실베이니아에 본사를 둔 미국을 대표하는 원전 기업 웨스팅하우스는 1970~1980년대 전성기에 5만명 넘는 직원을 뒀지만 지금은 직원 수가 1만명 아래인 것으로 알려졌다.
두 번째는 AI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PWC에 따르면 전 세계 데이터센터의 전력 사용량은 2022년 460테라와트시(TWh)에서 2026년 1050TWh로 단기간에 2배 이상 폭증할 전망이다. 반도체 공장 하나를 가동하는 데 원전 1기가 필요할 정도로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필수다.
미국에 앞서 유럽 각국에서도 속속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있다. 세계 최초 탈원전 국가인 이탈리아 정부는 지난 2월 말 원전 재도입 법안의 의회 제출을 승인했다. 이달에는 벨기에와 스웨덴 의회가 탈원전 법안을 폐기하고 신규 원전 건설에 자금을 지원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아시아에서는 TSMC 등 반도체 산업 비중이 높은 대만에서 지난 13일 원전 수명을 40년에서 60년으로 늘리는 법안이 입법원을 통과했다.
하지만 한국은 AI와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겠다면서도 정치권이 원전을 정치 쟁점화하면서 공회전을 거듭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지난 23일 TV 토론에서 “원전이란 지금 당장은 싼 게 맞지만 폐기물 처리 비용이나 또 위험을 비용으로 환산하면 엄청나게 비싼 에너지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강조했다.
반면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토론에서 “폭염으로 에어컨 사용과 AI 산업에 전기가 많이 필요한데 값싸고 안정적이고 깨끗한 원자력발전을 많이 준비하는 게 국가 에너지 전략의 핵심”이라며 “원전을 중심에 두고 조력과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도 병행하겠다”고 말했다. 김 후보는 공약에서 건설 중이거나 계획 중인 대형원전 6기와 소형모듈원전(SMR) 1기를 차질 없이 추진해 원자력발전 비중을 60%(대형원전 35%·SMR 25%)까지 늘리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미국과 한국이 원전 협력을 강화해 ‘팀 코러스(KOR-US)’로 세계 원전 시장에 진출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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