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TR, 글로벌약값 실태 조사
한국서 해외기업 역차별 논란
정부, 의견 수렴해 제도 개편
장기적으로 환자 부담 늘수도
◆ 관세전쟁 ◆
미국무역대표부(USTR)가 자국 제약 기업이 외국에서 불공정하게 약값을 억제하는 사례가 있는지 조사에 착수한 가운데 보건당국과 국내 제약 업계도 긴장하고 있다. 당장 환자들에게 필요한 약값이 오를 확률은 크지 않지만, 이번 조사가 의약품 관세 부과를 위한 사전 포석인 만큼 파장을 예의 주시하는 분위기다.
미국 제약사들이 주요국 약가 정책에 불만을 표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일단 유럽을 겨냥하고 있지만, 한국에도 비슷한 압박이 올 수 있다. 약값은 세계적으로 각국 정부의 통제를 받는데, 제약사들은 당연히 더 비싼 값을 받고 싶어 한다. 우리 정부의 약가 정책도 트럼프 대통령의 말대로 '인위적으로 억제하는 경우'에 해당할 수 있고, 관세 압박 카드로 활용될 수 있다.
오기환 한국바이오협회 전무는 "그동안 글로벌 제약사들은 혁신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면서 우리 약가 등재상 절차가 모호하다고 지적해왔다"며 "이번에 정식 조사가 진행되면 그간 수면 아래에 있던 문제가 양국 간 관세 협상 테이블에 올라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약가 산정 기준과 절차적 투명성을 문제 삼을 확률이 높다.
약가 우대와 연구개발(R&D) 지원을 받는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 절차도 거론될 수 있다. 지난해 말 기준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혁신형 제약기업은 49곳인데, 이 중 외국계는 4곳뿐이다. 복지부도 이 같은 상황을 인식하고 인증 기준 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업계 의견을 수렴한 뒤 하반기 중에 시행할 예정이다.
혁신형 제약 기업 인증이란 보건복지부가 신약 개발 중심의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연구개발(R&D) 투자 우수기업을 선정해 각종 혜택을 제공하는 제도다. 제약산업법에 따라 2012년부터 운영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해외 기업들은 혁신형 제약 기업 인증 기준에 대한 투명성이 부족하고, 한국 내 투자를 인증 기준으로 삼아 해외 기업을 차별하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한 외국계 제약 기업 관계자는 "현재 혁신형 제약 기업으로 선정된 외국계는 암젠코리아, 한국아스트라제네카, 한국얀센, 한국오츠카 등 4곳뿐"이라면서 "외국계 제약사들에 혁신형 제약 기업 문턱이 높다는 지적이 계속 나온 만큼 이번 개정안에서 '기울어진 운동장' 문제가 해소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제약·바이오 산업 선진화를 위한 '기회'로 삼자는 주장도 나온다. 정윤택 제약산업전략연구원장은 "이번 기회에 정부도 혁신과 환자 접근성을 모두 고려한 '투 트랙 전략'을 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정부는 국민건강보험 재정과 환자 접근성을 고려해 다른 나라보다 약값을 낮게 유지하고 있다. 정 원장은 "낮은 약값은 양날의 검과 같아서 외국 제약사들이 국내에 들어오는 걸 주저하게 되고, 혁신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한국도 최근 램시마나 렉라자 등 혁신적인 신약이 나오고 있지 않나. 신약 개발 경쟁력이 있기 때문에 재정 건전성만 챙길 때는 지났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 한국에서도 신약 개발로 돈을 벌고 R&D에 투자하는 선순환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원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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