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등고래.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수염고래류의 대형 고래인 혹등고래가 숨지는 주요 원인은 '충돌'이다. 과학자들이 혹등고래가 배와 충돌하거나 어망에 걸릴 위험이 큰 이유를 밝혀냈다.
미국 윌밍턴 노스캐롤라이나대가 이끄는 연구팀은 혹등고래의 시력이 주변 환경의 대부분을 희미한 실루엣으로 인식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연구결과를 21일(현지시간) 국제학술지 '영국 왕립학회보B'에 발표했다.
연구에 참여한 제이콥 볼린 노스캐롤라이나대 연구원팀은 2011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해변에서 죽은 어린 혹등고래의 눈을 해부했다. 해안에 떠밀려 온 고래는 대부분 죽은지 오래 돼 심하게 부패한 상태라 해부에 적합하지 않지만 연구팀이 해부한 혹등고래는 육지에서 안락사됐다.
광학 원리에 따르면 크기가 큰 혹등고래는 거대한 안구 덕분에 시력이 좋아야 한다. 수정체와 망막 사이의 거리인 초점거리가 길수록 상이 더 선명하게 맺힐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팀이 혹등고래의 안구를 분석한 결과 안구의 3분의 1 이상이 시력과 관계 없는 안구의 흰자위인 두툼한 '공막'이었다.
공막뿐 아니라 혹등고래의 시력을 떨어뜨리는 가장 큰 이유는 망막 신경절 세포의 밀도가 낮다는 점이다. 망막 신경절 세포는 눈의 망막에 있는 신경세포 집단이다. 망막 신경절 세포는 망막에 반사된 이미지를 포착해 뇌가 이해할 수 있는 전기 신호로 변환한다. 망막 신경절이 더 촘촘할수록 더 높은 해상도의 이미지가 뇌에 도달한다.
연구팀이 혹등고래 안구에서 측정한 망막 신경절 세포 밀도는 1m²당 180개였다. 사람은 1m²당 약 3만5000~4만개다. 시력이 좋은 맹금류는 1m²당 최대 7만개의 망막 신경절 세포를 갖고 있다.
이런 해부학적 특징이 어떻게 상호 작용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연구팀은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혹등고래에게 수중 풍경이 어떻게 보일지 시뮬레이션했다. 바다를 항해하는 고래에 중요한 2가지 이미지인 작은 물고기 떼와 상업용 어망을 마주한 경우를 모델링했다.
그 결과 45~60m 떨어진 거리에서 혹등고래는 물고기 떼는 흐릿한 덩어리로 보이고 어망은 보이지 않았다. 45~60m 거리는 혹등고래 성체 길이가 14m인 점을 감안하면 먼 거리가 아니다.
연구팀은 "혹등고래는 멀리 있는 물체를 식별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뿐만 아니라 그 물체가 거기에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혹등고래는 시력이 뛰어나지 않지만 생존에 큰 지장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에 참여한 로리안 슈바이케르트 노스캐롤라이나대 연구원은 “바다에 배나 그물 같은 인간의 기반 시설이 들어서기 전에는 시력이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성체 혹등고래는 특별히 경계해야 할 포식자가 없으며 먹이를 감지할 때 후각 등 다른 감각에 의존하는 것으로 연구자들은 보고 있다. 혹등고래는 주로 고래의 노래와 청각에 의존해 의사소통을 하거나 방향을 잡는다.
쇤케 존슨 미국 듀크대 생물학과 교수는 “고래의 거대한 눈이 어떤 용도로 사용되는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참고자료>
-https://doi.org/10.1098/rspb.2024.3101
[이채린 기자 rini113@donga.com]
Copyright © 동아사이언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매주 일요일 밤 0시에 랭킹을 초기화합니다.