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D-8 새 정부에 바란다
(1) AI산업·에너지
전문가 "AI 강국 골든타임은 3년…인재·전력 확보 중요"
이재명·김문수 모두 100조 투자 공약…"구체성 떨어져"
< 투표용지 인쇄 시작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가 25일 21대 대통령선거 투표용지를 들어 보이고 있다. 이날 투표용지를 인쇄하면서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와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단일화 여부에 관계없이 용지에 이름을 올렸다. 뉴스1
차기 정부 출범이 9일 앞으로 다가왔다. 차기 대통령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당선을 확정하는 즉시 임기를 시작한다. 어느 후보든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숨 돌릴 틈 없이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직무에 들어간다.
차기 정부는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복합적이고 구조적인 과제에 직면했다. 어느 하나도 해결이 쉽지 않다. 국내적으론 긴 터널 초입에 서 있는 구조적 저성장을 탈피해야 하고 저출생·고령화에 따른 인구 및 노동시장 구조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 대외적으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방아쇠를 당긴 관세 협상을 마무리해야 한다. 경제 안보를 무기로 전 세계가 파워게임을 벌이는 ‘지경학(geoeconomics) 시대’의 생존 전략 마련도 피할 수 없다.
빛의 속도로 변하는 미래 첨단기술 흐름의 한복판에서 근본적으로 약화한 산업 경쟁력을 회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다. 경제 성장을 촉진할 핵심 동력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한 선결 과제는 국가 인공지능(AI) 역량 강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모두 100조원 규모 민관 협력 투자를 통한 AI 3대 강국 도약을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구체성은 아직 낮다는 평가가 많다.
전문가들은 차기 정부는 AI 경쟁력 확보를 위한 로드맵과 국가 차원의 거버넌스부터 수립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하정우 네이버클라우드 AI이노베이션 센터장은 “인재 양성과 연구개발(R&D), 전력 인프라 구축, 산업 현장 적용 등 AI 전(全) 주기를 총괄하는 국가 차원의 거버넌스 정립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는 “AI는 범부처 업무여야 한다”며 “대통령실에 AI 수석을 두거나 AI전략실을 설치해 국가 차원에서 전체적으로 업무를 조율해야 한다”고 했다.
차석원 서울대 차세대융합기술원장은 “훈련받지 않은 문제도 제한적 범위 내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인공일반지능(AGI)이 개발될 때까지 앞으로 3~4년이 AI 경쟁력을 따라잡을 골든타임”이라며 “AI 데이터센터를 확충하고 이를 위한 안정적인 전력 수급 체계를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AGI 시대까지 열리면 한국은 미국, 중국과의 기술 격차를 따라잡기가 요원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소 30만개 확보"…원전·방산 수출처럼 'GPU 원팀' 꾸리자
AI강국 '범국가적 시스템' 필요
인공지능(AI) 산업은 ‘종합예술’에 비견된다. 돈과 기술만 있다고 특정 국가와 기업이 우위를 점하기 어렵다. 소프트웨어·하드웨어 기술은 기본이고 AI 데이터센터(AIDC) 인프라가 곳곳에 구축돼 있어야 한다. 데이터센터에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촘촘한 전력망과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초고속 네트워크망을 깔아야 하는 것도 필수다.
◇“민관 협력 GPU 30만개 확보 나서야”
국가 차원의 ‘AI 거버넌스’ 정립은 전문가들이 가장 시급하다고 꼽는 차기 정부의 과제다. 대통령 직속 국가AI위원회가 있지만 모든 정부 부처를 아우르기에는 실질적 권한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이 때문에 차기 대통령은 대통령비서실에 ‘AI수석비서관’을 두거나 ‘AI전략실’ 같은 조직을 만들어 대통령이 수시로 관련 사항을 보고받을 수 있도록 하라고 했다. 하정우 네이버클라우드 AI이노베이션 센터장은 “위원회는 컨트롤하는 부처와 예산권이 없어 실행력이 떨어지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일본은 이미 4년 전 디지털청을 만들어 AI 산업 정책을 전담하고 있다. 총 1180명 가운데 절반 이상인 600을 민간 전문가로 채웠다. 영국도 총리실과 과학혁신부를 결합한 별도의 AI 조직을 만들었다.
전문가들은 방산과 원전 산업의 핵심 기술 개발을 민간 기업이 주도하면서 수출 활동에는 정부가 집중 서포트하는 것처럼 AI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정부와 민간이 함께 뛰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GPU 확보에 민·관 협력체계를 강화할 것을 주문했다. 주요국들은 일찌감치 GPU 확보를 위해 정상들이 직접 뛰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젠슨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를 만나 GPU 공급을 부탁하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와 중국산 AI 장비를 확 줄이면 엔비디아 제품을 각각 연 100만개, 50만개를 주겠다고 협상했다.
산업계는 데이터센터 핵심 요소인 GPU를 2030년까지 30만개 확보해야한다고도 제언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확보하겠다고 공약한 5만개보다 6배 많은 규모다. 하 센터장은 “정부 주도로 GPU를 5만개가 아니라 30만개 확보해야 한다”고 했다.
◇“고급 인재 파격 혜택 줘야”
AI 인재 확보도 중요하다. ‘AI 두뇌’들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첫 번째 이유는 연봉 격차 때문이만, 두 번째는 GPU 부족이라는 게 AI 연구자들의 얘기다. 김성재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SCI급 논문 저자를 패스트트랙 출국 대상자로 정해주는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의 공약 등 과학기술 전문가를 예우해준다는 메시지가 분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산업계에선 한정된 재정과 GPU를 ‘제조업 AI’ 개발에 투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이재명 후보가 언급한 ‘모두의 AI’보다는 자동차, 로봇, 물류 등에서 생산성을 높이도록 분야별로 특화한 ‘버티컬 AI’부터 투자해야한다는 얘기다. 기업들은 초기 투자 비용과 데이터 축적 문제로 AI 활용을 어려워하는데, 정부가 기업들을 모아 데이터를 공유하고 공장에서 적용 가능한 성공 사례를 만들기 위해 판을 깔아줘야한다는 얘기다.
차석원 서울대 차세대융합기술원장은 “다른 국가는 검색엔진을 구글에 잠식당했기 때문에 ‘소버린 AI’를 개발하는 데 정부가 뛰어들었다”면서도 “하지만 우리는 네이버나 카카오 등 한국어 기반 검색엔진과 메신저가 있기 때문에 이들이 잘 연구하도록 정부가 뒤에서 지원해주는 형태가 맞다”고 말했다.
한재영/김형규 기자 jy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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